매일신문

[야고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도 아는 '운동권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것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로 시작해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로 끝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이 노래는 단조이지만 매우 격정적이고 선동적(?)이다. 그래서 대중음악평론가 최지선은 "이후 이 노래는 빠른 격정미와 느린 유장미를 아우르는 넒은 스펙트럼의 단조 행진곡풍 민중가요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평가한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윤상원과 연탄가스 중독으로 숨진 노동운동가 박기순 씨의 영혼결혼식(1982년 2월)을 모티브로 만든 노래극 '빛의 결혼식'의 한 부분으로, 소설가 황석영이 시민운동가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해 가사를 쓰고 1979년 제3회 대학가요제에서 '영랑과 강진'으로 은상을 탄 김종률 씨가 곡을 붙였다.

영혼결혼식이 있은 지 몇달 뒤 소설가 황석영의 광주 운암동 집에서 포터블 카세트테이프 레코더로 녹음됐다. 이렇게 녹음이 '원시적'이다 보니 원본에는 개 짖는 소리와 기차 지나가는 소리도 녹음됐다고 한다.

이 노래는 1983년부터 5·18 기념식에서 제창된 데 이어 1987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이 법정 기념일로 제정된 이후 2008년까지도 제창됐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본행사에서 제외되고 식전 행사에서 합창단이 부르게 했다. 2011년부터 본행사에 포함되긴 했지만 합창단이 합창하고 원하는 사람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했다. 그러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이틀 만인 5월 12일 제창을 지시해 그해 5·18 기념식에서부터 다시 제창됐다.

5·18 민주화운동 42주년 기념식에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새 정부 장관, 여당 의원 등이 대거 참석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5·18 기념식에서 합창이 아니라 제창을 한 것은 보수 정권에서 사실상 처음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 간의, 사소하기까지 한 '합창이냐 제창이냐'는 논란의 해소에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완고한 기득권 세력이 돼 버린 '민주화운동 세력'이 자신들만의 '정치적 자산'으로 독점하려 해 온 광주민주화운동을 국민 모두의 자산으로 보편화함으로써 진정한 국민 통합으로 나아갈 전기를 마련했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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