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영화 ‘엘비스’

로큰롤 황제… 이름값 만큼 가혹했던 숙명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로큰롤의 제왕 '엘비스'가 온다.

1977년 비운에 생을 마감한 엘비스 프레슬리(1935~1977). 우리가 몰랐던 그의 영광과 열정, 고통과 상처를 담은 음악영화다. '로미오와 줄리엣'(1996), '물랑 루즈'(2001)로 탁월한 음악적 감각을 스크린에 녹여 넣은 바즈 루어만 감독이 연출했다. 블루스, 로큰롤, 가스펠, 팝까지 시대를 관통한 음악을 추억 속 화려한 비주얼로 살려냈다.

미국 남부 멤피스에서 트럭을 몰던 19살의 무명 가수 엘비스(오스틴 버틀러). 엄마에게 핑크색 캐딜락을 선물하는 것이 소원이던 소박한 청년이었다. 지역 라디오의 작은 무대에 선 그는 본 적 없는 몸짓과 퍼포먼스로 무대를 압도한다. 바로 그의 전매 특허였던 골반과 다리를 자유자재로 흔드는 춤이었다.

한눈에 그의 재능과 상업성을 간파한 이가 바로 톰 파커(톰 행크스)이다.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일하던 그는 엘비스에게 스타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다. 흑인 음악을 접목시킨 독특한 리듬과 여성 팬들을 매료시킨 음색, 거기에 무대를 휘어잡는 퍼포먼스와 화려한 패션까지 그는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스타의 반열에 올라선다.

아티스트를 그린 많은 영화를 보면 스포트라이트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욱 어두운 삶의 그림자를 보게 된다. 흑인 재즈가수 니나 시몬이나 아레사 프랭클린 등도 대중에게 드러난 화려한 모습보다 술로 지낼 수밖에 없는 아픔을 겪었다.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엘비스' 또한 그런 전기 영화의 전형을 따른다. 그의 그림자는 매니저 톰 파커이다. 그는 빛으로 나가는 길을 열어주었지만, 철저하게 엘비스에게 흡혈귀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비스가 버는 돈의 절반을 떼어간다. 백인 보수층의 색안경을 벗겨내기 위해 군대에 보내기도 한다.

엘비스가 인기를 끌던 1950, 60년대는 늘 불안하고 위험했던 시대다. 흑백 갈등이 표면화되고, 히피의 등장과 반전 시위 등이 있었고, 마틴 루터 킹과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기도 했다. 퇴폐와 반항기가 가득한 엘비스의 이미지는 백인 소녀들에게 환호를 받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기성세대도 많았다. 이러한 시대적 갈등을 엘비스도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껏 쌓아온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었다. 톰 파커는 끊임없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다.

1956년 발매한 싱글 'Heartbreak Hotel'을 비롯해 'Hound Dog', 군 제대 이후의 보다 대중적인 방향으로 선회한 감미로운 발라드 곡 'Can't Help Falling in Love', 'If I Can Dream' 등 이른바 '엘비스 프레슬리 전성시대'를 몰고 온 그의 명곡들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서 히피남 텍스 역을 맡았던 오스틴 버틀러는 10대 무명 시절부터 생의 마지막인 40대 초반까지 엘비스의 역을 잘 소화한다. 특히 체중이 불면서 건강이 악화된 엘비스의 마지막 콘서트 장면을 위해 5시간의 분장을 거쳤다. 30여 년에 걸친 엘비스의 시대별 패션 또한 볼거리다. 오스틴 버틀러는 90여 벌이 넘는 의상을 입었다.

바즈 루어만의 작품답게 영상이 화려하다. 화면 나누기와 카툰 이미지들을 활용해 마치 한편의 뮤직비디오를 보듯 역동적이다.

30대 말, 엘비스는 점차 마약과 알코올에 빠져든다. 부와 명성이 클수록 심리적 공허함은 그를 괴롭혔다. 카리스마 넘치던 섹스 심볼이 과체중의 흉한 모습으로 바뀌어 간다. 세계인들을 매료시킨 눈동자도 초점을 잃었다. 건강이 심하게 악화된 엘비스는 결국 1977년 8월 16일 자신과 어머니를 위해 구입한 저택 그레이스랜드 맨션의 욕조에 쓰러진 채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 직접적인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그의 나이 고작 42세였다.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엘비스'의 한 장면.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제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그는 미국 대중음악 카르텔의 희생자였다. 그 누구보다 빛과 그림자가 극명하게 대비된 엘비스의 삶이었다.

엘비스가 등장하기 전 로큰롤은 장르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의 등장으로 로큰롤의 시대가 열렸다. 비틀즈의 존 레논은 엘비스가 나타나기 전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음악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망한 지 45년이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록스타들에게는 '구루'(영적 스승)이다.

록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는 'Back to Tupelo'라는 곡을 통해 1967년 엘비스를 추억하며 그의 음악을 그리워했다. 투펠로는 엘비스가 13살 멤피스로 이사하기 전 그가 태어나고 살았던 미시시피의 작은 마을이다. 13일 개봉. 159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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