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일 오후 대구 동구 효목동 동촌유원지. 금호강변을 따라 늘어선 식당가를 지나 망우공원 방향으로 접어들자 항일독립운동 기념탑 옆 붉은색 벽돌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비교적 최근 조성된 듯한 출입구 옆 표지석에는 '조양회관'(朝陽會館)이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그러나 회관 주변은 썰렁했다. 번화가와 다소 떨어진 탓에 차량들만 쌩쌩 오갔고다. 무더위에 산책을 나온 시민들도 많지 않았다.
오상균 광복회 대구시지부장은 "장소 자체가 외곽이기도 하고, 교통도 좀 불편하다. 대구에서는 신암선열공원과 함께 가장 의미있는 현충시설인데도 존재 자체를 몰랐다는 사람들을 자주 봤다"고 안타까워했다.
대구의 대표적 근대 항일 문화재 중 하나인 조양회관이 올해 건립 100주년을 맞았지만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시민 가까이에 있는 지역 내 현충시설에 더 많은 관심과 재조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조양회관은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 10월 달성공원 인근 대신동 부지에 건립됐다. 3·1 운동이 시작된 지 4년 뒤 일제의 문화통치에 맞서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우고자 서상일 선생(1886~1962) 등 지역 독립운동가들이 뜻을 모았다.
'조선의 빛이 되어라'는 뜻이 담긴 이름대로 대구구락부와 여자청년회, 운동협회, 농촌봉사단체 등이 입주해 민중계몽운동의 진원지 역할을 했다. 문화운동을 위한 '조양동우회'가 만들어져 복합문화시설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일제에 의해 영남지역 항일운동의 본거지로 지목되는 수난도 겪었다. 독립운동가들이 체포되고 건물은 조선총독부에 징발돼 도서관으로 쓰인 슬픔이 묻어있다.
당시 대구 독립운동의 대표 유적지로 인정받은 조양회관은 2002년 2월 28일 대한민국 국가등록문화재 제4호로 지정됐지만, 시민들의 관심에서 너무나 멀어져 있다. 1984년 효목동 현 부지로 옮기면서 특유의 붉은 벽돌은 물론 창틀 하나, 나무 바닥재 하나까지 고스란히 이전 복원했지만, 들인 정성만큼의 조명은 전혀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 지부장은 "생존 독립운동가들이 '그 건물은 부수면 안 된다'고 해서 대구시가 그 당시 돈으로 무려 1억2천만원을 들여서 그 모습 그대로 가져왔다"며 "당시로선 흔치 않게 외국인이 아닌 윤학기 건축가가 설계해 건물 자체로도 의미가 크다"고 설명했다.
제한된 예산과 관리 부담 문제가 크다. 현재 대구시 소유인 조양회관은 광복회가 수탁 관리하며 사무실로 쓰고 있는데,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주말이면 문화해설사 한 명조차 두지 못해 관람객들의 내부 견학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오 지부장은 "입장 바꿔 대구시민이 주말을 기회로 다른 지역 유산을 보러 갔는데, 문을 닫아 놨다면 기분이 좋겠느냐.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도 건물을 보고 놀라는 경우가 많은데 주말에 오면 바깥 구경만 하고 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대구보훈청은 지난 3월 조양회관을 '이달의 현충시설'로 지정하기도 했지만 효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망우당공원 일대 다른 기념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지역의 항일 역사를 느낄 수 있는 기념물이 여러 곳 존재함에도 시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광복회와 보훈단체들은 오는 10월 건립 100주년 행사를 준비하며 '지역 현충시설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고 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독립운동 유적지도 중요하지만, 정작 내 주변에 있는 시설을 몰라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변재괴 광복회 대구시지부 사무국장은 "일선 학교에서부터 '내 주변 현충시설'을 교육해야 한다"며 "학생 때 알지 못하면 성장해서도 모른다. 학교 차원에서 내 주변에, 우리 학교 근처에 이런 의미있는 역사 유적이 있다는 점을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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