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가 미쳤냐. 돈 안받고 저런 일 하겠냐'는 말을 들을 때 속상하죠. 그럴땐 말해주고 싶어요. '자랑할 만큼 크진 않아도 매일매일 작은 행복으로 보상을 받고 있다'고 말이죠."
여기 가족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말하듯 '배 아파 놓지 않아도 가슴으로 낳은 자식'이라는 뻔한 문구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다.
성도 다르고, 태어난 곳 역시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지금 안식을 느끼며 일상을 공유하는 곳은 바로 서로의 품이다.
포항시 북구 두호동의 오승록(59)·정누이(62) 씨 부부가 꾸린 위탁가정은 그렇게 오늘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남들과는 비할 바 없을 정도로 아주 소중히 보내고 있다.
위탁가정은 친족이라는 의미가 들어간 '가족'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입양과 달리 아이들의 정체성을 지켜주기 위해 기존 성을 그대로 쓰는 까닭이다. 대신 핏줄의 끈끈함보다 더한 사랑으로 빈자리를 메운다.
이들 부부가 처음 위탁가정을 시작한 것은 2000년쯤. 예전부터 자원봉사 TV프로그램을 즐겨보며 세 딸들에게 '너희들 크면 나도 저렇게 살거다'라고 했던 농담 반 진담 반의 소망이 발단이 됐다.
"갓 대학생이 된 첫째 딸이 방학을 맞아 내려오더니 제 손을 갑자기 잡아 끌고 동사무소로 가더라구요. '엄마·아빠가 그렇게 원하던 가정을 꾸려보자'는 딸들의 응원에 불쑥 용기가 솟았어요."
그때는 공무원들도 위탁가정이라는 제도 자체에 생소했기에 제대로된 안내를 받지 못했다. 수소문 끝에 오 씨 부부가 첫 아이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년이 지난 2007년부터이다.
당시 3살이던 금성후(가명·18) 군을 아들로 맞이한지 벌써 15년째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어 김정현(가명·14) 군과 전승희(가명·7) 군도 줄줄이 품에 안았다. 딸 셋을 키워 출가시키자마자 곧바로 아들 셋의 부모가 된 셈이다. 특히 둘째인 김 군은 첫째 딸에게서 나온 둘째 손녀와 동갑이다.
늦깎이 부모로서 힘들 법도 하지만, 이들 부부는 오히려 가장 극성스런 부모로 통한다며 농담을 건넨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학교에 찾아가요. 보호자와 성이 다르다보니 주위에서 괜한 선입견을 가질까봐 걱정돼서요. 훈육하는 일이나 자랑스러운 일이나 언제나 평범하게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요. 뭔가 대단한 일이 아니라 그저 '아이를 키우는 일'이니까요."
위탁가정을 하며 가슴 아픈 일도 겪었다. 2015년 태어나자마자 친부모에게 창밖으로 던져져 온몸을 다쳐온 아이를 돌볼 때, 아무리 씻어도 계속 피가 배어나오는 머리를 보며 한참을 울었다. 고작 한달 후에 다시 입양을 보내겠다는 조건으로 원가정에 보냈지만 한시도 기억이 떠나지 않았다.
이웃의 이상한 시선과 뒷담화들도 속상한 일이다. 어쩔 때는 신고를 받고 경찰이 집 안에 들이닥치거나 '돈 많이 주는가 보다'라며 괜한 주위의 오해를 받은 적도 많다. 정작 위탁부모에게 주어지는 보상금은 연말정산 등 미미한 세금혜택 외에는 거의 없다.
정누이 씨는 "자식을 키우는 일인데 200만원, 아니면 300만원을 준다면 할 수 있을까 되묻고 싶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지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내 아이를 키울 때처럼 그냥 저지른다면 일반 부모가 느끼는 행복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다"고 웃음 지었다.
한편, 위탁가정 활동을 원하는 경우 경북가정위탁지원센터(054-705-3600)에 문의하면 상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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