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의 필름통] 히어로 영화의 몰락

10여 년간 사랑 받아온 히어로물…문화·젠더 다양성 시도·화려한 장면에도 성적 하락세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히어로 영화들이 시들해졌다.

예전에는 개봉하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들이었지만, 어느 순간 손을 놓게 됐다. 극장에 가기 불편해서가 아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 올라와도 내키지가 않는다. 왜 이렇게 됐을까.

15년 전 '아이언맨'(2008)이 개봉했을 때의 짜릿한 놀라움은 잊을 수가 없다. '영웅은 태어나지 않는다. 다만 만들어질 뿐이다.' 세계 최강의 무기업체를 이끄는 CEO이자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 그는 부와 명예, 두뇌와 매력까지 두루 갖춘 인물이다. 신무기를 개발해 발표하는 찰라 게릴라군의 공격을 받고 납치된다. 사막 한가운데 동굴 속에서 주변에 있던 쇳조각과 전선을 활용해 철갑슈트를 만들어 탈출한다. 아이언맨의 탄생이다.

이 영화는 향락에 젖어 있던 갑부가 내면의 힘을 끌어내 영웅으로 등극하는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히어로물의 전형적인 서사다. 그러나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캐릭터에 갖가지 최신 장비, 악당과 마주하는 새로운 정의의 힘까지 창의적이며 입체적인 이야기로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과거 평면적인 히어로가 갖가지 색채에 재기발랄한 설정들이 가미되면서 새로운 히어로 시대를 열었다.

이후 10년 가까이 새로운 히어로들이 스크린을 메우면서 관객을 즐겁게 했다. 역대 세계 흥행 상위 10위에 랭크된 '어벤져스: 엔드게임'(2019), '어벤져스: 인피니티워'(2018), '스파이더맨: 노웨이 홈'(2021), '어벤져스'(2012) 등이 이 시기에 제작된 영화다. 대부분 마블 코믹스의 영화들이다.

'아이언맨 2'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이언맨 2'의 한 장면.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두가 히어로물에 열광하다보니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심지어 리들리 스콧 감독과 같은 대가들은 이들 영화들이 "영화가 아니다"며 불편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전통적인 할리우드 영화제작 시스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15년 후 이들 영화들이 몰락하고 있다. 정확히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정점을 찍은 이후 폭발적이던 신드롬은 거품이 꺼지고 있다. '블랙 위도우'(2021),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이터널스'(2021)는 최악의 오프닝 성적을 거두었고, 올해 개봉된 '블랙 아담', '블랙 팬서: 와칸다 포에버' 등의 성적도 형편없었다. '블랙 아담'은 국내에서 77만 명을 동원하고 문을 닫아야만 했다.

대부분 히어로 영화는 '한 물 갔다'라고 한다. 여기서 '한 물'이란 것은 일시적 유행이란 뜻도 있지만, 처음 화려했던 배우들의 퇴장, 세대교체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아이언맨은 토니 스타크이고, 토니 스타크는 곧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다. 셋은 한 몸이고 대체불가의 연결고리다. '어벤져스: 엔드게임' 이후 이 시대는 끝이 났다. 토니 스타크는 죽고,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하차한다. 이때 함께 떠난 것이 캡틴 아메리카 크리스 에반스다. 그는 영화의 끝에 늙은 캡틴 아메리카의 모습으로 그의 상징인 방패를 샘에게 건네주고 퇴장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퍼스트 어벤져'(2011)로 등장했다. 세계대전으로 암흑에 빠진 시기에 간절하게 입대를 원하는 한 청년이 있었다. 왜소하고 마른 체격으로 번번이 입대가 거부당한다. 신체는 빈약하지만 누구보다 조국애가 강했던 그는 슈퍼 솔저 프로젝트로 인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신체 능력을 갖는다. 국가와 정의를 위해 불굴의 의지와 포기를 모르는 정신력이 그의 상징이다. '아이언맨'과 함께 대단히 인상적인 등장이었다.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의 한 장면.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제공

배우는 캐릭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블랙 팬서를 연기한 배우 채드윅 보스만이 투병 중 사망한 후 '블랙 팬서' 시리즈가 힘을 잃은 것과 같다.

이들을 대체할 캐릭터와 배우를 찾지 못하면서 히어로물들은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개성을 다양화하기 위해 '샹치'의 중국, '문나이트'의 이집트 문화를 끌어오지만, 새로운 히어로의 제시 방식이 너무나 진부했다. 낯선 문화의 신비한 힘만 가져오면 모두 히어로가 된다는 안일한 방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여성 스파이더맨, 여성 토르 등 젠더의 다양성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였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탄생은 대단히 치밀하며 보편적 공감을 끌어냈다.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는 슈퍼 체력을 가졌지만, 한 여인을 잊지 못하는 순수한 면을 지녔고,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 또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연구에 몰두하는 내면을 가졌다. 이런 입체적 캐릭터는 영화의 생명력이다.

그러나 이런 서사를 만들어내기 보다 스펙터클한 장면 만들기에 눈을 돌렸다. 유니버스니 멀티버스니 하는 다중우주 이론을 끌어들인 것이 그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앞에 나온 두 명의 파터 파커 외에 과거 영화에 등장했던 악당 일렉트로, 고블린, 닥터 옥토퍼스, 리저드 등을 모두 동원하는 멀티 스파이더맨을 만들기에 이른다. 거기에 닥터 스트레인지까지 출연시켜 이종교배(?)도 시도한다.

여기에 잦은 리부트(새로운 시리즈)에 스핀 오프(파생된 이야기) 등이 난무하면서 흥미를 떨어뜨린 것도 히어로 영화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김중기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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