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콩시루 세상만사

구글 검색 선호 출처로 추가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윤영 수필가(미니픽션작가)

물에 불린 검은콩을 시루에 깔았다. 밤낮으로 물을 먹이는 일이 요즘 나의 일과다. 그러고 보니 뭔가를 먹인다는 문장이 걸린다. 단순히 보호나 돌봄을 떠나서 '길을 들인다'가 도사리고 있었다. 물을 먹여 심리적으로 지배를 하는 일. 불현듯 반란과 궐기가 허공을 떠다녔다.

암튼 먹인 물은 사미니 이고 다니는 물동이만 한 시루 안에서 '차르르' 걸러지다 이윽고 '똑똑 탁탁' 남은 물방울을 떨쳐낸다. 자정 무렵이나 새벽녘에 떨쳐내는 물소리를 듣노라면 목탁 소리 진배없다. 수탁 소리인가. 그렇게 올겨울 콩들이 모여사는 작은 절간을 지었다. 검은 장막 안에 가둬 놓고 물을 먹여 길을 들인 것이다. 일주일간의 동안거에 들더니 착한 녀석들이 고깔모자를 벗으며 하얀 혀를 내민다. 외라는 불경은 들리지 않고 하늘을 향해 날름날름 떠드는 입들. 가만히 귀를 내민다.

"가스값이 난리래." "2055년쯤에는 국민연금 기금 바닥 설도 있던데." "이놈아 말조심해 압수수색 들어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코앞인데 대책 없다며." "아휴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니까."

바람 잘 날 없는 시루 밖으로 목을 빼 올린 너희들. 할 말은 그득해 보이는데 어째 부여받은 생이 짧아 보인다. 내일 아침 식탁에 먼저 오를지도. 한 치 앞도 모르는 암둔한 녀석들. 할 말조차 하지 못한 작은 콩들은 여전히 뒤엉킨 시루 속에서 난장판이다. 어쩌다가 두어 끼 굶긴 날에는 새들새들 삐쳐서는 고개를 획 꺾어버리지만 잠시뿐.

그저 물만 먹여도 싱글벙글. 시루 속은 아우내 장터. 내 콩이 크니 네 콩이 크니 서로 잘났다고 콩만 한 것들이 오졸거린다. 물에 잠겨 썩은 콩을 씹은 얼굴, 겨우내 살아났는지 날콩 씹은 상판의 찡그린 얼굴, 오르지도 눕지도 못한 채 껍질만 덮어쓰고 있는 콩. 이도 저도 아닌 틈바구니에서 검은 법복 자락 고스란히 벗어놓고 해탈한 콩.

기고만장하며 설레발 치던 콩나물을 뽑았다. 날름날름 떠들던 입들 닫아걸었다. 언뜻 절망과 희망은 처음부터 이분화되어 있지 않았단 생각이 이 순간에 왜 들까. 같은 말을 두고 A가 말하면 직격탄에 소신 발언이고, B가 말하면 비아냥이거나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다고 편파보도 하는 현실.

괜스레 눈앞 콩나물에 미안했다. 나의 잣대로 심판을 하고 있었던 게다. 무럭무럭 성장하여 나물이 된 죄밖에 없었다고, 남들보다 승승장구하여 주인장 비위 맞추었더니 얼간이에 암둔한 녀석들이라는 비아냥거림만 얻었다고. 누군 목숨줄 뽑히는 걸 알면서도 의연히 먼저 일어나서 할 말은 하는 용기를 펼쳤다고 응원하는 이도 있더라는 표정. 항변이라도 하듯 입 닫고 새초롬하게 누웠다. 딴에는 가치실현일 것이고 공양구현일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 행간에 납작 엎드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을 숨겨 놓은 채 아침 공양으로 콩나물국이나 끓이고 있는 그대야말로 허수아비가 아니던가.' 허공을 떠도는 말들이 나를 칭칭 감는다.

mWiz
1800
AI 뉴스브리핑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이재명 대통령은 4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원안 통과시켰으며, 이로 인해 검사의 직접 수사 권한과 보완수사권이 전면 폐지되고 수사...
반도체 중심 장세에서 제약·바이오주가 다시 주목받고 있으며, 삼천당제약과 코오롱티슈진 등에 대한 재평가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KRX 바...
포스코그룹의 PNR이 포항사업소 인수 입찰 과정에서 특정업체 A사를 사전 내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으며, A사는 관련 경험이 없는 청소업체로...
브리핑 데이터를 준비중입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