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인 '나일진'은 상습적으로 후배들을 협박해 현금과 담배를 갈취했으나, 아직 학생인 점을 고려해 소년법에 따라 사회봉사명령인 제3호 처분을 내린다."
판사 역할을 맡은 김수호(17‧가명) 군이 판결한 후 의사봉을 3회 두드리자 재판장은 적막감이 맴돌았다. '나일진' 역을 맡은 이형모(16·가명) 군은 덤덤히 재판 결과를 받아들였다. 배심원으로 참석해 아이들의 재판을 지켜보던 부모들도 판결 내용을 곱씹으며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지난 9일 대구청소년비행예방센터 모의법정에서 10대 청소년 6명과 학부모 6명이 소년사건 재판 과정을 미리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학생들은 실제 소년법을 위반해 법원 심리를 앞두고 있다.
대구청소년비행예방센터는 학교폭력 가해 학생 등 비행 청소년을 교육하는 법무부 소속 기관이다. 2012년 6월 동구 입석동 경북지방우정청에 터를 잡았다. 주로 법원에서 수강명령 처분을 받거나 학교폭력과 교권침해 등으로 특별교육처분을 받은 학생들이 찾는다. 매년 약 500명의 학생들이 비행 원인 진단과 원활한 사회 적응을 위해 3~5일간 하루 8시간씩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문제는 전국 19개 센터 가운데 대구경북에는 동구 1곳밖에 없다는 점이다. 광주전라 지역은 광주와 순천, 전주 등 3개의 센터가 있고 부산, 울산, 경남에도 부산과 부산동부, 울산, 창원 등 4개의 센터가 운영 중이다. 인구 규모로 따져봐도 대구경북은 턱없이 모자란 수준이다.
기관의 부재는 곧 학생들의 교육기회 단절로 이어진다. 특히 경북권에 있는 학생들은 거리가 먼 탓에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김종재 대구청소년비행예방센터장은 "경북권에 있는 학생들은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 부모의 여건 등을 고려할 때 사흘간 진행하는 교육에 하루밖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비행예방교육을 담당한 한 강사도 "소년사건을 다루는 판사들이 경북권에 있는 학생들에게는 대구까지 가서 교육받으라고 하기 어려워 교육수강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고 아쉬워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비행예방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는 높은 편이다. 한국리서치가 지난 2019년 교육을 수료한 지 6개월이 지난 학생을 대상으로 학교적응과 재비행 여부 등을 조사한 결과 수료생의 93.9%가 사회적응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교육을 수료했던 한 학생은 "특별교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긴장되고 무서웠는데 교육받으면서 미래에 관한 생각과 지금까지 살아온 과정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다"며 "학교도 조금 더 성실하게 다니고 흡연도 웬만하면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김형태 대구가정법원장은 "경북은 지역이 넓다 보니 북부와 동부에 센터가 하나씩 들어설 필요성이 있다"며 "예산 문제로 인해 부지확보 등이 어렵다면, 교육부와 연계해 폐교를 활용해서 비행청소년 전담센터를 만드는 방법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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