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사실상 ‘노란봉투법’ 입법 행위한 대법원

기업이 불법 파업에 가담한 노조원들에게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조합원 각자의 불법행위와 손해 기여 정도에 따른 개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현대자동차가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 참여 근로자 4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한 원심을 파기환송한 것이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은 노조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이다. 현재 관련 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로 국회에서 아직 논의 중인 법안 내용을 사법부가 미리 인정해 준 셈이 됐다. 앞으로 비슷한 재판이 열릴 경우 하급심은 대법원 판례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 대법원이 판례로 사실상 '노란봉투법' 입법 효과를 내는 셈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노동쟁의에 대해 기업이 손해배상 소송을 포기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다수 노조원이 복면과 마스크를 쓰고 시설을 점거할 경우 개개인의 신원조차 파악하기 어려운데, 누가 무엇을, 얼마나 부수고 방해했는지 명확히 밝히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사법 적극주의'를 넘어 사실상 사법의 입법화, 사법의 정치화라고 할 수 있다.

김명수 대법원 체제 이후 우리나라 사법부는 대단히 정치화됐다.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 판사들과 대법관들은 '자기 진영' 관련 재판은 한없이 질질 끌거나, 범죄 혐의를 받는 단체장 임기가 끝나도록 유무죄 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반면 상대 진영(국민의힘 또는 우파)에 대한 재판은 속전속결로 진행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감찰무마 의혹 등을 제기했던 김태우 강서구청장(국민의힘 소속)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금방 구청장직을 상실한 게 그런 예다.

막무가내 국회라는 비판을 받지만 그럼에도 국회는 여야가 선거를 의식해 민심을 읽고, 법안이 미칠 사회적·경제적·외교적 영향을 고려한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이 19·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됐으나 모두 폐기됐고, 21대 국회에서도 첨예한 입장 차이 속에 여전히 논의 중인 것도 그런 고민 때문이다. 그런데 사법부가 입법을 견인하는 판결, 입법을 촉구하는 판결, 사실상 입법 효과를 내는 판결을 내렸다. 이런 식이라면 '삼권분립'은 무의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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