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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퍼스트와 세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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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며칠 전 받은 한 연주 섭외에서 시작됐다. 일정과 곡목을 이야기한 뒤, 언제나처럼 제1바이올린(퍼스트)과 제2바이올린(세컨)의 파트를 정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잠깐의 긴장을 느꼈다. 어느 자리를 맡든, 그에 따르는 책임과 부담을 이미 여러 번 경험해왔기 때문이다.

현악사중주나 앙상블을 준비할 때, 바이올린 전공자들 사이에는 유독 말수가 줄어드는 순간이 있다. 앞에 설 것인지, 옆에서 균형을 잡을 것인지 정해야 할 때다. 이 장면이 얼마나 조심스러운지는 현악기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선택은 단순한 파트 배분이 아니다. 음악 안에서 어떤 자리에 설 것인가, 어떤 방향의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가깝다. 퍼스트는 템포와 음악의 색채를 먼저 제시한다. 작은 흔들림도 전체로 전달되기에 판단의 부담을 먼저 짊어진다. 선율을 맡는다는 것은 곧 결정의 책임을 맡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 자리는 늘 눈에 띄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반대로 옆자리는 앙상블의 균형을 들으며 소리의 결을 맞춘다. 리듬과 음색으로 중심을 잡아, 전체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한다. 자신이 드러나기보다는 윗선율을 아래에서 받치거나, 중간 화성의 자리를 맡는다. 두 자리는 성격이 다를 뿐, 어느 쪽도 가볍지 않다.

무대 위에서 이 둘 사이에 기싸움이 이어지는 일은 거의 없다. 파트가 정해지고 나면 연주자들은 각자의 자리를 받아들이고 연주에 집중한다. 개인의 감정보다 음악이 앞서는 순간이다. 다만 그 이전, 파트를 정해야 하는 짧은 시간에는 말수가 줄고 서로의 표정을 살피는 긴장이 스친다. 결정과 함께 그 공기는 빠르게 정리되고, 연습은 다시 음악의 문제로 돌아간다.

퍼스트와 세컨이라는 말은 원래 역할을 구분하기 위한 언어였을 것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 말이 역할보다 순서를 먼저 떠올리게 할 때도 있다. 기대와 비교가 자연스럽게 붙는 이름. 음악 안에서는 여전히 단순한 구분일 뿐이지만, 말의 어감은 음악 밖의 감정을 먼저 불러온다. 어쩌면 퍼스트와 세컨이라는 말이 이미 서열처럼 읽히고 있기 때문에, 그 자리를 정하는 순간은 늘 조심스러워지는지도 모른다. 앞과 옆을 가르는 단어는 역할을 설명하기보다 먼저 순서를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퍼스트 바이올린이 '칸타빌레 바이올린', 세컨 바이올린이 '돌체 바이올린'처럼 불렸다면 어땠을까. 순서 대신 성격과 역할이 먼저 떠오르는 이름이었다면, 그 자리를 정하는 순간의 공기도 지금과는 조금 달랐을지 모른다.

우리 삶에도 이런 자리가 있다. 앞에 서서 노래하는 자리, 옆에서 부드럽게 받쳐주는 자리. 이름은 달라도 역할의 무게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그 무게는 순서로 환산되지 않는다. 퍼스트가 흔들리면 음악은 길을 잃고, 세컨이 흔들리면 음악은 버티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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