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찰의날]32년 간 ‘날개없는 기부천사’ 대구성서서 윤흥용 경감

매달 33만원씩 8개단체 기부… 주말엔 복지관 봉사활동
1991년 업무 수당 절반 모교 결식아동 전달하며 시작
"제가 알려지는 것보다 경찰 기억해주는 것이 더 큰 보람"

윤흥용 성서경찰서 교통조사팀장.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윤흥용 성서경찰서 교통조사팀장.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제가 돈 써봤자 먹고 마시는 것밖에 더 있겠습니까. 그 돈이 힘들고 어려운 분들에게로 가서 귀하게 쓰이는 것이 더 의미 있죠."

지난 19일 만난 대구성서경찰서 교통사고조사팀 소속 윤흥용(58) 경감은 기부 사실을 알리는 게 조금은 '멋쩍다'면서도, 자투리 돈으로도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게 '기부'라며 말문을 열었다. 때로 후원받는 사람들이 윤 경감의 직업을 알고 "한국 경찰은 정말 친절하다"는 말을 건넬 때면 특히 큰 보람을 느낀다.

윤 경감은 요즘 매달 33만원을 재가가정복지회 등 8개 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주말에는 뇌성마비 복지관에서 목욕 봉사를 하고,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은행 업무 등을 처리하느라 분주하다.

한창 젊을 땐 밤마다 '보육원에서 사라진 아이를 찾아달라'는 삐삐(휴대전화 이전 사용하던 무선호출기) 호출을 받고 퇴근 이후에도 뛰어다녔다. 그렇게 32년 간 6천500만원을 기부했고 978시간의 봉사를 했다.

윤 경감이 다른 사람을 돕기 시작한 배경에는 지난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기울면서 새벽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부족한 살림에 급식비도 내지 못했다. 점심시간은 짝꿍이 가져온 빵 반쪽을 얻어먹으며 버텼고, 학교 마치고 집에서 먹는 국수 한 그릇으로 하루의 허기를 달랬다.

어린 나이에 밥 굶으며 눈치 보는 것이 얼마나 서러운 일인지 알았기에, 1991년 막 경찰이 되자마자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생애 첫 업무 수당을 손에 쥐었던 그날, 윤 경감은 모교인 성서초등학교에 연락했다. 당시 그는 업무 수당으로 20만원을 받았는데, 그 중 절반인 10만원을 결식아동 4명의 급식비로 이체했다.

이후 지금까지 32년 동안 학생 3명과 결연해 매월 급식비를 1인당 3만원씩 지원했고, 지금까지 총 2천300만원을 기부했다. 지난 2017년 초등학교 급식이 무상으로 전환되면서, 성서초등학교는 '윤흥용 장학금'을 신설해 후원 형식을 변경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윤 경감은 2021년부터 매년 110만원의 장학금을 학교에 지원하고 있다.

윤 경감은 배고픈 사람들이 있다면 세계 어디라도 후원금을 전달했다. 2003년 9월부터 국제기아대책기구를 통해 개발도상국 아동들에게 20년에 걸쳐 2천100만원을 기부했고, 이 외에도 국제어린이양육기구인 한국컴패션에 14년 동안 1천100만원,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9년간 330만원을 기탁했다.

모아놓고 보면 큰돈이지만 윤 경감은 그저 매달 적게는 1만원, 많게는 5만원씩 단체에 기부했던 게 쌓였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3만원 기부로 지구 반대편에 사는 한 가정을 도왔던 기쁨은 잊을 수 없다. 윤 경감은 "그 돈으로 염소를 세 마리 샀는데, 그걸 밑천으로 자식들 학교 보내고 밥을 먹인다며 사진을 보냈더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며 "그 집 아이들이 자라면 도움받았던 일을 기억하고 다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거라 믿는다"고 했다.

또 기부를 통해 자신이 알려지는 것보다 대한민국 경찰의 이미지가 좋아지는 것이 훨씬 더 기쁘다고도 했다. 윤 경감은 "가끔 국내외 단체에서 후원자 사진을 요청하면 제복 입은 모습을 보낸다. 그들이 저는 알지 못하더라도 '한국 경찰과의 추억'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후원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퇴직 후 오히려 본격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서도 사회복지학을 전공했다.

윤 경감은 "다른 사람들은 이 돈을 모아 저축했으면 더 큰 돈이 됐을 거라고 하지만, 저는 그 돈으로 많은 가족들에게 도움이 됐다는 사실이 더 행복하다"며 "저라는 개인을 넘어서 경찰 조직과 사회 전체에 건전한 기부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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