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 고흐의 '신발'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누군가 벗어놓은 신발 한 켤레인데, 그 모양이 낡고 해져서 볼품이 없어 보입니다. 어느 책에선가 이를 '타인의 신발을 신고 걸어보라(Walk a mile in one's shoes)'로 해석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고 그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공감하는 것은 불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을 알아가고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홀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는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나와 우리 이웃의 다양한 일상에 대한 기록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남형도 지음)은 하루일지라도 타인이 되어 살아본 일상의 기록입니다. 그 타인은 누군가 벗어놓은 남루한 신발처럼 주목받지 못한 삶입니다.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시선의 끝에 있습니다. 때로는 나를 이루지만 내가 주목하지 않는 '나'일지도 모릅니다.
책 제목의 '체헐리즘'은 체험과 저널리즘의 합성어입니다. 기자인 저자가 생생하게 체험한 것을 에세이처럼 썼습니다. 저자는 남성이고, 비교적 젊고, 육아 경험이 없습니다. 그런 그가 한여름에 여성 속옷(브래지어)을 입고 일상생활을 해보고, 어린 두 남매의 보호자가 되어 하루 종일 놀아주고, 노인 분장을 해서 80세 노인의 삶을 경험해 봅니다. 폐지 줍는 사람과 온종일 폐지를 주우러 다니고, 집배원과 우편물을 배송하기도 하고, 소방관이 되어 35kg 방화복을 입고 계단을 오르내립니다. 벚꽃축제를 방문하는 시각장애인이 돼보기도 하고, 청소부가 되어 길거리의 오물을 처리하기도 합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를 이루는 주변에는 많은 이웃들이 있습니다. 운전 중에 지나치던 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늘 바쁘고 급해 보이는 오토바이 배달원과 무릎을 바닥에 꿇고 종이박스를 분리하던 할아버지까지 이 책을 읽는 내내 스치고 지나갑니다. 그들과 나는 같은 시대, 같은 공간을 살아가지만, 나는 그들에게 이웃이었을까요?
저자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색 체험 혹은 탐색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거절당하거나 거절하기, 착하게 살기 거부하기, 스마트폰에서 시선 떼기, 친구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기 등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나를 돌보지 않고 버려둔 영역이 있나요? 내가 정말 바라고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경험하게 합니다.

◆다운증후군 딸과 함께 성장한 엄마의 기록
'은혜씨 덕분입니다'(장차현실 지음)의 저자는 다운증후군 딸 '은혜'와 함께 겪고 성장해 온 일상의 이야기를 만화 형태로 들려줍니다.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겪는 고단한 삶이 엿보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사랑스러운 아이의 모습 속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 여느 부모와 다를 바 없는 책임감이자 애정입니다.
나에게 다가온 불행과 절망이 슬픔과 외로움으로 우리를 지치고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이기에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고 맡겨진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세상이 딸에게 던지는 편견에서 벗어나 딸이 가진 고유한 개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엄마는 단단하게 성장합니다.
이렇게 자라 어느새 서른을 넘긴 딸은 엄마에게 또 다른 삶의 기쁨이자 자랑이 됩니다. 드라마 배우로 TV에 출연하기도 했고,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가진 화가로 왕성하게 활동하는 작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처음 딸의 장애를 알았을 때 딸과 함께 세상에 덩그러니 내쳐진 듯했고, 생계비 또한 막막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곁에는 늘 누군가 있었다고 합니다. 친구들, 선후배들, 가족들, 그리고 선뜻 손을 내밀어 준 세상의 많은 이웃들 말입니다.
타인의 신발을 신어 보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타인과 나를 동일시할 수는 없더라도 그도 누군가의 가족이며, 소중한 삶을 살아내고 있음에 주목해 보면 어떨까요? 작은 것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부분들, 주목하지 않았던 삶을 통해 우리는 인생을 배우게 될지 모릅니다. 그것은 이웃과 살아가는 방법이면서 동시에 나를 돌보는 일일 겁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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