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 생파해요."
한 아이에게서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땐 시골 할머니 댁에 파를 가지러 간다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말을 계속 듣고 있다 보니 시골 이야기가 아니었다. 결국 아이에게 '생파'가 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아이는 생파가 '생일 파티'의 줄임말이라고 설명했다.
◆ '버카충'·'ㄱㅎ'·'패드립'… 외계어 같은 아이들의 언어
아이들과의 대화하다 보면 낯선 단어가 불쑥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뜻을 물어보기도 민망해서 인터넷으로 궁금한 단어를 찾아본 적도 많다. '버카충'은 '버스 카드 충전소'를 줄여서 한 말이고, '따아'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뜻한다. 뜻풀이를 듣고 나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줄어든 단어를 처음 들을 땐 마치 외계어처럼 낯설었다.
또한, SNS로 소통하는 일이 다반사인 아이들은 온전한 단어를 쓰기보다 단어의 초성만으로 문자를 보내는 일도 잦다. 'ㅈㅅ'은 '죄송'을 뜻하고, 'ㄱㅎ'은 '극혐, 극한 혐오(매우 싫다)'는 의미를 담은 축약어이다.
뿐만 아니라 전혀 의미를 예측할 수 없는 새로운 신조어도 많다. 순간적인 재치를 의미하는 '드립'이나 매우 좋은 아르바이트를 뜻하는 '꿀알바' 등을 신조어의 예로 들 수 있다. 특히 부모에 대한 욕을 의미하는 '패드립'이라는 신조어는 학교폭력과 연관된 문제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덕후'나 '어그로', '디스' 등의 낯선 신조어의 어원을 찾아보면 인터넷 만화나 게임에서 파생된 경우가 많다.
◆내뱉은 말은 돌고 돌아 자신에게 다시 스며든다…
낯설고 오염된 언어의 홍수 속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그렇다고 아이들의 말을 막을 순 없다. 어떤 일이든 강제로 하면 역효과가 일어나는 법이다. 아이들 스스로 오염된 언어를 순화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기주 작가는 '언어의 온도', '말의 품격'이라는 두 권의 책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언어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언어의 온도'에서는 말과 글에 담겨 있는 따듯함과 차가움을 설명했다.
"사람의 입에서 태어난 말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냥 흩어지지 않는다. 돌고 돌아 어느새 말을 내뱉은 사람의 귀와 몸으로 다시 스며든다." 이는 '말의 품격'에 나온 문장 중 하나로, 부메랑이 돼 자신에게 돌아오는 말이 나쁜 말이라면 어떨지 생각해 보게 해준다. 한창 자라날 아이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오염되고, 오염된 말이 다시 아이들 자신에게 돌아와 스며든다고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 따뜻한 언어의 텃밭을 만드는 것이 어른의 할 일
비단 오염된 언어는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무분별한 언어가 송출되기도 한다. 어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심각하게 오염된 탓이다. 윗물이 맑지 않은데 아랫물이 맑기를 바랄 수가 없다. 어른들부터 스스로 자신의 언어를 점검해야 한다. 또한, 생각을 담고 있는 그릇인 언어를 올바르게 사용하려면 생각부터 바로 서야 한다. 어른들의 뒷모습을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어른들의 생각과 말부터 맑고 투명하게 걸러야 할 것이다.
유대인들의 경우 매주 금요일 저녁 식사 시간은 일종의 가족 의식과 같다고 한다. 저녁 식사는 감사 기도로 시작되고, 식사 시간 동안 절대로 자녀를 꾸짖지 않는다. 대화를 소중하게 여기며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예절을 배우도록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밥상머리 교육이 있다. 어른이 수저를 들 때까지 기다리며 절제를 배우게 하고, 같이 나눠 먹는 태도를 통해 타인에 대한 배려를 가르쳤다. 또한 밥상을 마주하고 예의를 지키며 나누는 대화를 통해 잘 골라진 언어가 오고 간다.
아이들의 언어의 텃밭은 가정이어야 한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자랄 수가 없다. 가정에서 따뜻한 언어로 뿌리내린 아이들의 언어는 아무리 오염된 언어의 홍수가 닥치더라도 굳건히 올바르게 버텨낼 것이다. 학교에서도 아이들의 따스한 언어가 싹을 틔우고 자라날 수 있도록 언어 순화 교육을 하며 생활 지도를 해나간다면 아이들의 입에서 아름다운 언어의 꽃이 피어나리라 믿는다.
교실전달자(초등교사, 초아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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