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달팽이 1〉
–빛과 어둠
유리 절벽에 그가 심겼다
빛의 화살을 맞고 타는 맨몸, 화형당하고 있다
눈멀어 돌아본다
어둠을 뛰쳐나온 아픔이 유리문 꼭대기에 기어올라
끈적이며 뒤척인 길
길게 그어 놓은 생(生)이 구불텅하다
꽁무니가 뱉아낸 체액,
번쩍이는 햇살의 계단 뜨겁겠다
무슨, 저런 희고 빛나는
꼬리 감추고 있었던가
어둠에 갇혔다가 끝내 빛에 갇혔다
어둠을 갈아 힘주며
그어 내린 한 획,
참 길고도 확실하다
체액으로 쓴 상형문자, 숨겨둔 암호다
흘러내린 쉰 머리카락 한 올
참! 끈끈하고 질기겠다
환한 어둠 속, 더듬이 왕관 높이 세운 칠흑 왕자
어둠을 먹는 벌레는 빛이 그리워
해오라비 난 꽃 심장을 따먹었지
어둠의 만찬은 꽃 배만 불러,
꽃의 꿈은 훔칠 수 없었지
댕강, 모가지 부러뜨린 풀꽃 먹고사는
말 못하는 천사
집 없는 먼 길, 울음은 배 밑에 감춘 채
말을 모르는 말이 튀어나와
터지는 침묵,
이슬 먹은 흰 피 맑았지,
누더기 한 벌 입어 본 적 없는 살 뭉텅이
다리, 팔도 없이,
뭣을 먹을까 입을까 걱정이 없이, 더듬이 춤추며
벗어도 부끄럽지 않던 벌거숭이는
헝크러진 꿈 그려내었지
검은 낙원에서 탈출한 민달팽이
타는 햇살에 찔려, 환희 눕는다
관통하는 불볕, 스스로 다비한 몸
길고 흰 그림자, 유리 절벽에 심고
날아오른다
날개를 달았겠지
<시작 노트>
환한 대낮, 큰 유리 창문을 기어오르는 민달팽이가 며칠 동안 그어 놓은 희고 끈적한 흔적, 길고 구불텅한 길은 맨몸으로 살아낸 빛과 어둠의 일생이 아닌가 어둠을 살아, 빛을 그리워하던 길. 불타는 햇살을 맞아 승천하는 모습이 장하다. 하늘은 꽃을 품고 다시 문을 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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