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이 지난달 발생한 초대형 산불로 역내 사과나무가 큰 피해를 입으면서 사과 주산지 명성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지난 18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덕천3리. 잿빛으로 바랜 사과나무들이 한 달째 봄을 맞이하지 못하고 있다. 대여섯 줄 가지런히 서 있던 나무들은 여전히 껍질이 벗겨진 채 서 있고, 그 끝에 맺혀 있어야 할 꽃눈은 불길에 모두 사라졌다.
"나무는 겨우 살았는데…. 꽃눈이 다 타버려서, 올해는 아무것도 못 해요."
정상충(70) 이장은 밭 앞에서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검게 그을린 가지가 들려 있었다.
덕천3리는 청송에서도 특히 품질 좋은 사과가 나기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지난달 25일 덮친 산불은 마을 전체를 집어삼켰다. 주민들이 손수레에 물통을 싣고 불길을 막으려 했지만, 강풍을 타고 퍼진 화마에 속수무책이었다.
"평생 가꾼 나무들이 순식간에 타버렸습니다. 몇십 년의 시간이 사라졌어요."
정 이장은 '복구'란 단어에 쉽사리 고개를 끄덕이지 못한다. 그는 "지금 살아있는 나무도 한 달 지나는 동안 수십 그루나 말라죽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산불이 헤집고 간 상처가 너무나 깊다"고 말했다.
청송군 내 주요 사과 재배지인 파천면, 부동면 등 200ha 이상이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었고, 이 중 상당수는 뿌리까지 불에 타 사실상 폐원에 가까운 상태다. 더욱이 산불 이후 이어진 냉해는 남아 있던 희망마저 꺾었다. 4월 초 기온이 영하 3도까지 떨어지면서 살아남은 나무의 꽃눈마저 얼어버린 것이다.
청송군 농업기술센터 하경찬 소장은 "냉해 방지 장비가 설치된 지역도 많지만, 산불 피해 지역은 장비 이전에 나무 자체가 생육이 불가능한 상태"라며 "복구보다 전면적인 재조성이 필요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농민들이 체감하는 '복구'는 여전히 먼 이야기다.
지경리 이장 이양우(65) 씨는 "집도 잃고, 사과밭도 잃었는데 지금 우리가 들은 건 '조사 중'이라는 말뿐"이라며 "도움은 고사하고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와 지자체는 농림축산식품부 주도로 재해복구비 지원과 재배지 전수조사에 나섰고, 산림청은 피해 면적의 산림 복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복구 절차는 더디고, 지원 규모는 농민들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지적도 있다.
정 이장은 "누가 언제 얼마나 도와준다는 걸 기다리기도 지친다. 중요한 건, 지금 이 땅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불에 탄 밭 가장자리에 아직도 남아 있는 관수 파이프를 가리켰다. "저건 녹아서 못 씁니다. 다시 깔아야 해요. 그런데 농민들은 당장 돈이 없어 발만 구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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