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눈〉
가만히 열리는 몸 깊이 들어가
헛간 한 채 짓는다
냉랭한 길 한참을 걸어온 나
고된 발 차가운 가지 끝에 놓고
봄의 틈을 벌린다
운주사 달빛에
몸 와불처럼 눕혀놓고
입김 호호 불며
언 발 씻겨주던 매화 그녀
가닥가닥 머리카락
헛간 문 열고 나와
가만 내밀던 말간 이마
그 꽃, 그립다

<시작 노트>
매일신문 신춘 문예 출신이며 부산일보 사장을 지내신 김상훈 선생님은 나의 초등학교 4학년 담임 선생님이셨다. 시인이셨던 선생님은 틈틈이 우리에게 글을 쓰게 하셨다. 학년을 마치고 헤어지는 마지막 날, 그간 써온 코흘리개들의 글을 한 권의 학급 문집으로 만들어 나누어 주셨다. 그 문집의 제목은 겨울눈이었고, 표지 그림도 보송보송 망울진 나무의 겨울눈이었다. 그 문집의 머리글에 선생님은 '우리 서로 잊지 말자는 것이다'라고 쓰셨다. 겨울이 가고 봄이 터지려 할 때 함께 부풀어 오르는 겨울 지난 나무의 눈을 보며, 그때마다 그 시절로 들어가 선생님을, 그리고 그때의 개구쟁이들을 기억했다. 봄 오는 길목을 며칠째 걸어 다니며 그제도 오늘도 선생님께서 우릴 보셨듯이 꿈을 키우는 망울들을 본다. 하루가 다르게 봄의 문을 열어가는 그들을 보면 지나온 냉랭한 시절과 위로의 입김들 모두 다 따뜻한 그리움이 된다. 봄이 점점 가까이 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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