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물방울 화가' 김창열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

8월 22일~12월 21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물방울로 향하는 창작 여정 총망라
미공개 31점 등 120여 점 대거 출품

김창열, 물방울,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5×100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물방울, 1979, 캔버스에 유화 물감, 80.5×100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물방울 ABS N°2,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195×130cm, 샘터화랑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물방울 ABS N°2, 1973, 캔버스에 유화 물감, 195×130cm, 샘터화랑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물방울, 1986,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73×50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물방울, 1986, 캔버스에 아크릴릭 물감, 유화 물감, 73×50cm,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한국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 김창열의 작고 이후 첫 대규모 회고전이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22일 개막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의 창작 여정을 세밀하게 조명하는 한편, 작품 세계에 내재된 근원적인 미의식을 중심으로 물방울 회화의 전개 과정을 탐색한다.

전시는 6, 7전시실에 ▷상흔 ▷현상 ▷물방울 ▷회귀 등 4개의 장으로 구성됐다. 8전시실에는 미공개 자료와 작품들로 이뤄진 '별책부록'과 같은 공간을 구성, 작가의 삶과 창작 과정을 다각도에서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첫 번째 장 '상흔'은 김창열의 초기작을 중심으로, 작가의 예술세계가 형성된 시대적 배경과 활동을 살펴본다.

평안남도 맹산 출신인 그는 16세 즈음에 홀로 월남해 고향을 떠났다. 해방과 분단, 전쟁이라는 격동의 시기를 거치며 내면화한 삶과 죽음의 문제는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형성하는 중요한 토대가 됐다.

1950년대 후반, 작가는 새로운 미술에 대한 열망을 품고 상처를 형상화하는 중요한 출발점이 된 '현대미술가협회' 창립을 주도하며 한국 앵포르멜 운동을 이끌었다. 동시에 파리비엔날레(1961)와 상파울루비엔날레(1965) 등 국제 무대에 참여하며 한국현대미술의 해외 진출을 개척했고, 이는 작가 개인에게도 중요한 예술적 전환의 계기였다.

전시장에서는 상파울루비엔날레 출품작과 더불어 앵포르멜 이전 시기의 작품으로는 첫 공개되는 1955년 작 '해바라기' 등 작가의 창작 초기와 그가 마주한 시대적 상황을 함께 살펴볼 수 있도록 구성했다.

두 번째 장 '현상'은 뉴욕, 파리 전환기의 작업을 중심으로,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던 추상회화와 물방울의 기원을 암시하는 조형적 징후들을 살펴본다.

1965년 그는 김환기 작가의 권유로 록펠러 재단의 지원을 받으며 뉴욕으로 건너갔으나 그의 앵포르멜 회화는 뉴욕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고, 자본주의 소비사회에서 느낀 정서적 이질감은 그에게 깊은 소외감과 회의를 안겼다. 그는 이 시기 앵포르멜의 두터운 질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전환을 모색, 정제된 화면 위에 기하학적 형태와 착시적 공간감의 조형 실험을 전개한다.

이후 1969년 뉴욕에서 파리로 이주했는데, 이 시기에 제작된 '현상' 연작은 이전의 차가운 기하학적 형태가 녹아내리는 듯 유기적 형상으로 바뀌었고, 응집된 덩어리는 마치 인체의 장기처럼 점액질로 표현됐다. 이때의 실험은 '물방울' 회화의 전조로 중요한 이정표가 된다.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뉴욕시기 미공개 회화 8점과 드로잉 작업 11점, 그리고 최초의 물방울 작품으로 알려진 '밤에 일어난 일'(1972)보다 앞서 제작된 1971년의 물방울 회화 2점이 최초 공개된다.

김창열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창열 전시 전경.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세 번째 장 '물방울'에서는 김창열 회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물방울의 조형적 특징과 그 전개 양상을 조명한다. 캔버스에 맺힌 물방울이 완결된 형태의 조형성을 보이며 끈적이던 점액질 형상이 마침내 투명한 물방울로 변화하는데 이는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닌, 오랜 조형 실험과 존재론적 사유 끝에 도달한 결과였다.

작가는 파리 외곽 마구간 작업실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물방울 작업에 전념했으며, 1973년 파리에서 개최한 개인전을 계기로 본격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에어스프레이(Air spray) 기법을 활용해 극사실적인 물방울을 그렸고, 점차 캔버스와의 물리적 관계를 재고하면서 얼룩, 콜라주 기법을 도입하는 등 작업의 형식을 확장해 나갔다. 1973년 초기 물방울부터 후기 물방울까지 대표적 작품들이 전시된다.

마지막 장 '회귀'에서는 천자문 작업에서 나타나는 언어와 이미지의 관계를 통해 창작과 사유의 근원을 마주한다.

1980년대 중반, 김창열은 화면에 문자를 도입하며 새로운 표현 세계를 열었다. 신문지 위에 물방울을 그리는 과정에서 글자와 이미지가 맺는 긴밀한 관계에 주목했고, 이는 천자문을 활용한 '회귀' 연작으로 이어졌다. 문자와 물방울이 조우하는 이 작업은 김창열 예술의 본질을 드러내는 조형적 성취이자, 존재의 뿌리를 되묻는 성찰의 흔적이다.

특히 이 공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이후 처음으로 공개되는 7.8m 규모의 대형 작품 '회귀 SNM93001'(1991)이 전시된다. 작가의 삶과 예술 여정을 그의 육성을 통해 들을 수 있는 영화 '물방울을 그리는 남자'의 축약본도 함께 볼 수 있다.

8전시실에 마련한 작가 관련 아카이브 공간 '무슈 구뜨, 김창열'은 그의 삶과 예술의 또 다른 면모를 비추는 별도의 공간이다. 파리에서 그가 불린 '무슈 구뜨(Monsieur Gouttes·물방울 씨)'에서 따왔다.

이곳에서는 작가가 오랫동안 상상력의 원천으로 삼았던 초현실주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상형시 'Il pleut(비가 온다)'에서 착안해 제작한 작품이 소개된다. 물방울로 시의 구조를 번역해낸 이 작품은 국내외에서 처음으로 전시돼 그 상징성이 더욱 깊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그동안 미흡했던 작가의 연구를 보완하고 공백으로 남아있던 시기의 작품을 통해 김창열 예술세계를 총체적으로 살펴보는 계기"라며 "김창열이라는 예술가를 새롭게 발견하고 재정립하는 기회이자, 그의 삶과 예술이 지닌 고유한 미학과 정서를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12월 2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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