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이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에게 선거법 위반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이영림 춘천지검장은 지난 2월 검찰 통신망에 "헌법재판소 재판관의 태도는 일제 치하 일본인 재판관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을 비판했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곤두박질치는 중에 추상같은 대법원 판결은 법관이 식민 판사가 아님을 보여줬다. 안중근 의사의 독립투쟁 궤적을 좇으며 고대 사회 정의로운 재판 사례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들춰본다.

◆하얼빈, 철도역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
중국 동북 3성의 맨 북쪽 흑룡강성 성도 하얼빈역으로 가보자. 겨울에 혹한의 추위가 일상이고, 중국 남부에 비해 사람들 체격이 훨씬 커 일견 낯설다. 그러면서도 익숙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배운 역사적 사건 때문이리라. 안중근 의사의 이등박문 사살. 새로 지은 하얼빈 철도역 건물 왼쪽에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보인다. 2014년 중국 정부가 역사적인 쾌거를 기념해 조성했다. 입구 위에 9시 30분을 가리키는 시계가 역사적인 그날을 떠올린다.


◆하얼빈 철도역, 이등박문 사살 현장 기념 유적 보존
1909년 10월 26일 9시 30분경. 이등박문이 러시아 재무장관 코코체프를 만나기 위해 특별 열차에서 플랫폼으로 내렸다. 대한독립군 참모중장 신분으로 독립운동을 벌이던 안의사는 러시아 측 인사로 위장해 플랫폼 환영인파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는 브라우닝 M1900 권총을 꺼내 6~7m 거리에서 미리 확인해 둔 이등박문 얼굴을 보며 7발을 발사했다.
3발이 명중돼 이등박문은 즉사했고, 일본인 3명이 다쳤다.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안중근은 현장에서 체포돼 10월 31일 요령성 최남단 여순으로 이송됐다. 안중근이 거사를 펼친 플랫폼은 안중근격필이등박문사건발생지(安重根击毙伊藤博文事件发生地)라는 표지와 함께 역사 현장으로 보존됐다.

◆여순, 청일전쟁 뒤 3국 간섭으로 러시아, 러일전쟁 뒤 일본 차지
고구려 시대 연개소문이 쌓은 천리장성의 맨 남쪽 관문 비사성이 대련(大連)이다. 여기서 남쪽 요동 반도 끝으로 1시간 거리에 여순(旅順)이 자리한다. 여순일아감옥구지(旅顺日俄监狱旧址, 여순의 일본과 러시아 감옥유적)로 가보자.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요동 반도를 점령한다.
하지만, 중국 진출을 노리던 러시아가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3국 간섭을 통해 일본을 요동 반도에서 철수시키고, 요동 반도를 조차해 여순항을 개발하며 감옥을 지었다. 10년 뒤, 1905년 절치부심 일본은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뒤, 요동반도를 차지한다. 러시아 감옥도 접수해 일제의 감옥으로 바꾼다. 독립 투사 안중근을 바로 이곳에 수감한 것이다.


◆주은래, 일본 제국주의 반대투쟁은 안중근에서 시작
감옥 유적에는 안중근 옥사가 잘 남아 있다. 교도소장 방 옆에 마련된 옥사에는 안 의사가 잠자던 침대와 『동양평화론(東洋平和論)』을 집필하던 책상도 오롯하다. 동아시아 3국(한국, 중국, 일본)의 평화 공존과 협력을 주장한 안중근 의사의 탁월한 평화 사상은 지금 되새겨도 시대를 앞서갔다. 동양 평화를 위해 이등박문을 처단했다는 안 의사의 논리와 결기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이곳 안중근 기념관에는 모택동과 함께 중국 현대사를 이끈 주역 주은래가 안 의사를 평가한 문구가 눈길을 끈다. "중일갑오전쟁(청일전쟁) 이후 중조인민의 일본제국주의 침략을 반대하는 투쟁은 본세기 초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등박문을 사살한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안중근은 이곳에서 1910년 2월 14일 사형 판결을 받고, 3월 26일 순국했다. 향년 32세의 열혈 청년이었다.

◆네덜란드 식민도시 바타비아(자카르타)
이제 발길을 인구 2억 8,572만 명으로 세계 4위 인구 대국 인도네시아로 돌려보자. 2월에 찾았는데, 기온이 30도가 넘어 하얼빈 추위와 정반대다. 향료 원산지를 찾아 대항해에 나섰던 포르투칼은 1507년 인도 고어 지방에 식민시를 설치하고, 1511년 말라카 해협을 거쳐 1512년 인도네시아 몰루카 제도에 도착한다. 향료 무역으로 대박을 터트린다. 여기에 네덜란드가 끼어든다.
1596년 자바섬 반텐 항에 닻을 내리고, 1602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를 설립한다. 국가로 군림했던 VOC는 1619년 바타비아(Batavia, 자카르타)를 식민 통치의 중심지로 삼는다. 2차 세계 대전 기간중 1942년 일본이 인도네시아를 점령할 때까지 네덜란드는 약 350여 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다(1945년 인도네시아 독립 선언, 1949년 네덜란드 공식 독립 승인).
◆네덜란드 식민 통치자 사무실에 걸린 '사법정의' 그림
오늘날 자카르타 구시가지(항구 근처)에는 네덜란드 식민 통치 시절 유적이 다수 남아 있다. 그중 파타힐라 광장 남쪽에 자리한 서양식 자카르타 역사박물관 건물이 눈에 확 띈다. VOC가 1627년 건립한 본사 건물이자 식민 통치 청사다. 식민지 세금, 치안, 재판 행정의 중심지로 삼아 감옥도 있었다.
400년 된 건물의 2층 집무실로 올라가면 3점의 그림이 파노라마처럼 벽 중앙에 펼쳐진다. 18세기 초 네덜란드 화가 더 나이스(J.J. De Nijs)가 그린 유화다. 작품 이름은 「세 가지 고대 재판 장면 그림(Lukisan Tiga Keputusan Pengadilan)」. 네덜란드 식민 통치자들이 집무실에 걸어놓고, 교훈으로 삼고자 했던 고대의 공정 재판 3가지는 무엇일까?

◆고대 페르시아 정복군주 캄비세스의 부패 판사 처형
맨 왼쪽은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 2세(재위, B.C. 530년~B.C. 522년)가 부정한 판사 시삼네스를 처벌하는 「캄비세스의 재판(The Judgment of Cambyses)」이다. 고대 서양사 최초, 최대 제국을 일군 키루스 대제의 아들로 아케메네스 패르시아 제국 2번째 왕인 캄비세스 2세는 이집트를 정복하며 영토를 최대로 늘린 정복 군주다.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내린 판사 시삼네스의 가죽을 벗겨 죽인 뒤, 그 아들을 새 판사로 임명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가죽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 판결하도록 지시한다. 판결할 때마다 부정 대신 공정을 생각하라는 조치다.이 장면은 고대를 넘어 르네상스 시기까지 서양 사회에서 사법 판결의 공정과 엄정함을 강조하는 에피소드로 널리 쓰였다.
르네상스 화가 제라르 다비드의 「캄비세스의 재판(The Judgment of Cambyses)」 그림은 1498년 플랑드르 지방(오늘날 벨기에 북주) 브뤼헤(Bruges) 시청사 법정 벽에 걸릴 정도였다. 플랑드르와 같은 언어 문화권인 네덜란드 VOC가 이 그림에 영향받아 식민지 재판정에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이때 널리 회자된 교훈은 다음과 같다. "공정한 재판이 국가의 근본이다(Just judgment is the foundation of the state)".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로크리의 엄정한 판사 자세
가운데 그림 「솔로몬의 재판」(김문환의 세계사 50회 2025년 1월 13일자 참고)을 넘어 오른쪽 그림 「로크리의 재판(The Judgment of Locri)」을 보자. 로크리(Locri)는 그리스인들이 B.C.7세기 이탈리아반도 남부에 세운 도시국가다. 이곳의 입법자 자레우코스의 엄중한 준법정신을 로마시대 그리스인 역사가 플루타르코스가 『도덕론집(Moralia)』에서도 언급한다.

전승에 따르면 로크리에서는 간통한 남자의 두 눈을 없앴다. 입법자 자레우코스의 아들도 간통죄로 걸려 예외 없이 처벌받아야 하는 순간. 자레우코스는 아들 눈 하나, 대신 자신의 눈 하나를 내놓는 판결을 내렸다. 법도 엄하게 지키면서 자식도 살리는 살신성인의 준법정신이 잘 묻어난다.
◆조국, 이재명 재판이 던지는 대한민국 사법부 공정성
4년을 끌던 조국 재판, '633' 선거법 재판 규정이 무시된 채 한없이 늘어지는 이재명 재판. 이런 예외 속에 조국은 정당을 만들어 국회의원이 됐고, 이재명은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라면 공정하지 못한 재판이다. 개그 코너 "그때 그때 달라요"도 유분수지. 피고인의 진영, 판사의 성향에 따라 재판 과정과 판결이 제멋대로 달라지는 사법부가 식민 재판만도 못하다는 오명을 제대로 벗어주길 기대해 본다.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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