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라는 단어가 많은 사람을 포함하는 공동체적 단어로 느껴지지만, 자칫 그 공동체에 속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배제의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나와 다름으로 인해 생기는 보이지 않는 경계와 존재하지만 존재를 부정당하기도 하는 냉혹한 현실 앞에서 인간은 소외감과 절망을 느낍니다. 이방인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속성은 우리 사회에 많은 안과 밖을 만들어 냅니다. 존재의 경계에 위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두 권의 책을 소개합니다.
◆사회에서 배척된 우리 안의 타인

'페터 슐레밀의 기이한 이야기'는 프랑스에서 독일로 망명한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의 1813년 소설 작품입니다. 우리나라에는 '그림자를 판 사나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동명의 공연도 상연되었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주인공 페터 슐레밀이 어느 부자의 별장을 찾아가는데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고 말도 섞으려 들지 않습니다. 마치 그의 가난하고 초라한 행색이 존재감마저 없애버리는 듯합니다. 이런 그의 비참한 마음을 파고드는 누군가가 있습니다. 바로 회색 옷을 입은 남자인데, 그는 필요한 것이 있으면 언제든 주머니에 손을 넣어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이런 기이한 능력을 가진 남자가 슐레밀을 뒤쫓아와서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혹시 그림자를 저에게 양도하실 의향은 없으십니까?"
처음에는 괴상한 거래라고 생각하지만 복주머니에서 금화를 마음대로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는 거래를 수락하고 맙니다. 하지만 후회는 하루를 넘기기 전에 찾아옵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자가 안 보인다며 불쌍해하고, 심지어 아이들은 따라다니며 놀리기까지 합니다. "제대로 된 인간은 햇빛에 나오면 그림자도 따라와야 해."
금화는 산더미같이 많지만 이제 그는 문밖으로 한 발짝도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그림자 없는 그를 깊이 동정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조롱하거나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믿었던 하인에게 배신을 당하고, 사랑하는 여인이 생기지만 그녀의 부모는 그림자 없는 사람에게 딸을 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고통받는 그에게 다시 회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나타나며 긴장감이 고조됩니다.
그림자는 무엇을 상징하는 것일까요?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려면 필요한 조건에 해당할 것입니다. 물질(황금) 혹은 겉모습으로 존재를 평가하는 세상에서 그림자가 없어 사회에서 배척된 사나이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경계를 생각하게 합니다.
◆배를 떠나지 않았던 천재 피아니스트

'노베첸토'는 알레산드로 바리코의 희곡 형태의 소설입니다. 무대를 염두에 둔 글이지만 대사나 지문이 없고 화자의 독백인 듯한 글이 길게 이어집니다.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원작이며, 음악극의 형태로 무대에 상연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노베첸토는 태어나 줄곧 배에서 살았으며 죽을 때까지 삼십여 년간 단 한 번도 배에서 내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는 가보지 못한 곳의 냄새까지 정확하게 묘사할 정도로 세상을 세밀하게 이해했고 책이 아닌 사람을 읽을 줄 알았습니다. 천재적인 재즈 감각으로 88개 건반 위를 활보하며 무한한 세상과 사람의 욕망을 연주합니다. 활자화된 이 책으로는 그의 재즈 연주를 상상할 수밖에 없기에 수많은 음악과 멜로디가 책을 읽는 내내 독자의 마음을 파고듭니다.
그는 존재한 사람이지만 그에 대한 공식적인 기록이나 호적은 없습니다. 그에게 바다는, 그에게 육지는 어떤 곳일까요? 육지에서 그는 이방인이 되지만 바다는 줄곧 그가 살아온 고향이자 정체성입니다. 언젠가 배에서 내리려고 두어 걸음 계단을 내려온 적이 있지만 그는 이내 배 안으로 돌아가고 맙니다. 그는 두려웠던 것일까요? 아니면 가보지 않아도 이미 육지의 삶과 욕망을 읽어버린 것일까요?
노베첸토의 곁에는 배에서 만나 친구가 된 트럼펫을 부는 투니가 있습니다. 그는 노베첸토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그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또한 페터 슐레밀에게는 충직한 하인이자 친구 같은 벤델이 곁에 있었습니다. 존재의 경계에 있는 이들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의 경계가 확장되는지 모릅니다.
대구시교육청 학부모독서문화지원교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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