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톨릭·교황 예술 순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가장 큰 성당-성베드로대성당

박미영 시인

성베드로대성당.
성베드로대성당.
성베드로대성당.
성베드로대성당.

서기 64년경 성베드로가 순교했다. 로마 테베레강 서쪽 네로황제의 경기장에서, 무참한 역십자가형이었다. 로마 대화재 책임 회피용, 민심 무마 희생양으로 체포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네로는 경기를 위장해 학살했다. 체포된 교도들 중 일부는 사자의 먹이로 던져졌고, 일부는 성베드로처럼 십자가형(그는 주 예수께서 십자가형을 당하셨으니 감히 같은 형은 가당치 않다해 역십자가형을 택했다)을 또 일부는 성바르톨로메오처럼 전신의 살갗이 벗겨지거나 황제 정원의 밤을 밝히는 횃불로 사용됐다.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잔혹한 순교 당하지 않은 이는 밧모섬으로 유배형을 치르른 사도 요한이 유일했다.

참으로 잔인한 나날들이었다. 하지만 이 처참한 박해는 공동체의 결속을 더욱 굳건히 다지게 됐고 그들의 희생을 무릅쓴 전도는 신앙적 감동을 전파해 카타콤(지하 묘지), 동굴에 숨어 믿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갔다. 이윽고 313년 기독교 최후의 박해자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뒤를 이은 콘스타티누스황제가 밀라노 칙령(Edictum Mediolanense, Edict of Milan)으로 그동안 금지됐던 종교인 기독교를 합법화시켰고 그 후 국가 공식종교로까지 승격시켰다.

콘스탄티누스황제는 모든 국민들에게 거짓 사원을 떠나 '생명의 빛을 주는 집'으로 들어가라 권했고 웅장한 궁전을 라테라노대성당(로마대성당, 모든 교회의 머리이자 어머니인 교회)을 당시 로마 주교였던 실베스테르에게 내리고 330년 콘스탄티노플로 천도했다. 예수가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라 했듯 로마는 황실이 아니라 '기독교 로마'로, 로마 주교가 교황이 되는 지금까지 서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황제도가 탄생하게 됐다.

서기 90년 아나클레토교황이 바티카누스언덕 베드로가 처형된 자리에 작은 사원을 지었다. 326년 지반이 약한 그 자리에 콘스탄티누스황제가 밀어붙여 라틴 십자가 모양 바실리카 양식 초기 성베드로성당이 세워졌다. 역대 교황의 무덤과 콘스탄티누스의 모후 헬레나가 예루살렘 성지순례 때 가져온 성 십자가, 성녀 베로니카의 수건, 롱기누스의 창과 같은 성유물이 봉헌됐다. 이곳에서 신성 로마황제 23명의 대관식이 열리고, '피핀의 기증'으로 교황령이 확정되는 등 천년 역사가 쌓이며 가톨릭 성지로 자리매김해가지만 서고트, 반달, 사라센, 노르만족의 침략, 아비뇽 유수 등의 부침으로 건물은 붕괴 직전이었고 1505년 율리오2세가 건물을 헐고 새 성당을 짓기로 결정해 대역사가 시작됐다.

천재들이 폭발적으로 출현하는 때가 있다. 바로 르네상스 시대다. 그 촉매 역할을 하게 된 율리오2세는 식스토4세의 조카로 막대한 금력을 가진 호전적인 야심가였다. 교황령을 넓히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던 그는 성베드로대성당 건립이 곧 자신의 권위라 생각하고 건축가 브라만테에게 성당의 설계를 맡겼다. 하지만 1513년 그에 이어 브라만테도 사망하자 라파엘로가 그 뒤를 잇게 되지만 그 또한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그 사이 대성당의 건축기금 마련을 위해 발부한 면벌부와 루터를 중심으로 한 종교개혁, 신성로마제국 카를5세의 로마 약탈(Sacco di Roma)로 스위스 근위병들의 희생으로 산탄젤로성으로 피신해 간신히 목숨을 구한 클레멘스7세는 절치부심해 페루치, 상갈로 등에게 성당의 건축을 다시 맡기지만 그 또한 이루지 못한 채 사망한다. 뒤를 이은 바오로3세는 시스티나성당의 천지창조에 이어 클레멘스7세의 명으로 최후의 심판을 그렸던 미켈란젤로에게 억지로 대성당의 건축을 맡기게 된다.

성베드로대성당.
성베드로대성당.

이미 70세를 넘긴 미켈란젤로는 내키지 않아 했으나 건축 전권을 위임 받은 그는 곧 마음을 바꿔 정력적으로 공사에 참여했다. 무보수를 천명한 그는 먼저 기존 인사에 대한 물갈이 작업을 하고 설계안을 대폭 수정해 천재적인 감각으로 르네상스 건축의 종지부를 찍는 걸작을 내놓는다. 특히 자신의 라이벌이었던 브라만테의 초기 설계도를 수용해 성당의 평면구조를 다시금 브라만테의 그리스 십자가 형태로 회귀시키고 브루넬레스키의 피렌체 두오모성당 돔을 측정해 공사했다.

1564년, 아흔을 앞두고 미켈란젤로가 돔의 벽체 부분인 드럼의 일부만 만들어진 상태에서 사망하자 비오 4세는 '그가 결정한 것에 대해서는 무엇 하나라도 절대 바꾸지 말라.' 명하고 그의 조수 비욜라를 친구이자 열렬한 미켈란젤로 찬미자였던 바사리와 함께 감리로 임명해 설계안대로 공사를 진행했다. 이후 포르타가 돔을 설계안보다 조금 뾰족하게 바로크식을 바꾸고, 바오로5세의 주장으로 마데르노가 종탑 2개와 교황 전용 발코니가 설치된 화려한 정면을 설계해 돔을 멀리서 바라봐야하게 됐다.

박미영 시인
박미영 시인

우르바노8세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베르니니는 성당 내부의 세부적인 장식을 설계해 청동 발다키노, 벽감 성상들, 베드로의 의자, 성체 경당의 장식을 제작하고 베드로가 예수에게 받은 열쇠 모양 또는 온 인류를 껴안는 긴 팔을 연상하게 하는 성베드로광장의 타원형 회랑을 완공했다. 성베드로대성당은 이렇게 교황 21명이 재위한 12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의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인류에게 새겨졌다.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지난 5월 9일, 우리에게 레오14세가 오셨다.

박미영 시인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