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팔리는 이야기'의 비밀은 이야기를 만든 '사람'에 있었네

[책]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전혜정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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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는 것에 몰리는 이 시대에는 스토리 산업조차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하다. 웹소설 작가가 억대 연봉을 벌고 글로벌 OTT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는 동시에, 순간적인 몰입도가 없는 서사는 금세 잊히고 사라진다.

그렇다면 살아남는 스토리는 무엇이 다른가. 책 제목은 직설적이다. 이미 레드오션이 된 지 오래인 콘텐츠 시장에서 뭘 써야 재미 있는 스토리, 팔리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제도권 대학에서 최초로 웹소설창작전공을 개설한 청강문화산업대의 전혜정 교수는 자신의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왜 제 이야기는 재미가 없을까요?"였다며 이 책을 시작한다.

물론 스토리의 성공 공식은 있다. 정해진 구조를 따라가며 이야기의 작동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도움이 되지만, 그 공식에만 천착하면 '비슷한데 재미없는 글'을 계속 쓰는 함정에 빠지기도 쉽다.

재미 있는 이야기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그는 지금 잘나가는, 인기 있는 스토리를 해부하는 대신 구석기 시대 어느 동굴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러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업계 트렌드나 독자의 반응만 좇는다고 해서 재밌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통찰이 우선돼야 스토리를 쓰면서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1부 '인간은 왜 그런 이야기를 쓰는가'는 이야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인류, 호모픽투스(Homo Fictus)가 매혹돼 온 이야기의 유형과 구조를 분석한다.

지은이는 사냥 성공을 기원하며 어두운 동굴에 벽화를 남기던 시대부터 '이야기'는 인간에게 있어 단순한 오락거리가 아니라 세상의 작동원리와 존재를 이해하는 근본적인 도구이자 본능 그 자체였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전쟁과 질병, 차별과 혐오, 상실과 죽음 등 가혹한 현실 앞에 놓인 인류는 '왜 세상이? 왜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가?'라는 의문을 가졌고, 그에 대한 그럴싸한 답을 찾기 위해 견고한 구조를 갖춘 답, 예를 들어 신화나 민담, 전설과 같은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것.

이러한 본능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지은이는 살아남는 이야기의 '세계관-인물-플롯' 삼각구조를 재해석한다. 그 어떤 이야기 설계 공식보다 쉽고 빠른 길은 바로 인간의 이해에 있었다.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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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 견고한 삼각구조를 넘어 몰입감이 넘치는 이야기를 설계하는 또 하나의 '킥'을 제시한다.

2부 '모든 이야기는 결핍에서 시작된다'는 독자들이 빠져드는 인간의 결핍에 대해 말한다. 우리는 결핍된 무언가를 회복하는 이야기를 통해 강한 위안과 대리만족을 느껴왔다는 것. 지은이는 이 결핍이라는 킥을 풀어내기 위한 과정을 캐릭터와 플롯 설정, 명대사, 메시지, 세계관 등 키워드별로 상세하게 설명한다.

3부 '본능을 자극하는 플롯 설계의 원칙'에서는 본격적으로 '독자의 멱살을 잡고 엔딩까지 한 방에 가는 법'을 제시한다.

영화 '헤어질 결심', '매드맥스'부터 만화 '은하철도 999'나 '나루토', 소설 '셜록 홈스와 같은 정통 추리물까지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스토리를 통해 ▷결핍을 향한 여정 ▷도플갱어와의 대결 ▷극적인 성장 ▷사랑의 덫 ▷운명적 선택 ▷질서의 회복 혹은 파괴라는 '사랑 받는 플롯의 6가지 원형'을 도출해낸다.

"주인공을 위한 맞춤형 관문을 창조하라", "결핍한 인물은 기싸움을 벌이고 거짓말을 한다", "세계관은 첫 화에서 약속하고 끝까지 지켜라", "사건은 지뢰처럼 터지지 않고 도미노처럼 연결된다"는 꿀팁도 담겼다.

이 책은 실용적 작법 이론을 다루고 있지만, 인간이 이야기를 통해 어떻게 현실을 이해하고 버텨왔는지 추적하는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는 교양서의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어 창작을 꿈꾸는 이가 아니더라도 쉽게 읽힌다.

또한 지은이는 이처럼 사랑 받고 살아남는 이야기의 구조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안목을 기르는 일은 재밌는 이야기를 창작하기 위한 훈련이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와 같은 '이야기 인류'를 이해하는 길과 맞닿아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당신의 이야기를 앞으로 어디선가 만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320쪽, 1만8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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