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고향 의성] <2> 의성성냥공장 아가씨

"인천에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 갑 두 갑 낱값이 열두 갑, 치마 밑에 감추어서 정문을 나설 때..."

1980년대에 군대에 가거나 대학을 다닌 세대들에게는 익숙한 노랫가락이지만 성냥을 본 적도 없는 MZ세대들은 '웬 인천 성냥공장 타령'이라는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가사는 인천의 성냥공장에 다니는 여공이 퇴근하면서 치맛자락에 성냥을 감춰 갖고 나오다가 불이 붙어 곤란해졌다는 내용이다.

인천은 한 때 11곳의 성냥공장이 밀집, 도시 전체가 '성냥촌'으로 불릴 정도로 성냥산업이 발달했다. 뿐만 아니라 집집마다 성냥공장에서 받아 온 '성냥곽'을 풀칠해서 납품하는 등 성냥경제가 인천 동구 일대를 먹여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2012년 8월 성광성냥공장 종업원들이 완성된 성냥을 포장하는 작업모습.매일신문 DB

◆의성경제를 책임진 성냥공장

그런데 1970년대까지 20만 명이 넘었던 인구가 2025년 현재 5만 명에 미치지 못할 정도로 감소하면서 '인구소멸위기'에 소도시 의성에도 한때 의성경제를 책임지다시피 한 엄청난 규모의 성냥공장이 있었다면 놀랄 것이다. 항구를 끼고 있는 대도시 인천의 성냥공장에 비할 바는 되지 않겠지만 200명이 넘는 직원들이 분주하게 각 성냥제조공정을 맡아 다양한 형태의 성냥을 생산했다는 역사가 믿기지 않는다.

불(火)은 인간을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우등생물체로 만들었고 당(唐)나라 말기인 9세기에 발명된 '화약'(火藥)은 중국의 4대 발명품의 하나로 인류의 전쟁사를 바꾼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이 유럽을 휩쓸 정도로 우세한 전술을 가능케 한 것이 기마병의 기습전술이 아니라 화약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2012년 8월 성광성냥공장 종업원들이 성냥을 생산하는 작업모습.매일신문 DB

요즘 성냥은 '생일축하케잌' 초에 불을 붙이는 용도로 제한적이지만 '라이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우리가 불을 붙이는 가장 유용한 생활도구였다.

성냥은 도깨비불 같다고 해서 신기한 '신도깨비불'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1827년 영국에서 개발된 성냥이 일본을 거쳐 이 땅에 들어온 것이 1880년이었고 공식적으로는 1886년 독일 마이어상사가 개항지인 인천 제물포에 설립한 '세창양행'이 수입했다. 서양문명의 상징처럼 들어 온 성냥이 대중화되기 전까지는 '부싯돌과 부시' 가 그 역할을 했다.

그 후 개항지 인천에 최초의 성냥공장 <조선인촌(燐寸)>이 1917년 생겼다. 6.25 직후 인천에 무려 11개의 성냥공장이 들어섰고 의성에도 성냥공장이 생겼다. 1950년대는 가히 성냥산업의 전성기였다. 70~80년대엔 다방과 식당 등 음식점에서 홍보용으로 휴대용 성냥을 주문제작, 나눠줄 정도로 성냥은 최고의 홍보수단이었다.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자신의 얼굴을 인쇄한 성냥을 나눠주기도 했다.

◆ '의성을 빛내라'는 의미의 '성광(城光)성광성냥'

의성 성광성냥공장은 1954년 6.25때 월남한 실향민들에 의해 설립됐다. '의성을 빛내라'는 의미를 담아 '성광'(城光)이라는 회사이름을 지었다. 이 공장에서 일한 수많은 의성사람들의 고마운 '밥줄'이었다.

"성냥공장가서 월급타가지고 다달이 농협에 갖다 넣으면 1년만 되면 100만원씩, 50만원씩, 100만원씩 이래 되거든요. 그라모 그거를 가지고 또 1년 만에 적금 넣고 그거가지고 또 모두고 이래. 그때만 해도 돈 1억 가지고 있는 사람 아무도 없습니다. 1억 가 있으면 평생 먹고 산다 캤거든요..." 이 성냥공장에서 33년 성냥을 만든 김한숙 씨의 회고다.

"알이 험하게 드가면 이게 불룩하게 튀나오거든요. 불룩하게 튀나오면 그걸 손질해줘요. 손질을 해주면 알이 쏙 들 가지고. 이래 맨드름하기 때문에 뒤에 하는 사람이 옇기(넣기의 사투리)가 좋다고요.."(손성월의 시아개, <의성성냥공장傳> 중에서)

오래된 도시 의성읍 중심에 자리 잡은 의성향교. 그 바로 앞에 '성광성냥공업사'란 간판을 내건 단층 슬레이트 지붕의 건물들이 줄지어 선 공장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자 마당에는 잡풀들이 무성했다. 폐업 신고한 지 5년. 2013년 성냥생산을 중단할 때까지 국내유일 성냥공장으로 남아 한국성냥의 마지막을 지키던 불꽃이 마침내 꺼졌다.

의성군은 조업을 중단한 성광성냥공장 당시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한 후 옛 공장을 재현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문화재생사업으로 재탄생

공장에는 폐업당시 성냥을 생산하고 포장하던 모든 기계설비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의성군이 <성냥공장 문화재생사업>으로 선정, 조업을 중단한 당시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한 후 옛 공장을 재현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의성성냥공장' 홈페이지(usm1954.kr) 예약을 하면 공장 전체를 둘러볼 수 있도록 했다.

공장을 둘러보면 원목을 잘라 성냥과 같은 작은 크기로 절단하는 절단기도 있고 성냥봉에 '두약'을 입히는 '윤전기'도 온전하게 있다. 성냥을 생산하던 모든 과정은 당시 사람이 직접 수작업을 해야 했다.' 사갑부'와 '입갑부', '축목부' 등 생소한 이름이 붙은 작업장을 천천히 돌아다니다보면 당시 직원들이 분주하게 일하는 모습이 환영처럼 보이는 듯 했다.

폐업한 성광성냥 입구에는 마지막으로 일한 12명의 직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공장건물은 각 작업부가 줄지어 선 듯 불규칙적으로 배치돼 있고 구내식당과 직원기숙사까지 있을 정도로 꽤 규모가 컸다. 아마 공장을 설립한 후 매출이 크게 늘어나면서 계속 건물을 지어 확장한 듯 짜임새 있는 공장구조는 아니었다. 이 성냥공장에서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가 성냥을 만들면서 자식들은 대도시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여공' 김한숙 씨의 회고처럼 30여년을 일해서 모은 1억으로 집까지 장만할 수 있게 해준 의성사람들에겐 고마운 성냥공장이었다.

의성에 성냥공장을 세운 것은 이북출신 양태훈, 김하성이었다. <성광성냥>은 다른 성냥과 달리 쉽게 눅눅해지지 않는 두약(頭藥) 덕분에 경북은 물론 부산 경남지역과 습기가 많은 바닷가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회용 라이터가 등장하자 성냥공장은 사양화의 길을 걸었다. 2013년 성광성냥이 문들 닫으면서 '성냥공장의 전설'로 기억하게 되었다. 의성에 가면 꼭 성냥공장에 둘러볼 것을 권한다.

◆의성 할매닭발

의성의 맛이라면 의성마늘을 먹인 한우 마늘소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다.성냥공장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의성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전통시장 내 먹거리골목에 있는 <할매닭발>은 시골장터에서는 드문 무려 5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양념된 닭발을 연탄불에 구워 내주는 방식인데 여럿이 먹어도 될 정도로 한 접시만 시켜도 푸짐하다.

의성장터 인심을 실감할 정도다. 주당이 아니더라도 매콤한 닭발 맛에 매료돼서 소주 한 두병은 기본, 포장까지 해가는 손님이 대부분이다. <할매닭발>이 방송에 나오면서 유명세를 타자 닭발전문식당 두세 곳이 더 들어서면서 아예 '닭발식당골목'이 형성됐다. 닭발 뿐 아니라 닭목살과 닭모래집(닭똥집)구이 등도 잘 나간다.

의성마늘은 육쪽마늘 특유의 알싸하고 은근한 향이 특색이다. 물론 할매닭발은 의성마늘과 의성고추 등 의성産만 쓴다고 한다. 닭발을 주문하면 양념된 닭발을 초벌구이한 후 연탄불에 불향가득 입혀서 내놓는다. 시장입구에 들어서면서 맡았던 매콤한 냄새의 정체가 연탄불 석쇠에서 연신 앞뒤로 뒤집으면서 굽는 닭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