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시속으로] 김향금 작가 7년 만의 개인전

"꽃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우리, 지금 여기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텍스트 품은 신작들 선보여
4년 간 매일 아침 쓴 글 모아
'작업에 관한 단상' 책도 펴내

김향금, Can you show me your dream, Oil on Canvas, 72.7×90.9cm, 2024
김향금, Can you show me your dream, Oil on Canvas, 72.7×90.9cm, 2024
김향금, 욕망하지 않는 시간, 181.8×227.3cm, Oil on Canvas, 2024
김향금, 욕망하지 않는 시간, 181.8×227.3cm, Oil on Canvas, 2024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김향금 작가. 이연정 기자
자신의 작품 앞에 선 김향금 작가. 이연정 기자

7년 만의 개인전을 선보이는 작가의 눈빛은 설렘과 긴장이 가득했다. 4년 3개월 간 수창청춘맨숀 관장을 역임하고 젊은 작가들과 함께 메타융합예술연구소를 만드는 등 다양한 기획·행정 업무를 거쳐온 그가 다시 한 번 작가로의 면모를 선보이는 전시이기 때문.

지난 16일 갤러리동원 앞산에서 만난 김향금 작가는 "예술 행정을 경험해보니 좀 더 현실에 마주하게 되고, 작가의 길이 힘들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며 "그래서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마음을 정비하는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긴 고뇌의 시간, 캔버스·붓과 함께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은 노트와 펜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노트 3페이지 가량의 글을 '토해낸' 것이 벌써 4년 째. 쌓인 노트만 20권이 넘는다. 그는 이번 전시 기념으로 글 중 일부를 골라 '플로우(FLOW)-작업에 관한 45편의 단상'이라는 작은 책을 펴냈다.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내면의 나와 만나는, 흔치 않은 경험을 했어요. 내가 생각하지 못한, 내 안의 것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단순한 끄적거림이 아니었다. 그에게 글쓰기는 삶의 궤적을 돌아보며 지금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지향점을 확인시켜 준, 미술 작업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의 제목 '꽃인지도 모르는 채' 역시, 그가 글을 쓰며 깨달은 소중한 의미다. 뒤돌아보면 모든 순간이 아름답지만 여전히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우리 모두에게 슬쩍 던지는 메시지다.

그는 "과거의 나를 통해 현재의 나를 보게 됐고 '지금 내가 여기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우리는 자신의 삶이 이미 어떤 완전체에 머물러있지만, 내가 꽃인지도 모르는 채 피어있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갤러리동원 앞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갤러리동원 앞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갤러리동원 앞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갤러리동원 앞산 전시장 전경. 이연정 기자

작품은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안정적인 색감이다. 지난해 말 그는 한 달 가까이 작업실 밖을 나가지 않았다. 어쩌면 예술가로서 타고난, 기질적으로 예민하고 불안정한 내면의 파도가 한 층 가라앉고 고요를 찾았다.

"처음에는 답답했는데 그 묵직한 안정감을 느끼는 순간 어디에도 개의치 않는 마음이 생기면서 너무 좋은거예요. 나는 이 길을 가야겠구나, 이러다 죽어야겠구나 라고 생각했죠."

이번에 선보이는 작품들은 대부분 텍스트를 품고 있다. 인쇄되거나 시트지를 붙인 듯 보이지만 실은 수십번의 붓질로 만들어낸 것들이다. 이는 보이지 않는 회화성을 나타내는 동시에 작가와 감상자, 회화와 텍스트가 관계하는 도구로 작용한다.

그는 "언어는 그 사람의 경험에 따라 해석된다"며 "물론 내가 의도한 것이 있지만, 그것과 별개로 감상자가 내 작품 속의 다소 모호한 텍스트들을 통해 자신만의 상상과 창작을 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작가는 '지평의 빛' 드로잉 작품을 가리켰다. 마치 멀리서 산 능선과 지평선을 바라보는 듯한 풍경이다.

"저 풍경을 그리면서 삶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의 삶이 가까이서 보면 많은 굴곡들로 이뤄져 있지만, 멀리서 보면 하늘과 땅이 맞닿은 완만한 지평으로 보이잖아요. 당장 내 앞의 길이 울퉁불퉁하더라도 결국은 찰나에 지나지 않아요. 그러니 현재인 동시에 과거이며, 또 미래인 이 순간을 너무 힘들어하지 않고 감사하게, 충실하게 보내야겠죠."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이어진다. 일요일 휴관. 053-423-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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