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킹 혐의로 1년 4개월의 수형생활 끝에 출소한 A씨는 석달 후 이 사건 피해자였던 B씨를 상대로 대여금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B씨의 계좌에 일방적으로 소액을 입금한 다음 이를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것. 이렇게 B씨의 주소를 알아낸 A씨는 그해 9월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다시 기소됐고, 서울고법은 지난해 6월 "법원의 주소 보정 명령을 악용해 주소지를 알아내 죄질이 좋지 않다"며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스토킹 범죄 등이 사회문제로 떠오르는 가운데 민사소송을 구실로 범죄 피해자들의 주소지를 알아내 추가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민사소송에서 범죄피해자 개인정보 보호 강화 방안'이라는 연구 보고서를 통해 관련 제도 개선 방안을 제시하고 나섰다.
◆소송절차 상 개인정보 공개 문제 꾸준히 지적
소송절차에서 개인정보가 상대방에게 공개될 수 있다는 문제점은 과거에도 지적돼 온 사안이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오는 7월 12일 시행되는 민사소송법은 소송 관계인의 생명 또는 신체에 대한 위해 우려가 있을 경우, 법원이 소송 기록의 열람·복사·송달에 앞서 소송 관계인이 지정하는 정보를 보호하는 조치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이는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에서 주소 정보의 노출을 막을 수 있는 정도에 그친다. 개정법이 '당사자의 신청'을 전제로 법원이 보호 조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스토킹 피해자가 자신을 상대로 한 소장이 접수됐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경우엔 보호 조치가 어려운 것.
민사소송법에 따르면 원고는 소 제기를 위해 당사자의 성명과 주소를 소장에 써야 한다. 피고의 주소를 알지 못해 공란으로 비워두는 경우 법원은 원고에게 소장의 보정을 명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주민등록법은 주민등록표 열람이나 등·초본 교부 신청은 본인이나 세대원만 가능하나, '소송수행상 필요한 경우'에는 제3자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법원에서 발행한 '주소보정명령서'가 있으면 원고는 피고에 대한 열람 및 교부를 신청할 수 있는 실정이다.
또 현행 주민등록법은 범죄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열람 제한 근거를 두고 있으나 그 대상을 가정폭력 피해자로 한정하고 있다. 아울러 가정폭력행위자가 '소송 수행에 필요하다'는 이유로 피해자에 대한 열람 및 교부를 신청하는 경우 이를 막을 수 있는 지 명확하지 않아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소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해외 사례
해외 주요 국가에서는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일본의 주민기본대장법은 소송제기 목적으로 거주관계 확인이 필요하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타인의 주민기본대장 사본을 열람하거나, 관련 문서 사본을 교부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만 이때 가정폭력, 스토킹, 아동학대 피해자로서 생명이나 신체에 대한 위해의 우려가 있는 사람은 '지원조치'를 신청할 수 있게 했다.
가해자 또는 그 대리인은 지원조치 대상자에 대한 열림이나 교부가 제한되며, 제3자가 피해자에 대한 열람 및 교부를 신청하는 경우 본인의 사진이 부착된 신분증명서를 내도록 하는 등 엄격한 신원 확인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이 경우에도 소송 수행은 여전히 정상적으로 가능하게 제도를 설계했다. 가해자인 원고가 지원조치 대상자에게 소송을 제기하려는 경우 피고의 주소를 '불명'으로 기재하고, 열람 및 교부 제한으로 인해 피고의 주소를 조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료를 제출하면 된다. 이를 접수한 법원은 '조사촉탁'을 통해 피고의 주소를 직접 확인하여 소송서류를 송달한다.
법원은 이후 촉탁 결과가 기재된 서면은 열람이나 복사를 직권으로 제한할 수 있게 해 잠재적인 가해 가능성을 차단하도록 했다.
미국 역시 '주소 기밀유지 프로그램'(ACP)을 통해 범죄피해자에게 가상 주소를 부여해 실제 주소를 보호하고 있다.
1991년 최초 도입된 이 제도는 현재 45개 주에서 운영하고 있다. 지원대상은 주로 가정폭력피해자이며, 스토킹·성폭력·인신매매 피해자도 주에 따라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
ACP 이용자는 대체 주소를 부여받아 선거 등록 시 활용할 수 있으며, 일부 주에서는 법원·학교 등 공공기관의 주소 요구, 운전면허등록, 건강보험 및 전기요금 납부, 취업시에도 대체 주소를 활용할 수 있다. ACP 이용자의 실제 주소는 해당 주 정부기관만 보유한다.
ACP 이용자를 대상으로 소송 제기 시 원고는 피고의 대체 주소를 소장에 기재하고, 해당 주소로 소송서류를 송달할 수 있다.
◆우리 대안은?
국회 입법조사처는 개선 방안으로 ▷주소표기의 제한 ▷열람·교부 제한 개선 ▷전자소송 사전포괄동의제도 활성화 등을 제시했다.
피해자의 주소 노출을 방지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주민등록표에 실제 주소를 표기하지 않는 것으로 주소 자체를 쓰지 않거나 대체 주소를 기재할 수 있다면 타인의 주소 확인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만 신원확인 수단으로 주소 정보가 널리 쓰이는 상황에서 이를 어렵게 만들 수 있어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숙제가 있다.
열람 및 교부제한 개선은 현행 제도 틀에서 피해자 주소 노출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이다.
주민등록법이 정한 열람 교부제한 근거를 가정폭력 피해자에서 스토킹을 비롯해 위험이 반복될 여지가 있는 다른 범죄 피해자로 확장하는 것이다.
입법조사처는 아울러 소송 목적으로 신청하는 경우라도 제한대상자의 열람 및 교부를 제한할 수 있도록 법률에 명시하고, 제3자가 피해자에 대한 열람 및 교부를 신청하는 경우 신청사유 및 신원 확인을 철저히 하여 우회적인 주소 노출을 방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또 법원이 직접 피고의 주소를 확인해 송달하는 방안 역시 고려할 수 있다고 짚었다. 우리 민사소송법이 공공기관 등에 대한 조사촉탁 근거를 규정하고 있기에 법원이 직접 관계 기관으로부터 피고의 등·초본을 회신 받을 수 있다. 법원으로부터 소장 부본을 송달 받은 피고는 원고에게 주소가 공개되지 않도록 개인정보 보호조치 신청을 할 수 있다.
개개인이 전자소송사전포괄동의제도를 이용해 관련 피해를 예방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피해자가 사전포괄동의를 마친 경우 주소 노출 없이 소송 서류를 받을 수 있다.
이 대안은 피해의 유무나 종류에 관계 없이도 가능하며, 피해사실을 증명하는 절차 역시 불필요하다는 장점도 있다. 범죄 피해 상담 및 수사 단계에서부터 피해자를 대상으로 사전포괄 동의를 안내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소송실무에서는 전자송달 여부와 무관하게 소장에 주소자 없는 경우 보정명령이 이뤄지기도 한다는 점은 한계다. 이에 따라 "사전포괄동의제도의 활성화와는 별개로 피해자 주소 보호를 위해 가해자의 열람·교부제한을 강화하는 방안이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입법조사처는 지적했다.
댓글 많은 뉴스
경북 포항 영일만 횡단대교 길이 절반으로 뚝…반쪽짜리 공사될까
"광주 軍공항 이전 직접 챙긴다"는 李대통령…TK도 동일한 수준의 지원을
이진숙 "임기 보장하라" vs 최민희 "헛소리, 뇌 구조 이상"
與, 법사·예결위 등 4개 상임위 단독 선출…국힘은 반발 퇴장
"총리 임명 안돼" 권성동…李대통령 "알았다"며 팔 '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