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임기 연장을 위한 개헌을 하지 않겠다." 1967년 5월 26일 목포역 광장에서 열린 제7대 총선(6월 8일) 공화당 후보 지지연설에서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밝혔습니다. 앞서 5월 3일 열린 제6대 대선에서 재선에 당선된 지 20여일 만. "공화당에서 국회의원이 많이 나오면 종신대통령제 개헌을 할 것"이란 야당의 비난에 대한 반격이었습니다.
개헌에는 여당 국회의원 수가 절대적. 6·8 총선은 막걸리·고무신이 난무한 사상 최악의 관권·금권·타락선거였습니다. 결과는 공화당 129석, 신민당 45석, 대중당 1석. 그로부터 2년 뒤, 1969년 봄부터 3선 개헌론이 대놓고 고개를 들자 6월 초부터 서울 대학가에 헌정수호 성토대회가 잇따랐습니다.
대구에 옮겨 붙은 건 6월 23일. 이날 경북대를 시작으로 계명대, 영남대에서 성토대회와 단식농성, 가두데모가 잇따랐습니다. 7월 들어 데모가 격화되자 대학 당국은 임시휴교에 이어 조기 방학으로 응수했습니다. 이런 소식에 대구 시내 고등학교가 술렁이더니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7월 9일 오전 11시 15분, 경북고 학생 500여 명이 기말시험을 마친 뒤 교문을 뛰쳐나왔습니다. 학생들은 '3선개헌결사반대'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대열을 지어 2·28기념탑이 있는 명덕로타리로 내달렸습니다. 학교 당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리로 나선, 전국 첫 고교생 3선 개헌 반대 데모였습니다.
11시 30분쯤 2·28기념탑에 도착한 학생들은 '3선 개헌은 민주주의 이념에 오점을 찍는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하고 애국가, 교가를 부르며 연좌데모를 벌였습니다. 이어 12시쯤 다시 학교로 돌아가다 수도산 앞에서 해산하라는 경찰에 막히자 다시 도로에 앉아 구호를 외쳤습니다. 학생들은 "정부가 휴교령을 내리면 다시 데모에 나설 것"을 다짐하고는 12시 30분쯤 대열을 풀었습니다.
이날 대구고·대륜고·사대부고·대구상고에서도 함께 성토대회를 열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도, 학교도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튿날인 10일, 경북고는 기말시험 후 1학년, 3학년, 2학년 순으로 10분 간격으로 교문을 나가게 했습니다.
대구상고는 학생간부들을 교장실로 불러 타이르고, 대륜고에서는 500여 명의 학생들이 교실을 뛰쳐나왔으나 교사들이 전부 나와 교문 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막고 선 통에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대구고생 700여 명은 이날 교문 옆 가시덤불 울타리를 부수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놀란 경찰이 추격에 나섰습니다. 2백여 명은 미군부대 후문을 거쳐 2·28기념탑으로, 100여 명은 수성교 방천둑까지 쫓기다 포위돼 70여 명이 붙들리고, 향교 옆길로 돌아가던 학생들도 꼼짝없이 경찰 트럭에 실렸습니다.
격분한 학생들이 경찰과 투석전이 벌여 한때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지만 교사들의 만류로 곧 가라앉았습니다. 이날 남대구경찰서에 연행된 대구고생은 모두 167명. 오후 8시쯤 서약서를 쓰고 나서야 모두 풀려났습니다.
데모에 놀란 대구고는 가정실습 명분으로 11일부터 이틀간 휴교. 계성고에서는 1천여 명의 학생들이 오전 11시 30분쯤 강당에서 개헌성토대회를 갖고 거리로 나가려다 교사들의 강력 제지에 12시 30분쯤 해산했습니다. (매일신문 1969년 6월 28일~7월 16일 자)
전국 각 대학과 고교, 야당의 저항에도 공화당은 개헌안을 밀어붙였습니다. 그해 9월 13일 국회 별관에서 25분 만에 날치기 통과. 10월 17일 국민투표로 마침내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습니다.
'정권교체 가능성의 제도적 보장은 민주 정치의 필요조건'이란 신념에서 비롯된 3선 개헌 반대 데모. 결과는 허무했습니다. 그러나 이날 대구 고등학생들의 거사는 2·28 학생민주운동에 이어 불의에 맞선 또 하나의 '전국 첫 고교생 헌정수호 민주운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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