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부모가 손자녀를 키우는 조손가족이 늘고 있지만, 이들은 돌봄과 생계, 정서적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돌봄 공백은 물론, 손자녀는 불안정한 양육 환경에 놓이고 조부모는 고립된 채 돌봄 부담을 감당하고 있다. 현행 제도는 가족에게 모든 책임을 지운 채, 조손가족을 위한 맞춤형 지원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방치된 손자녀…정서적 불안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조손가족의 특성과 정책 지원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의 사망, 이혼, 가출, 질병 등으로 인해 손자녀를 조부모가 양육하게 되는 '조손가족'이 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법적으로 보호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관련 제도도 미비해 돌봄과 생계, 정서적 지원에서 모두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3년 여성가족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손자녀의 16.9%는 하루 평균 3.5시간을 보호자 없이 혼자 보냈으며, 미취학 아동의 5.7%는 하루 평균 5.7시간이나 방치 상태에 놓였다. 특히 조부모가 70세 미만이며 일용직이나 임시직 근로에 종사하는 경우, 손자녀의 '혼자 있는 시간'은 더 길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조부모의 경제활동이 손자녀의 돌봄 공백을 확대하는 구조적인 원인이 되는 셈이다.
돌봄의 공백뿐만 아니라, 조손가족 손자녀들은 극심한 심리적 불안정도 겪고 있다. 부모와 떨어지고 조부모와 생활하게 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여러 번의 보호자 변경을 경험하며 관계의 불안정을 겪는다. 특히 부모가 아이를 맡겼다가 다시 데려가거나, 연락을 두절한 채 양육이 끊기는 상황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이로 인해 손자녀들은 언제 또 양육 환경이 바뀔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성장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손자녀는 "할머니가 아프면 나는 누구랑 살아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던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에서도 손자녀의 13.5%는 동네나 이웃으로부터, 10.2%는 학교에서, 9.5%는 친척으로부터 조손가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경험을 했다고 답했다.

◆고립된 조부모, 취약한 경제·주거·건강 상황
조부모 역시 고립된 환경 속에서 돌봄 부담을 감당하고 있다. 손자녀 돌봄으로 인해 외출이 어렵고, 자녀의 이혼이나 실직 등의 사연이 알려지는 것을 꺼려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손자녀가 있는 지역으로 이주한 조부모는 기존의 인맥이 없어 더욱 고립되고, 긴급 상황 발생 시 도움을 요청할 창구도 마땅치 않았다.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면서 조부모가 겪는 우울감 역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경제적 상황 역시 취약하다. 조사에 따르면 조손가족 조부모의 27.7%만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이 중 상당수가 임시근로자 또는 일용직으로 고용 안정성이 낮은 상황이었다. 조손가족의 53.4%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수급 대상이었다.
조손가족은 주거 면에서도 불안정한 상태로, 조사에서는 자가에 거주하는 비율이 39.7%,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비율이 31.7%로 나타났지만, 주택 노후화와 주거비 부담이 심각한 수준으로 확인됐다. 2020년 주거실태조사에서는 조손가족이 한부모가정보다도 주거비 과부담이 높은 경향을 보였으며, 주택 개보수를 희망하는 비율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조부모의 건강 상태 역시 심각하다. 2023년 실태조사에서는 조부모의 66.9%가 본인의 건강 상태를 '나쁘다'고 인식했으며, 62.3%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손자녀 돌봄으로 인해 체력과 건강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이며, 일부 조손가족에서는 오히려 미성년 손자녀가 조부모를 돌보는 역전된 돌봄 구조까지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한적인 제도 혜택과 떨어지는 접근성
이처럼 다차원적인 위기를 안고 있는 조손가족이지만, 이들을 위한 제도는 미비한 상태다. '한부모가족지원법'이나 '아동복지법'은 조손가족을 일부 특례 대상으로 포함하고 있으나, 지원 요건이 엄격하고 복잡해 실제로 혜택을 받는 가정은 제한적이다.
욱이 제도들 대부분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어, 정보 접근성이 낮고 디지털 역량이 부족한 고령 조부모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다. 별도 안내서나 전담 창구도 없는 상황에서, 조손가족이 스스로 필요한 제도를 찾아 나서야 하는 구조는 사실상 제도 접근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법 제도의 근간도 문제다. 현재 '민법'은 친족 간 부양 의무를 규정하며 사적 부양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는 조부모가 손자녀를 '의무적으로' 돌보도록 만드는 배경이지만, 정작 국가의 공적 부양책임은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나게 되는 구조를 만든다. 법적으로는 책임을 묻고 있으면서도 제도적으로는 실질적인 지원을 하지 않는 모순적 상황이 조손가족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손가족 맞춤형 지원 체제 강화"
이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은 조손가족을 위한 통합적인 지원체계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먼저, 지역 내 어린이집, 초등학교, 주민센터 등 보편적 돌봄 기관과 행정복지 전달 체계를 통해 조손가족을 조기에 발굴하고, 사례관리사를 배치해 가족의 상황을 장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개입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손가족 조부모의 디지털 활용 능력을 높이기 위한 미디어 교육 프로그램 확대, 신청 절차 간소화, 자동 신청 시스템 도입 등 제도적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도 요구된다. 더불어 아동수당 등 기초수당의 확대 지급, 공공임대주택 우선 공급, 주거비 지원 등의 방안을 통해 조손가족의 생계와 주거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조손가족을 사회가 돌볼 책임이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공적 아동돌봄과 노인돌봄 체계를 엮어, 생애주기별로 필요한 돌봄 서비스를 손쉽게 제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 조손가족 맞춤형 사례관리 체계 강화와 가족센터 기능 확대는 더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김소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조손가족은 돌봄이 필요한 노인과 아동이 함께 살며 서로를 부양하는 구조이나, 경제·주거·건강 등 전반적으로 가족 지원이 취약한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조손가족 특성에 기반한 제도적 지원이 시급하다. 통합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조손가족의 생애주기적 돌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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