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당열전-조두진]적과 내통한 편지 불태운 조조, 국민의힘도 탄핵 찬반 논란 묻어야

이 글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사기(史記)', 진수의 정사(正史) '삼국지',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일본 소설가 야마오카 소하치(山岡荘八)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등 역사서와 문학작품 속 인물들의 행적에 비추어 현대 한국 정치 상황을 해설하는 팩션(Faction-사실과 상상의 만남)입니다. -편집자 주(註)-

▶ 서로 청산 대상이라는 국힘

국민의힘이 8월 22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김문수 전 대선 후보, 조경태 의원, 안철수 의원, 장동혁 의원, 주진우 의원 등이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 전 한국사 강사 전한길 씨에 대한 입장 등에서 격하게 부딪치고 있다.

조경태 의원은 "과감한 인적 청산만이 국민의힘이 다시 사는 길"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윤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를 위해 한남동 관저 앞에 나간 국민의힘 소속 45명 의원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윤석열 정부 시절 더불어민주당의 무차별 공직자 탄핵과 특검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내부 총질'을 일삼은 사람들을 비판하며 '정부·여당에 맞서 함께 싸우지 않겠다면 당을 떠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쪽은 다른 쪽을 '극우'로 몰고, 또 한쪽은 다른 쪽을 '내부 총질자'라며 공격하는 것이다.

▶ 적과 내통한 편지를 불태운 조조

삼국지 전반부에서 판세를 가른 전투는 조조(曹操)와 북방의 강자 원소(元紹)가 겨룬 관도대전(官渡大戰·서기 200년 2월 ~ 10월)이었다. 10배 가량의 병력 차이로 전투 초기에는 조조가 패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실제로 조조는 고전을 거듭했으나 결국 원소군을 궤멸(潰滅)했다.

조조는 점령한 원소의 진영에서 자신의 부하 장수들이 원소에게 보낸 엄청난 편지 꾸러미를 발견했다. 조조의 패배를 예상한 부하들이 원소와 내통한 흔적이었다. 조조는 편지를 읽어야 할지, 읽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다. 편지에는 자신을 해치려는 내용, 원소에게 충성하겠다는 내용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편지 내용을 확인하는 순간 부하 장수들 중 상당수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조조의 측근들은 "배신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간언(諫言)했다. 하지만 조조는 "나도 내가 이길 가능성이 낮다고 여겼다. 장수들도 살 길을 찾을 수밖에 없지 않았겠나. 편지를 모두 불 태우고, 없었던 일로 하라"고 정리했다.

원소에게 항복하려 했던 부하들은 목숨을 부지했을 뿐만 아니라 '관도전투' 승리에 따른 포상도 받았다. 이후 이 장수들은 조조에게 무한 충성했다. 같은 편임에도 서로 불신하며 싸우다가 망한 삼국지 인물 이각·곽사와 다른 대범함이 조조를 패자(霸者)로 만든 것이다.

▶ 여당이 만든 프레임에 갇혀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 탄핵 찬반, 극우, 배신자 타령으로 싸운다면 전당대회에서 누가 당권을 잡더라도 분란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탄핵 찬반, 극우, 배신자 타령으로 싸워서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야말로 민주당이 가장 바라는 바가 아닐까.

윤석열 정부 시절,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폭거(暴擧), 방탄국회, 국정 발목 잡기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당내 친윤-비윤 갈등, 당권 싸움, 보신주의, 기회주의로 일관했다. 윤 정부가 '비상계엄'이라는 자폭(自爆)을 저지르고, 무너지는 과정에서 국민의힘 '내부 분열'이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일을 겪고도 국힘은 똘똘 뭉쳐 정부·여당에 맞서기는커녕 스스로 '극우·배신자 프레임'에 갇혀 자기들끼리 싸운다.

▶비상계엄·탄핵 갈등 넘어서야

현재 국민의힘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사람들 중에 12·3 비상계엄을 옹호하는 사람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는 정도일 것이다. 다만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은 후보들마다 엇갈렸고, 지금도 엇갈린다.

윤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한 쪽은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물어 대통령을 탄핵해야 국민의힘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탄핵을 반대한 쪽은 비상계엄은 잘못이지만, 자기 당이 배출한 대통령을 또 한번 탄핵하는 것은 스스로 몰락을 자초하는 행위인 만큼 다른 정치적인 방법으로 해법을 찾아야 당을 지킬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니 '탄핵 찬성=배신자', '탄핵 반대=극우'라는 주장은 민주당이 좋아할 '자해 프레임'일 뿐이다.

▶ 국민의힘 앞에 놓인 2가지 길

국민의힘 앞에는 2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해 국민들께 사과하고 윤 전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일체의 논란을 과거로 흘려보내는 것이다. 동시에 계파 간 당권 싸움, 보신주의, 기회주의 등 구태(舊態)를 일소하고 젊고 강한 보수 정당, 정부·여당과 치열하게 싸우는 정당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깨끗하게 분당(分黨)하는 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가진 재산을 공평하게 나누기 어려우니 분당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이 기존 재산을 포기하고 국민의힘에서 나가 새 정당을 창당하고, 독립적인 재정 구조를 확립할 수 있는 확실한 리더도 없다.

▶ '내부 총질'은 사라져야 한다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장동혁 의원은 "의회폭거를 저지른 민주당과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내부총질만 일삼았던 국민의힘에게도 계엄 유발의 책임이 있다"며 "이제라도 국민의힘 107명 의원이 단일대오로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와 제대로 싸우는 것이 혁신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주진우 의원 역시 "우리가 단일대오를 이뤄 싸워야 할 대상은 민주당"이라며 "당이 분열을 멈추고, 전투력을 합쳐서 시너지를 낸다면 '젊고 강한 정당'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장동혁·주진우 의원의 말에 공감한다. 당내에 '탄핵에 대한 입장'을 하나로 정리할 수 없다면 묻어두는 것도 하나의 길이다.

▶ 정당의 존재 이유와 역할 생각해야

정당은 권력을 확보하기 위해 활동하고 다투는 집단이다. 국민의힘은 보수 가치를 기반으로 국민의 요구에 적절하게 답함으로써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야당이라면 정부·여당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며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국민의 요구에 답하는 것이고,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길이다.

지금 보수우파 국민들이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놓고 공방을 벌이기를 바라겠는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놓고 벌인 싸움은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끝났다. 향후 '역사의 법정'에서라도 덜 비난 받자면 지금 국민의힘이 갈 길은 분명하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지난 1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국민의힘 의원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유효기간 만료일인 지난 1월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 모인 국민의힘 의원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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