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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김수용] 전력(電力) 대란

김수용 논설실장
김수용 논설실장

8월 둘째 주 최대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인 97.8GW(기가와트)까지 오를 전망이다. 지난해 8월 20일 97.1GW 기록을 1년 만에 갈아 치우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10GW가량 예비전력을 유지해 비상 상황이 없다면 블랙아웃(대정전) 가능성은 낮지만 이상고온이 지구촌을 덮치며 곳곳에서 전력 대란(大亂)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에선 지난달 4일 전국 전력 부하가 1천465GW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유럽에선 전력 수요가 전년 대비 10% 이상 급증하면서 대정전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스위스와 프랑스 원자력발전소는 냉각수용 강물 온도가 치솟으면서 일부 가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전력 부족 사태를 걱정하게 만드는 원인은 따로 있다. 바로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지난 4월 보고서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구동에 필요한 전력량이 오는 2030년까지 945TWh(테라와트시·94만5천GWh)로 지금보다 2배 증가할 전망이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연간 전력 소비량(557TWh)보다 훨씬 많다. 1999년 개봉한 영화 '매트릭스'에선 AI가 세상을 지배하고 인간은 전력 공급용 생체 배터리로 전락했다. 얼마 전 마크 저커버그가 밝혔듯 인간을 뛰어넘는 초지능 개발도 가시권이라는데, 얼토당토않은 상상이 현실이 될까 두렵다.

메타,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이른바 글로벌 빅테크들이 AI 사업용 전력을 충당(充當)하기 위해 원자력발전에 나선다. 심지어 아마존과 구글은 소형모듈원전(SMR) 건설을 추진한다. 중국은 티베트에 수력발전소 5기 건설에 착수했는데, 댐이 완성되면 연간 전력 생산량이 30만GWh에 달할 전망이다. 우리돈 약 232조원이 드는 지구상 최대 단일 프로젝트다. 우리 정부는 재생에너지 전기로 100% 가동되는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해 AI 데이터센터 등을 유치할 계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산단 기업에 대한 '파격적 전기료 할인 혜택 검토'를 주문했다. 그런데 산업용 전기 판매가보다 재생에너지 생산비가 더 비싸고, 안정적 공급도 어렵다. 하나뿐인 지구를 위한 장기적 포석(布石)일 테지만 과연 사투(死鬪)에 가까운 AI 개발 경쟁 상황에 알맞은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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