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용 논설실장 ks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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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고부] 고용 연장

    [야고부] 고용 연장

    조기 퇴직 후 연금이나 배당(配當)소득만으로 여유로운 삶을 꾸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0~30년 계획을 짜서 퇴직 후를 설계할 수 있는 젊은 세대라면 모를까 이른바 베이비부머 세대들에겐 꿈 같은 얘기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평생직장은 사라졌고, 40대 퇴직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연금은 용돈 정도에 불과하고, 몸 바쳐 직장에 충성하다 보니 재테크에 눈 돌릴 겨를도 없었다. 저임금·비숙련(非熟鍊) 일자리로 내몰리는 처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평균 15세 이상 취업자가 지난해 동기보다 22만 명 늘었는데, 노년층이 증가세를 이끌었다. 60대 이상 취업자는 28만2천 명, 70대 이상도 15만 명 늘었다. 70대 이상은 무려 192만5천 명이 일을 하고 있다.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8년 이래 최대 증가다. 노년층 취업은 단순히 가계경제(家計經濟)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행은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세대가 올해부터 본격 은퇴를 시작하면서 경제성장률이 약 0.4%포인트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했다. 통계청 장래인구 추계에 따르면 50년 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현재의 절반도 안 된다. 디지털·자동화 시대에 인력 감축이 꾸준히 이뤄졌고, 젊은이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도 크게 줄어 청년 실업이 심각한데 정작 일하는 사람이 줄면서 경제가 위태로운 상황에 봉착(逢着)했다는 의미다. 고용 연장(延長) 논의가 시급하지만 선결 과제도 있다.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이 지속되려면 기간을 늘리고 받는 시기를 늦춰야 하는데, 그러려면 노년층 일자리가 계속 보장돼야 한다. 그러자니 청년층 일자리 확보를 위협할 것만 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24 한국경제보고서'를 통해 노동 수명 연장과 노인 고용 확대를 조언했는데, 이를 담보할 노동시장 개혁 방법으로 연공주의(年功主義)에 따른 임금체계를 없애고, 법정 정년 연장과 회사별 퇴직 연령의 단계적 폐지를 제시했다. 근속기간이 길수록 고임금을 받는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을 바꾸는 것이 개혁(改革)이다. 정부는 법정 정년(60세) 연장 등을 논의해 올 하반기 중 '계속고용 로드맵'을 마련할 방침이다. 세대를 아우르고 지속 성장을 담보할 혁신안을 기대해 본다.

    2024-07-22 20:15:26

  • [매일칼럼] 심각한 세수 부족, 나라 살림 거덜 날 수도

    [매일칼럼] 심각한 세수 부족, 나라 살림 거덜 날 수도

    혈세 낭비라는 말을 들으면 자연스레 떠올리는 항목이 바로 보도(步道)블록 교체다. 동네마다 심하게 표현하면 하루가 멀다 하고 멀쩡한 보도블록을 걷어내고 꽤나 비싸 보이는 블록으로 교체하는 공사를 볼 수 있다. 지자체 재정 자립도가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서 세금 낭비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으면서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기초자치단체마다 매년 적게는 수억원씩 예산을 잡아 보도블록을 바꿔 댄다. 사람들만 다니면 정해진 내구연한(耐久年限)까지는 버틸 텐데 하루 수백 대 차량이 다니는 길에도 블록을 깐다. 결국 폭우가 한 번 쏟아지고 나면 준공한 지 두어 달도 안 된 블록조차 곳곳에서 뒤집어진다. 오죽하면 국토교통부 예규(例規)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은 보도 포장은 신설 또는 전면 보수 준공 후 10년 이내 전면 보수를 금지할 정도다. 돈이 부족한 정부가 올해 상반기에만 한국은행에서 빌린 돈이 91조원이 넘는다. 경기 부양(浮揚)을 위해 예산을 신속하게 집행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상보다 세금이 적게 걷힌 탓이다. 결국 한은에 만들어 놓은 '마이너스 통장'(일시 대출 제도)으로 임시 변통하고 있다. 6월 말까지 빌린 돈은 91조원, 갚은 돈은 71조원이고 대출 잔액만 무려 20조원에 가깝다. 빌린 돈이니 공짜일 리 없다. 이자만 1천291억원에 이른다. 상반기 기준 이자 규모 역대 1위다. 임시로 빌려 쓴 돈 외에도 국고채(國庫債) 이자 비용만 지난해 결산 기준 20조원에 육박한다. 나라에서 쓴 전체 돈 대비 이자비용 비중은 2015년 이후 처음 3%대에 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을 위해 국고채 발행이 늘어난 데다 최근 금리가 높아진 탓도 크다. 문제는 거둬들이는 세금이 부족한 상황이 쉽사리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민생경제 활성화와 양극화 해소에 시급하게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데 이를 타개(打開)할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국 재정 당국은 돈줄 죄기에 나서기로 했다. 지금까지 100조원 남짓의 실질적 재량 지출만 구조조정을 했는데, 써야 할 항목과 규모가 정해진 경직성(硬直性) 재량 지출이나 법적 의무 지출까지도 줄일 수 있는지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총지출(638조7천억원) 중 의무 지출은 340조원, 경직성 지출은 117조원에 이른다. 이런 구조조정 시도는 윤석열 정부의 국정 과제이다. 지출을 줄이기는 어렵다. 특히 관행(慣行)처럼 집행되던 항목이면 더욱 그렇다.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사례처럼 지출 감소 시 발생할 수많은 파급효과를 고려하지 않고 뭉텅이로 예산을 깎으면 더 큰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적자인 나라 살림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금 투입이 불가피한 항목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이 대표적이다. 시기에 맞춰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조정하고 연금 적립액의 효율적인 투자 방안 마련 등 개혁이 이뤄지지 못하면 연금은 고갈(枯渴)된다. 국가가 보장하는 연금이라며 결코 망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쳤던 것은 최후의 수단으로 연금이 바닥을 드러내면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처럼 세금을 투입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이마저도 극단적인 인구 감소라는 변수를 만나면서 장담할 수 없다. 건강보험 누적 준비금이 2029년 바닥 나 2042년엔 적자만 563조원에 육박한다는 전망도 나왔다. 장기적 안목의 국가 재정 전략 마련이 시급하다. 자칫 국가 예산 운용마저 천수답(天水畓)으로 전락할 위기다.

    2024-07-21 22:13:21

  • [야고부] 장인(匠人)과 명품

    [야고부] 장인(匠人)과 명품

    프랑스 파리에 본사를 둔 루이비통 모에헤네시(LVMH)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사치재(奢侈財) 제조 기업이다. 패션·향수·화장품·주류·보석·시계 등에서 이른바 세계적 명품을 꼽아 보면 어김없이 LVMH에 속한 브랜드다. 지난 6월 명성(名聲)이 곧 가치인 이 기업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탈리아 밀라노 검찰은 LVMH의 한 부서가 이탈리아에서 근로자를 착취했다는 혐의와 관련, 12개 명품 브랜드 공급망을 조사했는데, 디올 가방 제조 하청업체 4곳의 근로자들이 밤샘·휴일 근무에 시달렸고 불법 이민자 고용도 확인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놀란 까닭은 명품 브랜드의 착취가 아니라 제조원가였다. 디올이 하청업체에 지불한 가방 한 개 가격은 53유로(약 8만원)에 불과했다. 해당 제품의 소매가는 무려 2천600유로(약 385만원)였다. 부자들의 명품 구매 이유는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이름을 딴 '베블런 효과'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과시욕(誇示慾)이다. 비쌀수록 잘 팔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위 시선을 의식해 덩달아 명품을 사는 것은 스놉 효과(Snob effect), 즉 속물 효과라고 한다. 그런데 과시이건 속물이건 명품에 대한 기본 인식은 같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수십 년 경력의 장인이 최고급 소재를 갖고 정성스레 한 땀 한 땀 바느질해 만든 제품이라서다. 그런데 뉴스에서 전해진 디올 제품의 제조 과정은 상상을 깨 버렸다. 흥미로운 반응 중 하나는 "미러급(거울에 비춘 것처럼 진품과 똑같다는 뜻) 짝퉁과 다를 게 뭐냐"였다. 명품 전문가들조차 감별(鑑別)하기 어려운 수준의 가품(假品)도 등장했다. 심지어 정품 인증을 위한 3차원 입체 영상인 홀로그램이나 근거리무선통신(NFC) 기술까지 흉내 낸 가품도 나온다. 어느 명품 감정 전문가에 따르면, 수작업으로 새긴 정품 브랜드 각인(刻印)보다 공장에서 찍어낸 가품의 브랜드 각인이 더 깨끗한 경우도 있단다. 논란 속에도 명품들은 다시 가격을 인상했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믿음의 반영이다. 코로나 이후 보복(報復) 심리에 따라 치솟던 명품 소비가 주춤한 모양새이지만 여전히 한국은 명품에 열광한다. 거리에 보이는 수많은 명품들 중 과연 몇 개나 진품일까.

    2024-07-15 20:00:08

  • [야고부] 공모주 열풍

    [야고부] 공모주 열풍

    기업공개(IPO)를 거쳐 주식시장에 진입하는 기업들이 청약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분배하는 주식을 공모주(公募株)라고 한다. 예전엔 꽤나 전문적인 분야로 인식돼 세간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이른바 '따상'이라는 용어와 함께 지난 2021년 선풍적 인기를 끌기도 했다. 따상은 공모가격의 2배로 시초가(始初價)가 결정된 뒤 상장 직후 상한가를 친다는 의미로, 공모주 투자자는 수익률 160%를 거둘 수 있다. 지난해 6월부터는 공모가가 곧바로 주식시장 진입 시 첫 가격인 시초가가 되고, 공모가의 60∼400% 내에서 가격이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상장일 가격 제한 폭이 커진 만큼 400% 수익도 가능해졌다. 물론 가격 폭이 넓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변동성이 크다는 의미다. 주식시장은 세계 주요국 증시에 비해 맥을 못 추고 있지만 공모주 시장만큼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올해 상반기 공모주 청약(請約) 시장에만 200조원 넘는 개인 자금이 몰렸고, 평균 청약 경쟁률은 사상 최대인 1천610대 1에 달했다. 2021년 열기를 뛰어넘는 수준이다. 투자자들이 공모주에 열광하는 이유는 종가 기준으로 평균 91%에 이르는 첫날 수익률 때문이다. 공모주를 받기만 하면 일단 엄청난 수익률이 보장된다는 믿음이 있다. 물론 개인이 받는 공모주는 안쓰러울 정도로 적다. 1주만 받아도 성공이고, 온 가족을 동원해 청약 증거금(證據金) 수억원을 넣어도 배정되는 주식은 10주를 넘기기 어렵다. 성공적인 공모주 청약인 경우에도 수익은 100만원을 넘기 힘들다. 그래서 직장인들 사이에서 공모주는 '짠내 나는 재테크', 즉 '짠테크'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주가가 최초 공모가보다 떨어진 종목들이 나타났다. 이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턱없이 낮은 의무보유확약(義務保有確約) 비율. 의무보유확약은 기관투자가가 배정받은 공모주를 일정 기간 보유하겠다는 자발적 약속이다. 통상 확약을 하면 더 많은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는데, 이런 비율이 적다는 것은 기관들조차 치고 빠지기식 투자를 하겠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상장 기업을 면밀하게 평가해 공모주 청약에 뛰어드는 게 아니라 무조건 수익이 나니까 묻지 마 투자를 한다는 것이다. 공모주 시장에서도 개미만 눈물을 흘리게 됐다.

    2024-07-08 20:01:23

  • [야고부] 수능 유감(修能 遺憾)

    [야고부] 수능 유감(修能 遺憾)

    디지털 보존이 의미하는 바를 정립하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다루어야 할 질문은 실제로 무엇을 보존하려고 하는가이다. 이는 정보 콘텐츠가 물리적 매체에 풀 수 없게 고정된 아날로그 환경에서는 분명하다.(31번)/ 고도로 표현주의적인 작품에서는 새로운 스타일 장치가 주제와 조화롭지 않은 방식으로 작용하여, 그럼으로써 불안한 분위기를 조성한다.(39번)/ 인식의 모형과 관련하여, 우리가 특정 문화와 역사적 환경에 국한하더라도, 우리가 누구의 인식을 모형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이 생긴다.(34번) 무슨 말인지 모르더라도 당황하지 마시라. 지난달 4일 치러진 '2025학년도 6월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모의평가' 영어 문제에 실린 내용들이다. 본문 내용 중 일부를 발췌(拔萃)한 탓에 이해할 수 없는 게 아니다. 전문(全文)을 다 읽어 봐도 이해 불가는 마찬가지다. 6월 모의평가 영어 영역 1등급 비중은 1.47%로, 역대 최고 난도를 기록했다. 지난해 6월 모의평가(7.62%)나 지난해 수능(4.71%)보다 훨씬 낮다. 점수 상위 4%만 1등급을 주는 다른 과목과 달리 영어는 절대평가여서 90점만 넘으면 1등급이다. 영어를 너무 어렵게 출제하면 사교육을 부추긴다면서 2018학년도부터 절대평가로 바꾸었다. 우리말로 번역해도 어떤 맥락인지 곰곰이 따져야 할 내용들인데, 시간을 다투는 시험에서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갖고 이런 문제를 내는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수험생을 가르치는 한 영어 강사는 "영어 지문(地文)으로 수업은 아예 불가능하고, 해설지를 펴 놓고 설명해도 학생들이 어려워한다"고 털어놨다. 문해력(文解力), 즉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의 한계라는 말이다. 영어뿐 아니라 수학·과학·사회까지도 포기하는 이유는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란다. 수능,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4학년도부터 도입됐다. 당시 수학(數學) 시험만 치느냐는 농담도 나왔는데, 수학능력(修學能力), 즉 배우고 익힐 역량을 측정하는 시험이라는 뜻이다. 한 세대를 풍미한 수능의 한계가 온 듯하다. 중등 교육과정이 수능에 매몰(埋沒)돼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바꾸고 있는데, 점수로 줄 세우기 교육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2024-07-01 20:12:10

  • [매일칼럼] 청년 일자리가 세대 갈등 해소의 첫 단추

    [매일칼럼] 청년 일자리가 세대 갈등 해소의 첫 단추

    청년층(15∼29세) 실업 문제가 심각하다. 청년층 취업자는 2022년 11월 5천 명 감소 이후 19개월째 감소세인데, 고용의 질적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인 상용직 취업자마저 무려 20만 명가량 줄어 최근 10년 새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청년 고용의 양적, 질적 측면 모두 하락 중이다. 상용직은 고용 계약 기간이 1년 이상인 임금근로자인데, 계약 기간 미정이라도 정해진 절차에 따라 취업해 인사관리를 받는다면 상용직에 포함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5월 청년층 임금근로자 중 상용근로자는 235만3천 명으로, 지난해 동기보다 19만5천 명 줄었다. 2014년 이래 가장 컸다. 청년층 인구가 줄었다고 해도 지난해 5월엔 1만 명이 줄어드는 데 그쳤는데, 1년 새 거의 20배가량 폭이 커진 셈이다. 대신 60세 이상 상용직은 무려 20만4천 명이 늘었다. 30대는 9만3천 명, 50대도 6만4천 명 증가했다. 다만 청년층과 함께 40대도 9만1천 명 줄었는데, 청년층 감소 폭의 절반이다. 청년층 취업자 자체도 줄고 있다. 지난달 청년층 전체 취업자는 383만2천 명으로 지난해보다 17만3천 명 줄었다. 2021년 1월 31만4천 명 감소 이후 최대치다. 문제는 일이나 구직활동을 아예 안 하는, 말 그대로 '쉬었음' 청년이 9개월 만에 다시 증가했다는 점이다. 5월 '쉬었음' 청년층은 39만8천 명에 달했다. 취업자·실업자가 아닌 비경제활동인구 중 질병·장애도 없는데 '그냥 쉰다'고 답한 이들인데, 통계를 시작한 2003년 이후 2020년 46만2천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취업이 가능하고 취업을 원하지만 취업을 포기한 '구직 단념 청년'도 올 들어 다시 증가세다. 지난해 11월 정부가 '쉬었음' 청년을 위한 노동시장 유입 촉진 방안을 발표했지만 효과는 전혀 없었다. 인턴 확충, 국가기술자격 시험 응시료 지원, 집단·심리 상담 등이 현실과 동떨어진 대책이어서다. 수출 확대로 경기 회복 조짐이 보이지만 반도체, 자동차 산업의 고용 유발 효과가 낮고 내수 침체가 깊어지며 당분간 청년 고용 절벽은 이어질 전망이다. 인구 감소에 못지않게 청년층 실업은 사회 역동성을 저하하는 심각한 문제다. 당국은 경기가 나아지면 청년층 실업도 해결되리라는 안이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청년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은 기성세대들이 함부로 옳고 그름을 가려 평가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고도성장 시기에 인재를 필요로 하는 양질의 일자리는 넘쳐났고, 평생직장의 안정감 아래 부지런히 일하고 알뜰히 저축하면 집 장만도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20년 새 집값은 10배나 치솟았고, 사회 진출 시기도 20대 초중반에서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으로 늦춰졌다. 대도시에 전세라도 얻어서 결혼 생활을 시작하려면 든든한 부모의 지원이 필수다. 여러 미디어를 통해 비쳐지는 일부 고소득층의 삶은 청년들의 열등감만 자극한다. 빚을 내 집을 사고 주식에 투자하는 이유다. 청년 실업은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위협이다. 미래 세대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마지막 기회만 남아 있는 국민연금과 재정 고갈 위험 신호가 계속 들려오는 건강보험 등이 버텨 낼 근거는 꾸준한 재원의 확충이고, 이는 청년층의 안정적 수입이 이뤄질 때 가능하다. 제아무리 내는 돈을 늘리고, 받는 혜택을 줄이는 개혁을 해도 성장 세대의 유입 없이는 연금과 보험의 유지가 불가능하다. 결국 사회 안전망이 붕괴되는 것이다. 따라서 청년 일자리는 국가 존속과 세대 갈등 해소의 첫 단추다.

    2024-06-30 18:41:39

  • [야고부] 기후변화

    [야고부] 기후변화

    60년쯤 지나면 서울 기준 하루 최고기온 33℃ 이상인 폭염일수가 110일이나 된다. 한여름 찜통더위가 석 달 이상 이어진다. 게다가 1년의 절반 이상은 여름 날씨다. 열대야는 지금보다 8~9배 늘어나 100일가량 된다. 연평균 강수량도 250㎜ 넘게 증가하고, 집중호우가 쏟아지는 날도 지금보다 40%가량 늘어난다. 온실가스가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배출된다는 가정 아래 만든 기후변화 시나리오에 따른 이야기다.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감축에 나섰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없고 앞으로도 비용과 효율, 나라별 상황을 볼 때 극적인 개선은 없을 것이다. 즉 '고탄소 시나리오'는 현실화 가능성이 높다. 이런 극단적인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최근 들어 우리나라는 기후변화의 위험을 체감하고 있다. 2018년 최악의 무더위라고 했는데, 올해 6월 벌써 폭염일수가 당시 기록을 깼다. 장마로 잠시 누그러진 폭염은 7, 8월 맹위를 떨칠 전망이다. 기상청은 폭염일수 최다 기록을 무난히 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게다가 6월 더위는 맛보기에 불과했고,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진짜 폭염은 7월 하순부터 8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한때 기후변화 또는 기후위기를 두고 진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구의 역사를 놓고 볼 때 이런 정도의 기온 상승은 수차례 있었고, 온실가스로 촉발된 현재의 기후변화도 상당히 과장된 측면이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시나리오가 옳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질학적 연구를 토대로 볼 때 분명 지금보다 극심한 기후변화가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속도가 지금처럼 빠른 적은 한 차례도 없었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재앙적 결과도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오히려 소극적이고 낙관적 측면이 있다. 화석연료 사용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재생에너지 전환은 느리기만 하다. 급기야 사람들은 '기후 우울감'을 호소한다. 최근 논문 '한국인의 기후 불안 수준 및 특성'에 따르면, 연령이 낮을수록 기후 불안이 컸다.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폭염, 폭우 등 이상기후 현상을 보며 불안감이 증폭되는 것이다. 인구 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불안한 미래에는 기후변화도 포함된다. 기업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려는 'RE 100'은 그저 수출이나 경제만을 위한 노력이 아니다.

    2024-06-24 20:12:14

  • [야고부] 기축통화 비트코인

    [야고부] 기축통화 비트코인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둔 도널드 트럼프는 얼마 전 "남은 비트코인을 모두 미국에서 채굴해야 한다. 비트코인 채굴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에 대항할 마지막 방어선이다. 비트코인을 향한 바이든의 증오심은 중국, 러시아, 급진 공산주의 좌파들만 이롭게 하고 있다"고 밝혔다. 트럼프의 발언에 대해 글로벌 투자은행 스탠다드 차타드는 트럼프 당선 시 비트코인 가격이 올해 말까지 15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비트코인 공급량은 2천100만 개로 제한돼 있는데, 현재까지 약 90%가 채굴됐고, 2140년 채굴이 끝날 전망이다. 지금도 미국 기업들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상당하다. 미국 나스닥 상장 기업과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발행사 등은 108조원 규모의 비트코인을 갖고 있다. 비트코인 상위 보유 기업 45곳 중 미국 상장사 19곳이 약 26조원, 자산 운용사 중 미국 업체 11곳이 약 82조원을 보유 중이다. 투자 수익뿐 아니라 안정성도 중요시하는 연기금의 투자 성향에도 비트코인이 주요 변수가 됐다. 올 초 미국 증시에 비트코인 ETF가 상장하면서 기관투자가들의 투자도 본격화했다. 아직 우리나라는 기관투자가의 비트코인 투자를 금지한다. 그러나 미국과 일본 등에선 논의가 활발하다. 하버드대·예일대를 비롯한 미국 주요 대학들도 기금을 암호화폐에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올렸다. 운용 자산이 약 2천조원으로 세계 최대 연기금 중 하나인 일본공적연금(GPIF)도 비트코인 투자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비트코인에 대한 시각 변화에는 달러의 불안정성이 한몫을 한다. 세계 무역 결제량의 44%를 차지하는 달러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부터 세계 중앙은행들이 경쟁적으로 돈을 풀면서 부의 불평등도 심화했다. 아울러 미국 정부의 부채 급증과 재정 악화 탓에 비트코인이 기축통화로 대체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비트코인 옹호론자들은 미국의 영향력이 감소하는 시기를 바로 비트코인 기축통화의 시발점으로 본다. 물론 변동성이 지나치게 크고 거래 처리 시간이 긴 탓에 불가능하다는 반론도 있다. 비트코인에 대한 트럼프의 야망이 달러 패권의 종말을 내다본 선견지명인지는 알 수 없으나 암호화폐에 대한 세계의 시각은 분명 달라지고 있다.

    2024-06-16 19:21:12

  • [매일칼럼] 결국 내수 회복인데 정치가 걸림돌

    [매일칼럼] 결국 내수 회복인데 정치가 걸림돌

    반도체 업황 회복과 자동차 산업 약진 덕분에 수출이 8개월 연속 성장하고, 무역수지가 12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간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 특히 반도체 수출은 110억달러 이상을 기록해 완연한 회복세를 보였고, 반도체·디스플레이·무선통신·컴퓨터 등 4대 정보기술 품목 수출도 3개월 연속 동시 증가세다. 수출 호조에 힘입어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우리나라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7%로 상향 조정했다. 수출 침체와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복합 불황에서 수출 주도 성장 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내다봐서다. 그런데 결국 문제는 내수다. 수출 덕분에 내수시장이 다소 살아나는 모양새이지만 고금리 탓에 충분한 내수 회복은 기대하기 쉽잖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수출이 가계 소득 증가, 기업 투자 증가 등 내수 확대를 이끌지만 고금리는 기업 투자의 기회비용 상승, 가계의 저축 유인 증대로 이어져 결국 내수를 위축시킬 것으로 분석했다. 현대경제연구원도 실질 구매력 회복세가 더뎌지며 민간 소비 증가율은 지난해 1.8%에서 올해 1.7%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내수 회복을 위해 유연한 통화정책과 활력을 불어넣을 재정정책이 필요하다. 시중에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의미인데, 상황은 여의찮다. 가계 대출이 증가세로 돌아섰고, 일반은행 신용카드 연체율과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등 개인 사업자의 은행 대출 연체도 급증세다. 빚으로 빚을 막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고물가도 발목을 잡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두 달 연속 2%대 후반에 머물며 다소 안정세를 찾는 모습인데 농산물과 석유류 가격은 여전히 위협적이다. 2021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13%가량 급등했다. 먹고 쓰는 데 드는 돈이 더 들다 보니 월급이 줄어든 효과를 낳았다. 중산층·고소득층 살림살이도 팍팍해졌다. 올해 1분기 기준 중산층 가구 5집 중 1집가량은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은 '적자 살림'을 했다. 소득 상위 20% 이상인 고소득층의 적자 가구 비율도 10%에 육박한다. 현재 수출과 금리 흐름이 지속된다면 내수를 충분히 끌어올리기 어렵다. 기댈 것은 금리 인하이지만 현 상황은 예상보다 오래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금리 인하 시기에 보수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금리를 낮췄으나 파급효과를 기대하기는 무리다. 수출 호조를 장담하기도 쉽지 않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가 이어지면서 대선을 앞둔 미국에선 보호무역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한국에 불리한 요구를 쏟아낼 가능성이 크다. 호황기라도 경제정책을 허투루 낼 수 없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위기라면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해외 직구 금지 논란, 연구개발(R&D) 예산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 논란 등 정책적 혼란은 말할 것도 없고 유류세 인하 조치 중단을 둘러싼 구설에다 온갖 감세 정책의 원점 회귀까지 도무지 경제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탓만 할 수도 없다. 정부 여당이 내놓은 경제 관련 입법은 모조리 국회에서 무산됐고, 22대 국회도 나아질 가능성은 안 보인다. 물가 안정을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해도 위기를 넘길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결국 문제는 경제이고, 첫 단추가 내수 회복인데 원칙도 대책도 합의도 없는 게 우리 상황이다.

    2024-06-10 05:00:00

  • [야고부] 북극 항로

    [야고부] 북극 항로

    북극 항로는 러시아 북서쪽과 동쪽 지역을 잇는 5천600여㎞ 바닷길이다. 겨울철엔 바다마저 얼어붙어 배가 다닐 수 없었으나 최근 기후온난화로 운항 가능한 기간이 늘고 있으며, 머지않은 장래엔 연중 운항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다 얼음이 줄었지만 여전히 안전을 위해 쇄빙선 호위가 필요하다. 즉 북극 항로를 이용하려면 쇄빙선 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서방 경제 제재에 대응해 북극 항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푸틴은 지난해 10월 중국에 북극해 공동 개발을 제안했고 중국도 적극적이다. 북극 항로를 놓고 러시아와 중국이 손을 잡는다면 지정학적으로 안전하다는 장점이 사라지고 서방과의 갈등 국면에서 항로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환경단체들은 지구온난화로 이용 가능성이 높아진 북극 항로에 선박 운항이 늘면서 배기가스 배출도 덩달아 증가하면 북극 얼음이 더 빨리 녹아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런 어려운 조건 속에도 북극 항로에 대한 기대감은 커지고 있다. 시간이 곧 돈인 대형 선사들이 최대한 짧은 해상 항로를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 새 글로벌 해상 화물 운임은 최고 2배 이상 급등했다. 세계의 물길인 수에즈·파나마운하가 막혔기 때문이다. 세계 컨테이너 운송 물량의 30% 이상이 통과하는 수에즈운하는 예멘 후티 반군의 공격으로 물동량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 동북아시아에서 미 동부로 가는 물동량의 40% 이상이 지나는 파나마운하는 엘니뇨 여파로 극심한 가뭄에 시달린다. 북극 항로는 현재 해상 운송로 중 한국에 가장 이득이 된다. 부산 기점으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까지 가는 시간을 따진다면 북극 항로는 수에즈운하나 희망봉 통과보다 8~12일가량 단축시킬 수 있다. 포항 영일만항은 세계적 항만이 될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북극 항로가 주목받는 가운데 대규모 석유·가스 개발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물동량과 항만 인프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서다. 물동량과 해상 운임 측면에서 장차 영일만항의 역할에 주목할 만하다. 포항 유전이 성공적으로 개발된다면 북극 항로는 가장 안전하게 수익을 보장할 수 있는 해상 운송로로 떠오를 전망이다.

    2024-06-06 19:48:08

  • [야고부] 떴다방의 추억

    [야고부] 떴다방의 추억

    대구 한 신축 아파트 견본주택에 1만 명가량이 몰렸다고 한다. "대구에서 집 사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얼어붙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는 방문객 반응도 나왔다. 올해 아파트 거래량이 늘면서 시장이 꿈틀한다는 소식도 들린다. 1분기 대구 아파트 거래량이 지난해 4분기보다 약 20% 늘었다고 한다. 돌아서면 아파트 한 채 값이 억 단위로 뛰던 이른바 '부동산 호황기'가 있었다. 기사 제목마다 '떴다방 기승'이 도배하다시피 했다. 떴다방 등장은 아파트값 상승 신호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떴다방은 분양권 전매 브로커 조직을 일컫는 말이다. 건설사나 시행사로부터 미분양·미계약 아파트 물량을 받아 매수자가 나타나면 프리미엄을 받고 팔거나, 청약 당첨자와 실제 매수자를 연결해 주는 불법 전매를 했다. 집값을 예측할 수 없으니 누가 손해인지는 훗날 판단할 몫이었다. 떴다방을 통해 웃돈 주고 집을 사서 양도소득세 빼고도 큰돈을 만졌다는 사람도 있고, 막판에 물려서 중도금과 막대금 대출 이자를 갚느라 피눈물을 쏟았다는 사람도 있다. 공급 폭탄 시기에도 저금리 호황에 속아 미분양 아파트를 '잔반 처리조'처럼 사들인 사람도 있었다. 지방 인구 소멸을 막으려면 지방에 공급하는 통합공공임대주택에 다양한 부대 복리시설과 생활 사회간접자본을 같이 조성해야 한다는 전문가 견해가 나왔다. 일본 소도시 사례를 들며 어린이집, 작은도서관, 사회복지관뿐 아니라 유치원, 공유 오피스, 실내 체육시설, 반려동물 놀이터, 병원, 고령자 재활 및 활동 시설 등도 함께 조성하면 사람이 모이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다. 아름다운 이야기다. 그런데 지방의 젊은이들도 공감할까. 아파트 단지에 아무리 좋은 시설이 있어도 교육 환경, 일자리가 없다면 매력적일까. 백번 양보해 그렇다고 쳐도 인구 감소 시대에 과연 해법이 될까. 주택 시장에 찬물을 끼얹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다만 예전 같은 거품의 시대는 끝났다는 게 중론이다. 금리 변동과 주택 공급량에 따라 집값이 뛸 수도 있다. 그러나 투기 대상으로 집을 사려 한다면 심사숙고해야 한다. 떴다방은 추억 속에 묻어 두자. 필요에 의한 건전한 부동산 시장이 자리 잡을 때가 됐다.

    2024-05-28 20:04:12

  • [야고부] 대(對)국민 거짓말

    [야고부] 대(對)국민 거짓말

    거짓말은 엄연한 사실과 전혀 다른 이야기를 뜻한다.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일 수도 있는 애매한 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진술을 거짓말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판이나 착각은 거짓말과 다르다. 잘 모르고 하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런 착오나 무지는 바로잡을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그런 기회조차 살리지 못한다면 거짓말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된다. 거짓말도 구제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뉘우침과 후회가 전제될 때 그렇다. 스스로 돌이켜보고 자신의 거짓말이 낳을 피해를 깨닫고 참회 속에 나온 '거짓의 정정'은 진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진심 어린 반성은 때론 극적 반전을 꾀하기도 한다. 대중의 질타와 냉소가 연민과 동정으로 바뀐다. 그런데 벼랑 끝에 몰려서 모든 것이 탄로 날 지경에 내뱉는 거짓의 정정과 반성은 역효과를 낳는다. 비난은 분노로 치닫게 된다. 뒤늦게 음주운전을 인정한 가수 김호중 씨는 20일 "거짓말이 더 큰 거짓말을 낳는다는 걸 깨달았다"는 입장을 내놨다. 김 씨는 "사회적 공인으로서 그동안 행동이 후회스럽다. 음주운전을 포함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과하고 싶다"고도 했다. 운전자 바꿔치기를 시도하고 차량 3대 블랙박스 메모리카드가 사라진 뒤에 나온 입장이다. 음주운전 의혹 정황들이 쏟아지자 벼랑 끝에 내놓은 거짓의 정정이다. 국민들은 영국 국영방송인 BBC의 탐사보도팀 'BBC 아이(Eye)'가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버닝썬-K팝 스타들의 비밀 대화방을 폭로하다'에 등장하는 승리, 정준영의 경악스러운 범죄만이 아니라 뻔뻔한 거짓말에 더 놀랐다. 팬덤에 기댄 스타들은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에게 노골적이고 공격적인 거짓말을 해댔다. 세상이 온통 거짓과 싸우는 듯하다. '특검' 정국에 내몰린 정치권도 거짓말쟁이 색출에 혈안이 된 것 아닌가. 검찰도 경찰도 못 믿겠으니 특검이 필요하다는 주장과 반론이 민생 현안을 뒤덮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너무 늦지 않은 거짓의 정정, 양심선언이라도 나오기를 바란다. 거짓말은 상대를 속일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비난이 쏟아져도 거짓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상대를 바보로 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얼마나 만만하게 보이면 이런 작태가 벌어지나.

    2024-05-21 18:30:19

  • [매일칼럼] 금투세 논란, 정쟁 대상 삼아선 안 된다

    [매일칼럼] 금투세 논란, 정쟁 대상 삼아선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9일 "금투세(금융투자소득세)를 폐지하지 않는다면 우리 증시에서 엄청난 자금이 이탈하고, 1천400만 개인투자자에게 막대한 타격이 예상된다. 우리나라 금융투자 세금이 선진국에 비해 매우 높아 금투세까지 얹히면 별로 남는 것이 없다"면서 국회에 협력을 요청하고 특히 야당 협조를 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금투세는 주식·펀드·채권·파생상품 등의 소득에 대해 20% 이상의 세금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세율은 수익 기준으로 연간 국내 주식 5천만원까지, 해외 주식, 펀드 등은 250만원까지 기본 공제되며, 이후 3억원 기준으로 세율이 22%, 27.5%로 나눠 적용된다. 앞서 여야는 2023년부터 금투세를 시행하기로 했다가 투자자 반발이 커지자 2025년 1월로 시행 시기를 2년 늦췄다. 현재 정부와 여당은 국내 증시 자금 이탈과 개인투자자 손해를 이유로 폐지를 공언하고 있고, 원내 1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부자 감세'라며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금투세를 시행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러 논란 중 하나는 과세 대상에서 제외된 기관투자가에만 절대 유리하고 이른바 '개미'들이 외국인과 기관의 감세분까지 떠안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금투세 도입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국보다 높은 세율을 도입하면 굳이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개인 상위 1%가 전체 주식의 50%를 보유하고 있고 민주당은 1% 미만이 납세 대상이라는데, 바로 그 1%가 빠져나가면 99% 투자자가 피해를 본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적용 대상을 둘러싼 이견도 있다. 3년간 통계 기준 연간 수익 5천만원 이상인 투자자가 20만여 명으로 전체의 0.9%에 불과하며 결국 금투세 폐지는 이들에 대한 부자 감세라고 민주당은 주장했다. 그러나 여러 증권사 계좌를 함께 갖고 있는 투자자들이 통계에서 누락됐고, 실제 대상자는 훨씬 많다는 반론도 나왔다. 물론 이런 우려가 지나치다는 반론도 있다. 주식 투자로 5천만원 이상 수익을 올려야 금투세 대상이 되는데 이는 전체 투자자 중 극히 일부에 국한되며, 이들에게 세금을 매긴다고 해도 주식시장 폭락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여전히 의문이라고 주장한다. 공매도 금지로 주식시장이 되살아날 것으로 기대했지만 정부가 지난해 11월 공매도를 금지한 이후에도 외국과 달리 국내 증시는 여전히 옆걸음질만 치고 있다. 금투세 논란은 국내 증시 활성화를 위한 '밸류업 프로그램'과 맥을 같이한다. 바꿔 말해서 주주들이 믿고 투자할 환경, 주주들이 만족할 주주환원 정책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채널을 통해 투자 정보를 제공하는 자칭 전문가들조차 국내 기업 주주환원율 평균이 25%에 불과한 만큼 차라리 미국이나 신흥국 증시에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미국은 주주환원율 평균이 92%, 신흥국도 37%에 이른다. 금투세 폐지는 대통령 말대로 '야당 협조'가 관건이다. 그러나 주고받기식 정쟁거리가 되면 곤란하다. 전쟁과 미국 대선, 중국 내수 침체 등 대외적 불안 요소가 즐비한 마당에 금투세 논란마저 질질 끌어서는 안 된다. 금투세 도입이 시기상조라고 정부가 판단한다면 철저한 분석과 꾸준한 설득을 통해 여론을 주도하고 야당을 설득해야 한다. 1천400만 투자자를 염두에 둬야 할 야당도 조속히 결론을 내려야 옳다. '부자 감세'라는 진영 논리가 아니라 증시 활성화라는 큰 틀에서 대화해야 한다. 증시 불안 요소를 하루빨리 없애는 쪽이 국민의 편이다.

    2024-05-19 18:58:49

  • [야고부] 수능 만점과 감정 교육

    [야고부] 수능 만점과 감정 교육

    인간은 이성(理性)적일까, 감정(感情)적일까. 인류가 이룬 업적들은 이성적 사고의 산물로 받아들여졌다. 기쁨, 성취감, 희열 등 긍정적 감정뿐 아니라 슬픔, 두려움, 좌절감, 분노 등 부정적 감정 모두 적절히 통제해야 하고, 이를 잘 조절하는 사람이 성공적 인생을 산다고 배웠다. 감정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고 뇌의 어느 부분에서 특정한 감정이 발현되고 조율되는지는 20세기 중후반에야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이론물리학을 전공한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의 저서 '감정의 뇌과학'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다. 사귀던 여성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한 남성은 연인을 설득하거나 선물 공세를 하는 대신 모성애를 자극하고 싶었다. 한 친구에겐 총으로 자신을 쏴 달라고 부탁하고, 다른 친구에겐 폭력배에게 습격받았다고 연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남성은 폭력배 습격 허위 신고로 기소됐고, 친구들도 거짓말 범죄 가담과 총기 사용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물론 연인은 병원에 오지도 않았다. 검찰도 변호사도 "지금껏 본 가장 어리석은 중죄"라고 평했다. 남성은 냉철하고 차분하게 계획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극단적인 감정의 선택을 했을 뿐이다. 이성적 판단 따위는 없었다. 서울 강남역 한복판에서 '수능 만점 명문대 의대생'이 연인을 흉기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 사건만 최소 138건이고, 같은 기간 데이트 폭력 피의자만 약 1만4천 명에 이른다. '수능 만점'과 '의대생' 수식어 때문에 사건이 부각됐을 뿐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하다는 말이다. 시민들은 '사전에 범행을 계획했다'는 내용에 더 충격을 받았다. 감정이 절제된 상태에서 이성적 판단을 통한 잔혹한 범행을 계획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랬을까. '수능 만점'이 감정 절제 능력도 평가할 수 있을까. 사실 감정의 개입 없이 이성적 판단만 가능한 경우는 오히려 극히 드물다. '감정 교육'은 배운 적도 없고, 감정 통제는 철저히 개인의 역량에 맡겼다. 범죄자를 옹호하고픈 마음은 전혀 없다. 다만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고,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방법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결국 우리 행동은 감정의 결과물 아닌가. 사람마다 발현의 강도가 다를 뿐.

    2024-05-13 00:13:40

  • [야고부] 화목한 가족

    [야고부] 화목한 가족

    지난달 10대 남매에게 심한 욕설과 함께 폭력을 휘두른 40대 엄마가 아동학대 혐의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욕을 하면서 옆구리와 허벅지를 수차례 때리기도 했는데, 열한 살 아들이 처벌을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신생아를 돈 주고 사서 학대한 40대 부부는 징역 4년과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친모 4명으로부터 100만∼1천만원을 주고 신생아 5명을 샀는데 생후 일주일 된 갓난아기 등 2명은 성별과 사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베이비박스에 버렸고, 부부 싸움을 하다 이유도 없이 아이들을 때리기도 했다. 이들은 1심 처벌이 무겁다며 항소했고, 징역 12년과 징역 10년을 구형한 검찰 역시 엄벌에 처해 달라며 항소했다. 양육비를 받아 오라며 열두 살 난 아들을 혼자 전 남편에게 보낸 친모에겐 징역 3개월형이 내려졌다. 전 남편에게 전세금 명목으로 받은 돈으로 외제 차를 샀다가 거짓말이 들통나 양육비를 못 받게 되자 벌인 일이다. 전셋집에서 쫓겨난 뒤엔 아들을 공원과 차 안에서 재우기도 했다. 신생아를 학대해 크게 다치게 한 부모는 징역형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백일도 안 된 아기의 가슴과 머리 등을 때려 골절과 뇌출혈을 일으켰고, 30여 차례 방치했다. 모두 최근 한 달 새 벌어진 일들이다. 학대당한 자녀가 직접 부모와 연을 끊을 수 있도록 한 가사소송법 전부 개정안이 국회로 넘겨졌지만 21대 국회에서도 폐기될 위기다. 지난 2020년 양부모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숨진 정인이 사건의 후속 법안으로 2022년 어린이날에 맞춰 입법예고한 뒤 국회로 넘겨졌다. 1990년 가사소송법 제정 후 32년 만에 나온 개정안이지만 무관심의 문턱을 넘지 못할 전망이다. 초등교사노동조합이 어린이날을 앞두고 전국 초등학생 7천10명에게 물었더니 어린이들이 생각한 행복의 조건 1위는 '화목한 가족'(39%)이었다. 고민을 말할 상대는 어머니(30%), 친구(22%), 아버지(21%) 순이었다. 그러나 가족과의 대화 시간은 1∼2시간(26%)이나 1시간 미만(21%)에 그쳤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2024 아동행복지수 생활시간 조사'를 했는데, 여가 시간에 친구나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 집에서 혼자 스마트폰을 본다는 응답자가 60%나 됐다.

    2024-05-02 20:08:33

  • [매일칼럼] 부자 감세 논란에 노후 대책 위협받는다

    [매일칼럼] 부자 감세 논란에 노후 대책 위협받는다

    주식시장 저평가, 즉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내놓은 '밸류업 프로그램'의 구체안이 나왔다. 주주 환원 증가액의 일정 부분에 대한 세액공제를 통해 법인세 과표 구간을 낮추고, 배당소득세에 분리과세를 도입해 저율 과세하는 내용이다. 분리과세를 도입하면 2천만원 이상 배당소득에 대해 금융소득종합과세(지방세 포함 49.5%)에 합산하지 않고 원천 세율(15.4%)만 적용한다. 원래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되면 금융소득과 근로·사업소득을 합산해 세율을 정하는데, 배당소득에 대해서는 이렇게 합산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1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방문한 자리에서 밝힌 내용이다. 지난 3월 19일 자본시장 선진화 전문가 간담회에서 기본 방침을 밝힌 후 구체적 방식이 나온 것은 처음이다. 세금을 줄여주는 것이 핵심인데, 정확한 세율은 세법 개정안에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최 부총리는 민감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와 상속세 완화도 언급했다. 금투세 폐지 등 밸류업 정책의 지속 추진을 거론하면서 "(상속세는) 국민 공감대를 전제로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다. 여소야대를 염두에 둔 조심스러운 발언으로 읽힌다. 금투세는 주식, 채권, 펀드, 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얻는 투자소득에 전면 과세하는 제도로, 금융소득이 5천만원을 넘기면 20%, 3억원 초과 시 25% 세금을 부과한다. 배당·연금 등으로 노후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금투세는 적잖은 걸림돌이다. 지난해 시행 예정이었지만, 금융투자업계 반발이 일면서 시행 일정을 2025년으로 2년 유예한 바 있다. 2022년 기획재정부 분석에 따르면 금투세를 도입할 경우 상장주 거래 관련 과세 대상이 기존 1만5천 명에서 15만 명으로 10배 증가할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올 초 금투세 폐지를 공식화했지만, 총선에서 여당이 참패하면서 금투세가 예정대로 2025년에 시행될 것이란 투자자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금투세 폐지 촉구 국회 국민 동의 청원은 지난 9일 시작된 지 1주일 만에 5만 명을 넘어섰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5일 금투세 유예 방안과 관련, "비겁한 결정이 아닌가 싶다"고 입장을 밝혔다. 유예가 아니라 애초 방침대로 폐지로 밀고 가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부자 감세라면서 여전히 반대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예정대로 2025년부터 금투세가 차질 없이 시행되게 할 것"이라면서 "부자들의 곳간만 지키겠다는 정부의 입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밸류업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1분기 주식 결제 대금이 전년 동기 대비 30%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만큼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더 내고 더 받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지만 실제 도입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더 내기는 쉽지 않고, 더 받는다고 해도 여전히 소득대체율 50%다. 노후 대비에 공적연금은 턱없이 부족하다. 건강보험도 지뢰밭이다. 쥐꼬리만 한 투자 수익과 연금을 받아 봐야 세금과 보험료를 내고 나면 손가락 빨아야 할 판이다. 국민들이 장기 투자와 사적 연금에 매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밸류업 도입과 금투세 폐지는 전향적 검토가 필요하다. 정부 여당은 약속을 지키려면 세수 부족을 해결하고, 부자 감세를 걸고 넘어지는 야당도 설득해야 한다.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해야 할 시점이 다가왔다.

    2024-04-28 19:11:19

  • [야고부] 공유 망상

    [야고부] 공유 망상

    밤낮없이 이웃집 소음에 시달리는 모녀가 있다. 한 집은 하루 종일 노래를 크게 틀어 대고, 다른 집은 녹음된 아기 울음소리를 튼다. 참다못해 이웃집 벽을 두들겨 대지만 소용이 없다. 결국 제3자의 도움을 받기로 했는데, 중재는커녕 일을 더 키우고 말았다. 이웃집 소음은 전혀 없고 도리어 모녀가 난데없이 벽을 치는 탓에 이웃들이 불안해한다는 것이다. 모녀 중 엄마가 병원을 찾았고 망상과 환청 진단을 받았다. 그렇다면 딸은 왜 그랬을까? 엄마의 망상과 환청을 전해 들은 딸이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엄마가 계속 같은 주장을 하자 나중엔 뚜렷하게 소리를 듣고 심지어 노래를 따라 부를 지경이 됐다고 한다. 현대 의학은 이를 '공유 정신병적 장애', 즉 공유 망상이라고 부른다. 공유 망상의 발생 원리는 아직 정확지 않다. 다만 최초 환자의 상당한 영향력과 사회적 고립, 망상을 이어받는 사람이 외부 암시를 쉽게 받아들이는 성향 등이 결합하면 이런 결과를 낳는다고 본다. 뭔가 비슷한 게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최초 환자'를 '사이비 종교 창시자'로 바꾸면 상당히 많은 안타까운 사건들을 떠올릴 수 있다. 1978년 11월 18일 남아메리카 가이아나에서 벌어진 900여 명 집단자살 사건이 있다. 짐 존스가 창시한 사이비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가이아나에서 청산가리를 탄 음료를 마시고 숨진 것이다. 이들은 교주 말에 따라 자식들에게 독을 먹인 뒤 자신들도 마셨다. 바로 '인민사원 집단자살 사건'이다. 극단적 사례일 뿐 일상과는 무관해 보이는데 과연 그럴까. 멀쩡한 사람도 절대다수가 어처구니없는 오답을 말하면 그대로 따라 한다는 유명한 심리 실험도 있다. 심지어 이를 일상에서 흉내 낸 유튜브 개그 코너도 있다. '뇌의 흑역사'를 쓴 마크 딩먼 교수는 공유 망상의 원인 중 하나로 뇌의 의심 생성 회로를 담당하는 부분인 '전전두피질' 손상을 말한다. 전전두피질 손상 환자들은 인지 기능은 정상인데 터무니없는 오류를 잡아내지 못한다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그런데 '확증편향의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은 과연 공유 망상에서 안전할까. 누군가의 영향력, 특히 정치적 배타성 아래에서 사회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의 전전두피질은 무사한가.

    2024-04-23 20:33:25

  • [야고부] 구독(購讀) 경제 시대

    [야고부] 구독(購讀) 경제 시대

    쿠팡이 유료 멤버십 월 회비를 4천990원에서 7천890원으로 올린다. 2021년 12월 2천900원에서 4천990원으로 72% 올렸는데, 2년 4개월 만에 60%가량 인상이다. 지난해 말 멤버십 회원은 약 1천400만 명. 쿠팡 멤버십 수입은 연간 8천388억원에서 1조3천260억원으로 늘게 된다. 유료 회비가 연간 10만원에 육박하지만 로켓 배송, 무료 반품 등 혜택을 계속 이용하겠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반대도 있다. '구독(購讀) 경제'는 신문, 우유처럼 일정액을 내고 상품·서비스를 정기적으로 받는 서비스다. 분야는 나열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농장 직송 달걀 배달부터 정수기·비데·공기청정기·안마 의자·침대 매트리스 위생 관리 및 필터 교체도 해당한다. 반찬·도시락·신선식품·과자·패스트푸드 정기 배달도 있다. 미국 테슬라는 '주행 보조 시스템 FSD(완전자율주행)' 서비스 구독료를 절반으로 낮췄다. 전기차 수요 둔화 때문이다. 당장 구독자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일 뿐 언제라도 요금을 다시 올릴 수 있다. 구글은 검색 사업자 중 최초로 인공지능(AI) 검색 서비스 유료화를 검토한다. 기존 유료 구독 서비스 '구글 원'에 특정 AI 기반 검색 기능을 추가하는 옵션이 유력하다. 지난해 구글은 검색 서비스 연동 광고로 전체 매출의 절반인 1천750억달러(약 235조원)를 벌었다. 그런데 AI가 장애물로 등장했다. 챗GPT처럼 AI 챗봇이 내놓은 검색 결과에는 특정 사이트나 광고가 뜨지 않기 때문이다. 식음료와 의류뿐만 아니라 차량 자율주행, AI 활용 사무 보조,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던 고급 정보까지 구독하는 세상이 왔다. 사업자들은 구독 서비스에 사활을 건다. 초기 진입 장벽을 낮춰 일단 구독자로 만들면 가마솥 안 개구리처럼 조금씩 비용을 올려도 좀처럼 떠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구독 경제로 인한 양극화는 사회 문제가 될 수 있다. 휴대폰 요금에다 온갖 보험료와 연금은 기본이고 푼돈처럼 보이던 구독료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다. 내 돈 내고 서비스를 택했지만 가마솥 안 개구리가 된 느낌이다. 어쩌면 선택권 따위는 이미 박탈당한 세상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꼬박꼬박 매월 내는 이자도 빌린 목돈에 대한 구독료인 셈이니까.

    2024-04-15 20:26:15

  • [야고부] 나이롱 환자

    [야고부] 나이롱 환자

    법원은 지난 1월 보험사기 혐의로 기소된 A(70)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하고, 사회봉사 160시간을 명령했다. 2012년부터 8년간 병원 7곳에서 1천 일 넘게 입원하면서 6개 보험사로부터 보험금 2억3천만원을 타냈다는 이유다. 재판부는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에게 경제적 피해를 떠넘겨 죄질이 나쁘다고 했다. 교통사고 경상 환자는 타박상과 염좌 등으로 3~4주 치료를 받는데, 환자가 계속 치료받겠다고 우기면 막을 방법이 없다. 일부 의료기관은 과잉 치료도 한다. 결국 자동차 보험료가 오르게 된다. 지난해 1월부터 경상 환자가 장기 치료를 받을 때 진단서 제출을 의무화했지만 효과는 별로 없었다. 지난해 경상 환자 치료비는 8천633억원으로, 2019년(6천639억여원)에 비해 30% 올랐다. 특히 한방병원 치료비는 6천891억원으로 2019년보다 60% 늘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특히 경상 환자들이 양방보다 약 2.9배 비싼 한방치료를 선호해 한방치료 지급액이 양방치료비를 추월했다. 경찰이 지난 3년간 적발한 교통사고 보험사기만 7천947건에 달하고, 6천218명을 검거(구속 165명)했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진료비 심사에서 교통사고가 얼마나 컸는지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범퍼만 부딪혀도 뒷목 잡는 '나이롱 환자'가 생기는 이유다. 보험개발원은 사고 규모와 부상 인과성을 판단할 실험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사고 후 무조건 드러눕고 보는 가짜 환자를 가려내려는 작업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오는 7월 9일까지 100일간 교통사고 보험사기 범죄와 상습 음주운전 위반자 특별 수사 기간을 운영한다. 고의 교통사고, 교통사고 후 허위·과장 보험금 신청 행위, 병원·정비소 등과 공모한 보험금 과다 신청 행위 등도 단속한다. 보험금을 받아내지 못한 미수범까지 면밀히 수사·검거할 방침이다. 사기는 중범죄다. 선량한 시민을 가해자로 만든다. 공조한 의료기관도 엄벌해야 한다. 이런 게 정의 구현이다. 그러고 보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겠다며 입만 떼면 거짓말을 내뱉고, 국민 위에 군림하고픈 욕심만 가득한 채 금배지 달기에 혈안이 된 '나이롱 정치인'을 걸러낼 총선일이 하루 앞이다. 쉽지 않겠지만 해야 한다.

    2024-04-08 19:59:34

  • [매일칼럼] ‘로봇 도시 대구’ 결코 꿈이 아니다

    [매일칼럼] ‘로봇 도시 대구’ 결코 꿈이 아니다

    자동차 제조가 산업 기술의 집약체라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로봇 산업이 첨단 기술의 집대성이다. 인공지능(AI)과 함께 반도체, 2차전지, 통신, 기계공학 등 첨단 분야를 망라한다.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산업용은 물론 조만간 가정마다 특화 기능을 보유한 로봇들이 마치 냉장고, TV처럼 기본 제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로봇연맹보고서(IFR)에 따르면 세계 서비스 로봇 시장 규모는 2021년 362억달러에서 2026년 1천33억달러로 3배 이상 성장한다.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인포메이션(GII)에 따르면, 세계 산업용 로봇 시장 규모는 2021년 기준 323억2천만달러에서 연평균 12.1%씩 성장해 2030년 885억5천만달러에 육박한다. 커피를 만들고 치킨을 튀기는 등 특수 목적의 로봇 시대에서 로봇 하나로 모든 작업을 수행하는 시대로 갈 것인데, 결정체가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다. 테슬라는 '옵티머스'를 통해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 시대를 열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옵티머스 수백만 대를 양산해 3∼5년 내에 2만달러(약 2천600만원) 이하로 주문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 2021년 약 9천600억원을 투입해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 휴머노이드 사업에 진출했다. 다만 AI 로봇 시장은 아직 독보적 기업도, 상용 제품도 없는 무주공산으로 평가된다. 누구라도 시장 선점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로봇 산업에 대한 대구의 기대는 크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금껏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2021년 12월 대선 후보 시절 대구 현대로보틱스를 찾아 "달성군을 중심으로 한 로봇 산업의 클러스터 구축"을 약속했고, 지난 2022년 8월 '제1차 규제혁신전략회의'를 대구의 대표적 로봇 기업인 아진엑스텍에서 열었으며, 지난달 4일 경북대에서 열린 민생토론회에선 로봇과 미래 모빌리티 중심의 대구의 새 산업 지도를 언급했다. 게다가 정부는 달성군에 1천998억원을 투자해 2028년까지 국가로봇테스트필드를 구축한다. 국가로봇테스트필드는 기업 개발 로봇이 실제 및 가상 환경에서 안전하게 작동하는지 평가·실증하는 기반 시설이다. 국가로봇테스트필드가 완료되는 2028년엔 정부가 준비 중인 제4차 지능형 로봇 기본계획도 마무리된다. 대구시는 국내 유일의 로봇 지원 기관인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2010년 유치했고, 한국기계연구원·대구기계부품연구원 등 연구 인프라와 경북대·DGIST 등 교육 인프라, 현대로보틱스 등 230여 개 로봇 기업 등 산업 인프라까지 갖췄다. 로봇에 필수적인 2차전지와 반도체 관련 특화단지가 포항과 구미에 들어설 예정이다. 1975년부터 LG전자 TV를 생산하던 핵심 기지였던 구미 퓨처파크는 TV 생산 라인 이전 이후 태양광패널 사업 대신 로봇 제조로 눈을 돌렸다. 지난해 1월 제1호 LG 클로이 로봇 생산 이후 다양한 가이드봇, 서브봇, 캐리봇 등을 생산 중이다. '로봇 도시 대구'의 준비는 갖춰졌다. 미래 로봇 산업을 위해 산·학·관·연이 힘을 합치는 일만 남았다. 막대한 자본 투입과 기술 개발, 시장 분석을 통한 수요 예측과 맞춤 생산 등은 한 주체만이 감당할 수 없다. 빅테크로 불리는 초거대 글로벌 기업과의 협업과 경쟁도 해야 한다. 대구 기회발전특구는 이를 감당할 마중물이 될 것이다. 로봇이 중심이 돼 사람이 모이고 활기가 넘치는 미래 도시 대구를 기대해 본다.

    2024-04-07 18: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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