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화식객 이춘호의 미각기행] <43>닭에서 치킨까지 (中)대구 프라이드치킨의 역사

세계인 입맛 잡는 'K-치킨'…그 뿌리는 '대구'다
1960년대 전기통닭 대유행…식용유 등장 튀김닭 시대로
'대구통닭' 간장치킨 첫 개발…'맥시칸' 양념맛 선봬 신드롬
교촌·땅땅치킨·멕시카나 등 지역서 수많은 브랜드 탄생

계란 위주의 양계산업은 70년대 전기통닭, 80~90년대의 프라이드치킨, 그리고 2010년부터는 한 마리씩 나오는 옛날통닭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71년 등장한 식용유, 그것 때문에 양념과 간장프라이드치킨으로 대별되는
계란 위주의 양계산업은 70년대 전기통닭, 80~90년대의 프라이드치킨, 그리고 2010년부터는 한 마리씩 나오는 옛날통닭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71년 등장한 식용유, 그것 때문에 양념과 간장프라이드치킨으로 대별되는 'K-치킨의 시대'가 개막된다.

◆대구 프라이드치킨의 어제와 오늘

어느 날부터 '달걀시대'가 저물고 있었다. 그 사이에 1960년대를 쥐락펴락했던 영양센터표 '전기통닭시대'가 도래한다. 그 시절 아버지는 지금과 달리 나름 가부장의 권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모르긴 해도 월급이 은행계좌로 자동이체 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금융실명제 이전이었고 다들 누른 월급봉투에 들어간 두툼한 현금을 으스대며 아내에게 내밀었다. 그런 날 대한민국의 아버지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전기통닭과 함께 귀가했다. 고소한 기름내가 방안 가득했다. 닭기름이 번진 갈색 종이봉투의 식감! 동봉된 깨소금을 찍어 한입 베어 문다. 그 놀라운 맛 때문에 제대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프라이드치킨 이전에 히트쳤던
프라이드치킨 이전에 히트쳤던 '전기통닭'.

◆전기통닭

1970년대 시장표 가마솥통닭은 훗날 프라이드치킨 시대의 산파역이 된다. 그보다 앞서 튀김닭의 변화에 크게 기여한 건 단연 전기통닭이었다. 요즘 그 연장에 서 있는 오븐형 통닭차가 거리를 누비고 있다.

1961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충무로 1가 42 사보이호텔 후문 근처, '명동 영양센터'가 한국 전기통닭의 효시다. 영양센터는 '통닭센터'였다. 당시 야유회 먹거리로 이 통닭이 딱이었다. 60년대 후반 동성로에 여러 업소가 우후죽순 들어선다. '서울영양센터'를 필두로 중앙네거리 동북쪽 모퉁이에 '백마강 영양센터', '백만인', '신서울', '뉴서울', '주부센터' 등이 가세한다. 향촌동 '주부센터'는 전기통닭을 도시락 형태로 팔았다. 문학평론가 김현의 생전 단골이었던 서울 반포에 있는 동네 치킨집 '반포치킨'은 1977년 영업을 시작해 '전기구이 마늘치킨'을 별미로 팔았는데 퓨전 전기통닭의 전통이랄 수 있다. 하지만 전기통닭의 위력은 1971년 급전직하로 추락하게 된다. 식용유 때문이다.

◆식용유 시대 개막

우리나라 튀김닭의 원조인 '통닭'은 서양에서 유래한 치킨 조리법과 유사하나, 닭을 토막 내지 않고 통째로 튀긴다는 점과 튀김옷의 질감 등에서 차이가 난다. 사용하는 기름도 물론 다르다. 19세기 조선후기 학자 이규경이 쓴 백과사전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참기름으로 통닭 튀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듯 주로 식물성 기름을 사용했다. 우리 선조들은 밀가루, 간장, 참기름, 식초 등이 가미된 튀김옷을 입혀 기름에 지진 닭을 '포계'(炮鷄)라 했다. 인천에서 발생 된 닭강정에 가깝다.

일명 '구운 통닭'으로 불린 전기구이는 기름기가 빠져 껍질이 고소하고 살이 쫄깃해 한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전기통닭 시대도 저물고 있었다. 새로운 식품이 1971년에 등장한 탓이다. 바로 동방유랑에서 생산한 '해표 식용유'였다. 이로 인해 '튀김 전성시대'가 열린다. 해표는 미국 콩으로 만드는 기름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을 공략하기 위해 마케팅을 활발하게 벌였다. 학생 가사실습에 무상으로 식용유를 제공하고, 주부들에게도 무료 견본을 나눠줬다고 한다. 이렇게 생겨난 식용유 시대는 튀김을 가능하게 했고 프라이드치킨에 익숙하게 된 계기가 된다. 프라이드치킨은 초기에는 동물성 쇼트닝을 사용하다가 급격히 유행을 타던 시점에는 '안전한 먹거리 캐치프레이즈' 영향으로 식용유로 바뀐다.

프라이드치킨의 원형으로 불리는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서 태어난 미국식 프라이드치킨, 일명 가루반죽을 사용하는
프라이드치킨의 원형으로 불리는 미국 남부 목화농장에서 태어난 미국식 프라이드치킨, 일명 가루반죽을 사용하는 '크리스피치킨'.

◆딥프라이드치킨 등장

금상첨화로 70년대 말 미국산 압력튀김기가 출시된다. 프라이드치킨을 프랜차이즈로 사업화 한 브랜드는 1977년 서울에서 등장한 '림스치킨'이다. 서울 신세계백화점 지하에 입점하지만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우리의 튀긴 닭과 맛이 달랐다. 요즘의 크리스피치킨 스타일이라 그 맛에 길들여지지 않은 대중한테 크게 어필될 수가 없었다. 그 치킨은 엄격하게 말해 이건 '미국식 프라이드치킨'이지 한국형은 아니었다. 한국 프라이드는 물반죽을 사용한 '엠보 스타일', 미국 프라이드는 가루반죽을 사용한 '크리스피 스타일'이라 맛이 텁텁해 히트 치기 어려웠다.

흥미롭게도 우린 닭 앞가슴살을 가장 싫어하지만 미국에서는 앞가슴살만 챙긴다. 19세기 미국 남부에서는 백인 농장주들이 닭을 먹을 때 목이나 날개 등 뼈가 많은 부위를 잘라내고 몸통만 오븐에 구워낸 '로스트 치킨'(roast chicken)을 많이 먹었다. 노예들은 농장주가 버린 닭의 부위를 모아 목화씨로 짜낸 면실유에 넣어 튀긴 다음 이를 조각내 뼈째 씹어 먹었다. 백인이 먹은 닭살은 '화이트 미트'(White meat), 흑인이 먹은 건 '블랙 미트'(Black meat)라 했다. 흑인들의 허접한 튀김닭, 그걸 식품사학자들은 '딥 프라이드 치킨(deep fried chicken)'이라 했다. 사실상 우리가 먹는 프라이드치킨의 효시다.

세계적 프랜차이즈 회사인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1호점이 서울 종로에 문을 연 것은 1984년. 미국인 '커널 샌더스'가 닭고기를 기름에 튀기는 조리법을 개발한 뒤 미국 내 1호점을 차린 것이 1930년,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1979년 롯데리아에서 조각 치킨을 선보인다. 연이어 1980년대 초부터 중소규모의 프라이드 치킨집들이 생겨난다. 하지만 이 무렵 대구에서 태동한 두 브랜드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한국형 프라이드치킨의 새역사를 쓴 대구의 대표주자는 바로 '맥시칸'과 '교촌'이었다.

양념프라이드는 맥시칸, 간장프라이드는 대구통닭의 기술력을 벤치마킹한 교촌치킨이 효시격이다. 모두 대구를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대구는
양념프라이드는 맥시칸, 간장프라이드는 대구통닭의 기술력을 벤치마킹한 교촌치킨이 효시격이다. 모두 대구를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대구는 '한국 치킨도시 1번지'로 불릴 수 있게 됐다.

◆맥시칸과 교촌치킨

한국의 프라이드치킨 프랜차이즈의 뿌리는 단연 대구였다. 간장프라이드치킨과 양념프라이드치킨으로 대별되는 데 이 두 기술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모두 대구에서 탄생된다.

1978년 '대구통닭'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간장프라이드치킨'을 개발한다. 프라이드치킨에 간장소스를 발라 만든다. 간장소스는 진간장(왜간장)을 주재료로 하여 검은색을 띠며 거기에 설탕, 마늘 등을 첨가하여 만든다. 간장을 사용하여 짠맛이 강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설탕, 딸기잼 등을 섞어 짠맛이 가려지고 달짝지근한 편. 그 기술을 새로운 방식으로 벤치마킹한 건 1991년 구미에서 차린 교촌치킨이다. 대구통닭은 2005년까지는 대구에서 유명한 통닭집으로 알려져 있다가 그 후 프랜차이즈화 된다.

1978년 효목동 '계성통닭'으로 시작 85년부터 본격화된 '맥시칸'. 한국 양념프라이드치킨의 대명사이다. 그 산파역은 '대구의 치킨할아버지'로 불렸던 윤종계(작고). 그의 집안은 '치킨패밀리'다. 5형제(종원, 종정, 종규, 종계, 종보)가 모두 닭 관련 사업에 종사한다. 선친은 서문시장 닭전거리에서 20여년 사업을 했다. 그는 85년 효목동에서 계성통닭, 이듬해 맥시칸을 출시한다. 동시에 시류를 몰기 위해 국내 최초로 닭고기 TV광고를 선택한다. 맥시칸은 간장을 사용한 대구통닭과 달리 물엿, 고춧가루 등을 사용한 최초의 붉은 양념소스와 염지법을 도입해 신드롬을 일으킨다. 그리고 단촛물에 담아낸 치킨무도 개발한다. 그 맛은 '신천지의 맛'이었다. 너도나도 체인점을 요구했다. 그는 로열티도 받지 않고 심지어 레시피까지 공유해버렸다. 그 결과 1천700여 개의 체인점을 낸다.

양념프라이드는 어떻게 탄생한 걸까? 처음에는 맛이 퍽퍽할까 봐 김치를 생각하는 등 여러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동네 할머니가 물엿을 넣어보라고 해서 넣어봤는데 '이거구나' 싶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양념치킨이다. 식어도 먹을 수 있게 개발됐다.

맥시칸과 한국 유통닭의 대명사인 (주)하림은 공생관계였다. 맥시칸이 하림의 닭 30% 이상을 구매해주었다. 하지만 맥시칸은 롱런 못하고 2003년쯤 문을 닫고 만다. 맥시코의 브랜드는 하림이 가져갔다. 하림의 김홍국 회장이 옛정을 생각해 윤종계에게 '윤치킨'으로 재기할 수 있는 종잣돈을 건네기도 했다. 현재 그의 동생이 대보 C&F를 차렸고 그 공장에서 염지된 닭은 현재 지역에 6개 체인점을 가진 '통큐치킨'에 납품되고 있다.

전성기 시절, 맥시칸의 영향을 받은 업체만 해도 70여 개가 넘었다. 맥시칸이 키운 초창기 대구 프라이드치킨 6대 강자는 페리카나, 멕시카나(89년), 처갓집(88년), 이서방(89년), 스머프(89년) 등이다.

2010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가성비 짱인
2010년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가성비 짱인 '옛날통닭'.

◆별별 프라이드

이후 별별 프라이드치킨이 다 등장한다. 호식이는 한 마리 가격으로 두 마리를 먹을 수 있는 마케팅을 전개했고 땅땅치킨은 '뼈없는 바비큐치킨' 시대를 열고 재차 치킨 다변화를 위한 문화복화공간인 '땅땅랜드'를 오픈한다. 이어 별별치킨은 핫소스, 치킨에너지주식회사는 부위별 메뉴를 개발했다. 닭가슴은 샐러드, 날개는 간장, 허벅지는 오븐구이, 닭발은 불닭발 식으로 부위별 특화요리법을 궁리한 것이다.

프라이드치킨은 10년 전부터 선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가성비 짱인 '옛날통닭'의 도전장을 받게 된다. 만수통닭, 앞산옛날통닭, 빅대디 등 20여개 브랜드가 경쟁하고 있다.

wind30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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