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재현장-김지효] '돈 벌 수 있다'는 꾐, 도착지는 범죄 소굴 감금

김지효 사회부 기자
김지효 사회부 기자

대구에 사는 A씨는 지난달 모르는 번호로 아들이 사채업자에게 차용증을 써 줬다는 문자를 받았다. 이것만으로도 오장육부가 뒤집힐 만한 일인데, 며칠 뒤 A씨는 아들과 연락이 끊겼다.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한 뒤 아들의 행방을 추적해 본 결과 아들은 휴대전화를 한국에 두고 캄보디아로 출국한 상태였다.

문제는 캄보디아가 최근 국제적으로 이뤄지는 조직범죄의 온상으로 급부상한 국가라는 점이다. 보이스피싱을 비롯한 온라인 사기, 인신매매와 마약 거래까지 이뤄지는 이곳은 수만 평의 범죄 단지를 갖추고 외국인 취업 사기 등으로 끊임없이 인력을 수급하고 있다.

A씨는 자신의 아들이 사실상 이러한 캄보디아 범죄 조직에 '인신매매'된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아들이 지적장애를 가졌다는 점이 범죄에 이용된 것 같다고 했다. A씨는 아들이 '휴대전화와 통장을 맡긴 뒤 캄보디아에서 잠시 놀다 오면 돈을 주겠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한국을 떠났다가 범죄 조직의 건물에 감금됐다고 말했다며, 감금 이후 온라인 사기 범죄 일을 하도록 강요받았다고 했다. 조직이 아들에게 연애 감정을 악용한 신종 금융 사기 '로맨스 스캠' 일을 하도록 강요한 뒤 해당 일을 거부하자 그를 다른 조직으로 넘겼다는 것이다.

A씨 아들은 옮겨 간 곳에서 가족들이 자신의 '몸값'을 치르기 전까지 마찬가지로 온라인 사기 범죄를 강요받으며 폭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범죄 조직과 텔레그램 등 추적이 어려운 연락책을 거쳐 아들의 몸값을 합의했다고 털어놨다.

범죄 조직이 요구하는 금액 지불도 거래 기록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로 이뤄졌다. 이후 A씨는 다행스럽게도 한 달 만에 공항에서 아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지만, 그의 아들은 온몸이 멍투성이에 두피가 찢긴 채였다.

국민의힘 김건 의원실이 외교부에 요청한 자료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납치 및 감금된 한국인 수는 2023년 21명에서 지난해 221명으로 10배 이상 급증했다. 같은 기간 영사 콜센터에 접수된 관련 신고도 40건에서 586건으로 14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A씨가 겪은 일이 국내에서 드물지 않게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성인이 자발적으로 출국했을 경우 경찰 수사에 한계가 크고, 가족이 실종 신고와 캄보디아 대사관 협조 요청 외에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다는 점도 문제였다. 당사자가 직접 대사관 등에 구조 요청을 보내는 방법이 가장 확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의 이러한 온라인 사기 산업은 정부 단속에도 불구하고 GDP의 절반 수준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성장한 상태로, 정권 수뇌부의 유착 관계와 경찰 인력 부족 등으로 범죄를 뿌리 뽑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캄보디아 온라인 사기 범죄 조직 규모는 지난 6월 27일부터 약 한 달간 캄보디아 당국이 체포한 용의자가 3천 명이 넘을 정도로 크며, 그중 한국인도 57명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캄보디아 범죄 조직 문제는 우리 국민의 안위와 연관된 국제적 현안이 됐다. 일차적으로는 범죄 조직의 '쉽게 돈 벌 수 있다'는 달콤한 취업 제안에 엮여 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나, 더는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사회적 보호망을 구축하는 것도 절실하다. 보너스를 노리고 인력을 범죄 조직에 조달하는 이들이 늘고 있으며 이에 따른 피해도 증가하는 만큼, 신속한 수사로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야 한다. 또한 피해를 입고 귀국한 이들에게는 적절한 보호와 지원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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