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김교영] 밥값, 그리고 밥벌이

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정호승의 시 '밥값' 중에서) 밥값을 하기 위해선 '지옥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밥벌이 현장이 '지옥'과 같다는 말인데, 일터에서 죽는 현실을 놓고 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밥값은 밥을 먹는 데 드는 비용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밥을 먹으려면 밥값을 해야 한다. 이 세상엔 무임승차(無賃乘車), 불로소득(不勞所得)으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업에 충실하지(밥값을 하지) 않고 밥만 축내는 군상도 많다. 국익·민생보다 사리사욕을 앞세우는 정치인, 생명·인권보다 돈벌이에만 급급하는 그런 작자들 말이다.

생계를 이어 가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삶의 무게는 천근만근이다. 일(직업)은 자아실현, 생계유지, 사회생활·봉사의 수단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각박(刻薄)한 세상에선 자아실현·사회봉사는 공허(空虛)하게 들린다. 자아를 실현하고 사회에 봉사하라고 자식을 의과대와 로스쿨에 보내려는 부모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러나 생계용 밥벌이라고 거저먹는 게 아니다. 몸과 영혼까지 탈탈 털어 넣으라고 하지 않는가. 생계형 밥벌이도 숭고하다.

장석주 시인은 '밥'이란 시에서 "밥 한 그릇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목숨/ 나는 굽히고 싶지 않은 머리를 조아리고/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이고/ 가고 싶지 않은 곳에 발을 들여놓고/ 잡고 싶지 않은 손을 잡고/ 정작 해야 할 말을 숨겼으며"라고 했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굴욕(屈辱)을 참고, 직장 상사의 갑질을 견디며, 기고만장(氣高萬丈)한 진상 손님에게 머리를 숙이며, 버티고 살아온 날들이다. 어른이면 그렇게 밥값을 해야 한다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왔다.

일(노동)은 인간의 의무이면서 권리(權利)이다. 그런데 그 일(일자리)을 구하기 어렵다. 통계청의 5월 경제활동인구 조사 결과를 보면, 청년층(15~29세)의 경제활동 참가율(49.5%)은 4년 만에 50% 밑으로 떨어졌다. 청년층의 고용률도 46.2%로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학 졸업 후 첫 일자리에 취업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1.3개월이란다. 밥값을 하고 싶어도 밥값 할 기회가 없다. 난감하고, 고약하고, 딱하다.

kim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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