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김혜령] 다음 세대가 맞이할 음표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김혜령 바이올리니스트

민생회복지원금을 받았다. 그러나 쓸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 미용실, 음식점에서 결제하면서도 "이 돈은 결국 우리 아이 세대가 갚아야 할 빚이다"라는 생각이 앞선다. 정부는 국민 모두에게 혜택을 돌린다며 생색을 냈지만, 실상은 미래 세대에게 채무를 떠넘긴 셈이다.

음악가로 살아온 나는 사회를 종종 오케스트라에 비유한다. 오케스트라는 모든 악기가 동시에 요란하게 울려야만 좋은 음악이 되지 않는다. 각 파트가 제자리를 지키며, 꼭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선율을 낼 때 조화가 완성된다. 그러나 이번 지원금은 마치 모든 악기가 일제히 포르테(fff·아주 강하게)로 소리를 낸 듯했다. 순간은 화려했지만 곡 전체의 균형은 무너졌다.

정치권은 '보편 지급'이 행정 효율적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무책임한 선택일 뿐이다. 돈을 풀면 당장은 소비가 늘어나는 듯 보이지만, 음악에서 큰 북을 마구 두드린다고 해서 곡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귀를 어지럽히고 전체 구조를 깨뜨릴 뿐이다. 이런 방식은 정치적 인기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국가 재정의 긴 호흡에는 해롭다. 눈앞의 박수를 위해 전체 공연을 망치는 선택과 무엇이 다른가.

지원금은 한 박자를 늘려주는 페르마타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 박자를 이어서 연주해야 할 사람은 우리 아이들이다. 세금으로 다시 메워야 할 부담은 고스란히 미래 세대의 몫이다. 부모로서, 이 돈을 쓸 때마다 죄책감이 앞선다. 지원이란 이름으로 빚을 안겨주는 것이 과연 진정한 민생 회복인가.

나는 차라리 이 돈이 꼭 필요한 소수의 악기들에게 집중됐으면 한다. 사회에는 여전히 제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많다. 장애인, 경계성 장애인, 미혼모 가정, 조손가정, 기초생활 사각지대에 놓인 노인, 보호종료아동, 홈리스와 쪽방촌 주민, 농어촌 주민들…. 이들의 삶은 여전히 버겁고, 작은 도움에도 생존의 무게가 달라진다. 악보를 받아야 할 사람들은 분명히 있다. 그들에게 선율을 맡기고, 나머지는 그 곡을 지탱하는 화음이 돼주는 편이 더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생 회복이고, 다음 세대에 빚을 남기지 않는 책임 있는 길이다. 음악이란 결국 조화와 균형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지원금은 소비 현장에서 잠깐의 박수 소리를 냈다. 그러나 음악의 가치는 박수가 멎은 뒤에도 오래 남는 여운에 있다.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면, 지금의 박수보다 더 깊고 지속 가능한 울림을 남기는 선택이 필요하다. 그것이 음악가로서, 또 부모로서 이 제도를 바라보며 느낀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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