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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이호준] 한국의 국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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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논설위원
이호준 논설위원

#캐나다에서 야간 버스를 타고 미국으로 넘어갈 때다. 국경(國境)에서 총을 멘 미 국경수비대원들이 버스에 올랐다. 좌우 좌석을 둘러보며 뒤쪽으로 이동하다 내 앞에서 멈추더니 여권을 요구했다. 비자 등 모든 게 정상적이라 별 걱정 없이 여권을 건넸다. 형식적 절차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대원은 갑자기 버스에서 내리라고 했다. 순간 당황하며 이유를 물었으나 돌아온 건 고압적·위협적인 표정·태도뿐, 배낭까지 꺼내 멘 채 수비대 사무실로 가야 했다. 만원 버스에서 내린 건 나와 인도인 단 두 명. 온갖 서류를 꺼내 설명하고 사정하며 쩔쩔매던 인도인의 모습에 내가 다 화날 정도였다. 다시 버스에 타면서 알았다. 승객 중 유색 인종은 우리 둘뿐이라는 걸.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엔 한국어 리플릿이 없었다. 안내 데스크에 가서 "영어, 일어 등은 있는데 한국어는 없냐"고 물었다. 직원은 '당연한 걸 왜 묻냐'는 표정으로 "없다"고 했고, "왜 없냐"는 되물음에 어이없고 황당하다는 듯 "왜 있어야 하냐"고 되받아쳤다. 상한 속을 뒤로하고 "한국어도 만들어 달라"고 한 뒤 돌아섰다. 없는 줄 알면서도 일부러 물은 건 한국인이 방문할 때마다 묻다 보면 언젠간 비치(備置)해 놓지 않을까 해서였다.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배터리 공장 단속 및 구금(拘禁) 사태를 보면서 떠오른 1990년대 배낭여행 당시 일화다. 그때의 한국은 그랬다. '어디서 왔냐'는 질문에 '코리아'라고 하면 '노스 코리아'인지 묻던 시절이었고, 친근함을 표시하려고 '현다이'를 아는 척할 때였다. 당시 북미에서 '한국' 하면 그나마 많이 알려진 게 '현다이'여서다. '현다이', 즉 현대자동차가 저가로 북미에 공세를 가할 때였다.

30년 새 한국의 국격(國格)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급상승했다. 경제·문화·군사 등 다방면에서 단군 이래 최고라 할 정도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불의의 일격을 당했다. 쇠사슬에 묶여 체포되는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한국 눈치는 보는 분위기다. 이를 계기로 비자 체계 개편·탄력 운용도 거론된다. 새 제도가 마련된다면 그나마 반분은 풀릴 듯하다. 그래도 부족하다면? 미국 갈 대체 인력이 없어 공장 설립이 계속 지연된다면… '운짐'이 달까?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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