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단독] "여자·LGBT 안다루면 감점" 영진위 정부사업 논란 ②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지난 6월27일
지난 6월27일 '2025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시상식에서 발언하고 있는 한상준 영화진흥위원장.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가 '여성 가산점' 대신 도입한 '다양성 가산점' 제도가 여성이나 성소수자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 만점을 받을 수 없는 사실상의 '감점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 드러났다.

5일 매일신문 취재에 따르면 영진위는 성평등 정책이 적용되고 있는 8개 정부 지원 사업 가운데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여성 가산점을 대신해 다양성 가산점 항목을 신설했다. 다양성 가산점이란 여성을 비롯 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트랜스젠더·퀴어+(LGBTQ+), 지역, 연령, 계급, 장애 등 과소대표된 집단의 이야기가 작품에 반영되면 추가 점수를 주는 것을 말한다.

다양성 가산점은 직전까지 유지되던 여성 가산점과는 크게 다른 점이 있다. 이른바 감점 방식으로 운영된다는 것이다.

영진위는 2023년까지 명확성과 참신성, 완결성, 발전가능성 등 평가 항목당 각각 25점을 주고 총점 100점을 매긴 뒤 여성이 주요 배역을 맡을 경우 2점, 작가가 여성이면 3점 등 여성 가산점을 추가로 줬다. 산술적으로 105점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도입된 다양성 가산점 제도는 본선 평가 시 독창성·참신성에 35점을 주고 완성도와 영화화 가능성에 각각 30점을 준 뒤 다양성에 단독으로 5점을 준다. 쉽게 말해 여성을 비롯 LGBTQ+ 등 과소대표된 집단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 아무리 잘해도 95점밖에 못 얻는다는 소리다.

영진위는 2021년 문재인 정부 시절 도입된 여성 가산점 제도를 지난해부터 다양성 가산점으로 바꾼 바 있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영진위는 문체부로부터 역차별 방지를 위한 여성 가산점 폐지 취지 권고를 받았는데 권고를 받아들이기는커녕 되레 확대 노선을 걸었고 더 나아가 감점 방식의 강압적인 채점 방식을 도입했다.

영진위의 시나리오 공모전 공고에 따르면 본선의 구체적인 평가는 전체 배점 100점 중
영진위의 시나리오 공모전 공고에 따르면 본선의 구체적인 평가는 전체 배점 100점 중 '다양성'은 단독 항목으로 5점이 배정된다. 영진위

"여성과 LGBTQ+ 등 과소대표 집단 이야기를 다루지 않으면 사실상 감점을 받는 구조로 정부 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영진위 관계자는 "기존 제도를 일부 수정하는 건 정책 시행의 목적에 맞지 않다는 의견을 수렴해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에 한해 성평등가산점을 폐지하고 다양성으로 확대했다"고만 했다.

문제는 더 있다. 이 다양성 가산점 제도가 명확한 기준 없이 심사위원의 해석에 따라 좌우되며 심사위원 간에도 적용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점이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이 영진위로부터 제출 받은 2024~2025년 한국영화 시나리오 공모전 본선 심사 회의록을 보면 다양성 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회의록에는 "소외되고 억압 받은 여자들이 힘을 합친다는 주제로 좋은 면이 있다" "여성 주인공만 등장한다고 여성서사인가라는 고민이 있었다" "남성 서사인데 주인공의 성별만 여자로 바꾼 느낌이라 다양성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는 등의 발언이 담겼다. 회의록에 따르면 어떤 작품이 다양성 점수를 받을 수 있을지 논의하는 기준은 여성 서사 여부였다. 무늬는 다양성 가산점인데 사실상 여성 가산점 유지와 다를 바 없었다.

심사방식에 대해 영진위 관계자는 "성평등 가치를 유지하면서 다양성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차원에서 다양성을 별도 심사항목으로 신설해 심사위원이 직접 평가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김승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공모전 수상을 위해 작품 의도와 무관하게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LGBTQ+ 코드가 들어가야 한다는 소리"라며 "영진위가 추진하고 있는 다양성 가산점 제도는 대한민국 문화⋅예술을 망치는 것"이라고 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