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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백건우 "진심담은 음악에는 위로의 힘 있어…이재민 만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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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반 위의 구도자' 백건우, 11일 의성에서 산불 피해민 위한 무료 연주회 열어
"불에 탄 흔적들은 그 자리에 보존하길…역사와 문화유산 중요성 상기"
"70년을 연주해도 잘하지 못할까봐 늘 겁난다…일생 한분야는 모두 구도자"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1일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진심을 다한 음악에는 위로와 치유의 힘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오, 이거 작품이네요!"

조용히 속삭이듯 대화하던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눈이 번뜩 뜨였다. 그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고운사 등운 주지스님이 직접 찍은 등운산 정상 부근 사진을 보고 난 반응이었다.

사진 안에는 시꺼멓게 탄 숲 속 나무 아래, 고사리가 무성하게 올라온 풍경이 선명했다.

"고사리가 이렇게 많이 났나요? 야, 좋다. 나무는 꺼멓고, 아래는 초록빛이네요. 이거 작품인데요. 이 사진 저에게도 보내주세요."

폐허 속에서도 되살아나는 생명의 경이로움. 상처를 치유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회복 탄력성' 그리고 희망.

지난 11일 경북 산불 발생 200일을 맞아 의성군 고운사에서 '기억과 위로의 콘서트'를 연 그가 가장 보고 싶었던 모습인 듯했다.

그는 "산불 피해 이재민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던 것이 이번 방문의 목적"이라고 했다. 그가 출연료도 고사하고 선뜻 위로 연주회에 나선 이유다.

"딸이 산불이 번지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 아프다고 하더군요. 당장은 버틸 수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던 이재민들의 표정에 저도 마음이 먹먹했어요. 그 분들을 꼭 다시 만나고 싶었습니다."

이날 오후 연주회를 앞두고 그는 오전 일찍 이재민 임시주거시설을 찾았다. 또한 단촌면 주민자치회와 만나 여러 사정들을 전해 듣기도 했다.

그는 "바쁜 녹음 일정에 고려할 점이 많은 야외 무대를 준비하느라 이재민들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지 길게 이야기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건반 위의 구도자'로 불리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11일 취재진과 인터뷰에서 "진심을 다한 음악에는 위로와 치유의 힘이 있다"고 말했다. 김영진 기자 kyjmaeil@imaeil.com

그럼에도 백건우는 음악을 통해 위로와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자 했다. "진심을 담은 소리는 위로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게 이유다.

백건우는 "모차르트 작품은 듣기는 쉬워도, 치기는 가장 어렵다"고 했다. "오랫동안 음악을 했지만 모차르트 같은 천재 음악가는 없는 것 같아요. 그가 신성한 음악을 우리에게 전달했듯이 나도 그걸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화재 피해를 입은 범종과 숯덩이가 된 종각 기둥 등 흔적들은 치우지 말고, 그 자리에 보존해서 역사와 문화 유산의 중요성을 알리는 사례로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1946년생인 그에게 음악은 끝이 없는 작업이다. 여든을 앞둔 나이, 그는 "이제야 겁이 좀 없어졌다"고 했다.

백건우는 지난해 5월 음악 인생에서 처음으로 모차르트 앨범을 낸 데 이어 같은 해 11월과 올해 2월 두번째와 세번째 앨범을 발매했다.

"평생 연주를 했지만 작업이 끝이 없고, 곡의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할까 봐 늘 겁이 나요. 이젠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마음 놓고 다뤄보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건반 위의 구도자'로 누구나 인정하는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항상 연구를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하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늘 성실하게 계속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기억되고 싶어요. 건반 위의 구도자라고 부르던데, 한 분야에 일생을 보낸 이들은 모두 구도자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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