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시대라고 하지만 여전히 지역별 역사·문화적 차이가 남아있다. 오랜 기간 보수·진보 이념적 대립 구도가 강했던 영·호남 지역은 더욱 그렇다. 이에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한 교육·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지역민들은 영·호남 교류 행사를 진행하며 지역 화합과 연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교 차원에서도 자체적으로 영·호남 교류를 이어가며 화합의 시대를 열어가는 곳들이 있다. 바로 경북고등학교와 전주고등학교다. 100년의 전통을 가진 두 학교는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운동에 주력하고 수많은 정·재계 인재를 배출했다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동문들이 20여 년간 교류를 이어온 데 이어 지난해부터는 재학생으로 범위를 넓혀 지역의 차이를 넘어 공감과 소통을 나누고 있다.
◆야구 명문 두 팀 매년 정기전 펼쳐
"보여주자, 경북고 파이팅", "질 수 없다, 전주고 가보자"
지난 24일 오후 3시 대구 수성구 황금동에 위치한 경북고 야구장에는 학생, 동문들의 응원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경북고와 전주고는 올해부터 영호남 우호 증진 및 친선 교류의 일환으로 고교 야구 정기전을 펼치기로 했다. 두 학교 야구부는 모두 창단 100주년을 맞은 전통과 역사가 깊은 '고교 야구 명문 팀'이다. 고교 야구 메이저 대회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거뒀고, 이승엽 전 두산 감독(경북고)을 비롯해 kt 김상수(경북고), 삼성 원태인(경북고), KIA 최형우(전주고), 한화 정우주(전주고) 등 수많은 프로야구 스타를 배출했다.
경기 초반은 팽팽한 투수전 양상이었다. 양 팀 선발의 안정된 제구와 수비 집중력을 바탕으로 3회까지 0의 행진을 이어갔다.
기선을 먼저 제압한 건 전주고였다. 4회 초 안타, 볼넷으로 만든 2사 1, 2루 상황에서 전주고 3번 함준규가 적시 1루타로 1점을 선취했다. 이어 52번 박민서와 31번 이찬우가 1루타로 각각 1점씩 추가하며 3점으로 점수 차를 벌렸다.
5회 말 1사 2루에서 경북고가 안타 2개(53번 석지호, 15번 최우준)와 희생플라이(25번 이재빈)로 3점을 뽑아내며 맹추격했지만, 7회 초 전주고가 다시 안타(50번 홍재욱)로 2점을 추가하며 경기는 5대3으로 마무리됐다.
경북고 주장 2학년 최우준 학생은 "그동안 이름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로 얼굴도 익숙해지고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며 "서로의 경험을 나누면 앞으로 성장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전주고 주장 2학년 박민서 학생도 "본 경기 외에 친선경기를 해본 게 처음이라 어색하긴 했지만 계속 좋은 관계를 유지했으면 좋겠다"며 "서로 이기고 지는 경험을 통해 느끼는 바도 많을 것"이라고 했다.
학생 선수들의 단순한 친선 교류를 넘어 경기적인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는 반응이다.
이준호 경북고 감독은 "학생들이 수업 등 여러 이유로 연습경기 할 기회가 많지 않고 하더라도 대구경북 팀이 주를 이룬다"며 "전라도 팀과 경기해 보니 색다르고 전력 확인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최대곤 전주고 감독 역시 "경북고가 야구 강팀이기 때문에 강팀과 시합하다 보면 학생들이 그 안에서 자신감을 찾을 수 있고 기량적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학생 간부 교류 리더십·소통 능력 향상
두 학교의 인연은 25년 전인 2000년 4월 양교 친선 교류 목적으로 시작된 '졸업생 바둑 교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고와 전주고 초대 교류전은 졸업생이 주축이 된 임원 13명, 선수단 24명 규모로 대구와 전주를 상호 방문하며 펼쳐졌다.
이듬해 2001년 교류전에는 골프가 추가되며 전체 임원 26명, 선수단 48명으로 확대됐다. 이때부터 양교는 개최 주기를 연 1회, 1박 2일 일정, 개최지 상호순환 방식을 채택하고 행사 비용은 개최지 고교 동창회에서 부담하며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2024년부터는 류시태 전 경북고 교장, 신정균 전 전주고 교장의 제안으로 졸업 동문들의 자매결연 전통을 재학생부터 이어가는 '학생회 간부 교류 행사'도 시작됐다. 학생들이 양 고교를 찾아 교류하며 서로의 전통·역사를 이해하고 리더십·소통 능력 등을 함양하기 위한 취지다.
첫해인 지난해에는 경북고 1·2학년 학생회 임원 및 대의원(반장·부반장) 중 참가 희망자들이 7월 22~23일 1박 2일간 전주고를 방문했다. 전북대학교, 전주한옥마을, 전주동물원, 마이산탑사 등 지역의 주요 명소를 돌아보며 전주의 전통과 역사,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도 가졌다.
올해는 전주고 학생회 간부 중 희망자들이 지난 10월 17~18일 경북고를 찾았다. 학교 역사관을 방문하고 경북고의 교육 활동, 학생들의 학교생활 등 다양한 교육 정보들을 주고받았다. 이어 2·28민주기념회관을 방문해 전시관 관람, 영상 시청을 하고 2·28민주운동의 주역인 정시식(당시 경북고 2학년 재학) 원로를 만나 시대의 어둠과 맞서 싸운 생생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주고 2학년 학생회장 이성민 학생은 "독재 권력 앞에서 정의를 외치던 2·28민주운동을 보며 큰 울림을 받았다"며 "진정한 성장은 홀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라 역사의 무게를 함께 나누고 그 정신을 계승하며,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과 교감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느꼈다"고 소감을 전했다.
경북고 3학년 학생회장 최종원 학생은 "지난해 첫 교류의 시작으로 전주고에 방문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며 "앞선 선배들이 그랬듯이 우리도 한 세기를 함께 밝히는 등불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두 학교는 내년부터 수련 활동 시설을 빌려 학교 간부 학생들이 1박 2일간 동고동락하며 학교 관련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하며 더 나은 학교를 위해 고민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다.
구교석 경북고 교장은 "두 학교의 재학생 교류는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전통과 정신이 만나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하나의 역사적 장면이라 할 수 있다"며 "학생들이 서로의 가치를 배우며 더 큰 세상을 향한 꿈과 비전을 키워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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