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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식의 '꿈과 품'] 인내의 하모니 – 다시 노래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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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식 제이에스 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제이에스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김준식 제이에스소아청소년과 원장, 계명의대 명예교수

가을은 유난히 분주하다. 여러 학회와 세미나에 참석하며 AI 기술이 의료 현장으로 빠르게 스며드는 변화를 느끼고, 도시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공연들 속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피로가 함께 묻어난다. 아침저녁의 일교차로 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진료실 역시 분주하게 돌아간다.

그 틈에서도 발달이 늦은 아이를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한결같다. "우리 아이도 언젠가는 다른 아이들처럼 또래와 어울리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까요?" 그 질문 속에는 절박함과 희망이 함께 녹아 있다.

30여 년 전, 존경하던 전남의대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완벽한 구성과 매끄러운 전달력으로 모두를 사로잡던 그분에게 비결을 묻자,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울렁증이 심해서 사람들 앞에 서면 얼굴이 빨개지고 말문이 막혔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더 연습했죠."

그는 1시간의 강의를 위해 8시간을 준비하며, 약점을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탁월함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 말은 오랜 시간 내 마음속에 남았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부모님에게도 자주 전한다. "몸이 약한 사람은 오히려 자신의 건강을 더 잘 챙기기에 더 오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약점을 아는 것이 곧 강점의 출발임을 그때 배웠다.

얼마 전, 5년 넘게 아내와 함께 활동해 온 '수성행복싱어즈' 합창단의 발표회가 수성아트피아에서 열렸다. 단원들 간의 오해와 갈등으로 한때 단체가 두 번이나 무너질 위기를 맞았지만, 남은 이들이 손을 맞잡았다. 대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단원을 무대 위에 마음으로나마 함께 세웠고, 드럼을 맡았던 동료의 빈자리는 모두의 노래로 채웠다.

작은 무대였지만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울림이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어머니를 위한 자장가」는 객석을 울렸고, 「바람의 노래」와 「우리」는 단원들의 눈빛 속에서 다시 태어났다.무대 위에서 느낀 감동은 단순한 공연의 성취감이 아니었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여러 도시에서 오페라와 교향곡을 들으며 음악의 깊이를 배웠지만, 이번 무대의 감정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것은 관객으로서가 아니라 '함께 부르는 사람'으로서의 감동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TV로 본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보다, 실제로 우주선을 쏘아 올린 NASA 직원들이 서로 껴안으며 환호하던 그 순간에 더 가까운 감정이었다.

필자는 진료실에서도, 그리고 합창단원으로서도 같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인간의 인내력은 세 가지 힘에서 비롯된다. 역경을 이겨내는 지혜인 역경지수(AQ:Adversity Quotient), 다시 일어서는 회복탄력성(Resilience), 그리고 끝까지 나아가게 하는 끈기와 열정(Grit)이다.

아이의 성장 과정은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과 닮아 있다. 역경지수는 그 뿌리를 단단히 잡아주고, 회복탄력성은 폭풍이 지나간 뒤에도 다시 싹을 틔우게 하며, 끈기와 열정은 햇살을 향해 곧게 뻗어나가게 한다. 이 세 가지는 어린 시절만의 덕목이 아니다. 성인이 되어 삶의 무게를 마주할 때에도, 이 힘들은 여전히 우리를 일으켜 세우는 보이지 않는 근육이다.

이번 합창단의 경험은 그 사실을 다시 깨닫게 했다. 소통의 벽을 넘고, 서로의 오해를 용서하며, 다시 무대에 서기까지의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그만큼 값졌다. 노래는 단지 음표의 나열이 아니라 마음의 진동이었다. 개개인의 상처가 모여 하나의 화음이 되었을 때, 그것은 그 어떤 완벽한 음악보다도 더 진한 감동을 주었다.

아이든 어른이든, 개인이든 단체이든 마찬가지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작은 성공을 쌓아가며, 실패를 성장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자존감과 자기효능감은 함께 자라난다. 그 힘이 바로 공동체를 아름답게 하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든다. 합창단의 화음이 다시금 내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그 소리가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인내의 하모니"였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의 삶도 그런 하모니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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