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가 이른바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 구성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그중에 직격탄을 맞고 있는 군의 동요가 특히 심하다. 지난 9월 7명의 대장급 전원이 교체된 데 이어 13일 육·해·공군 중장 31명 중 20명이 교체되었다. 군 안팎에선 본격적인 '내란 청산 인사'는 이달 말로 예상되는 소장·준장 인사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합참은 약 40명의 장성과 24개월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급 장교들이 교체 대상에 포함되면서 군사 대비 태세와 전문성 발휘에 공백마저 우려된다.
이를 두고 군 내부에선 "사실상 정치적 단죄"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고위급 지휘관들은 "부하들 보살피기도 힘든데, 정권의 기류까지 살펴야 하는 현실"에 자조한다. 더구나 영관급 장교 등 군의 중추적 인력까지 예고 없이 교체되는 상황은 조직의 안정성과 전투력 유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준다. 내란의 잔재를 정리하려는 조치가 되레 군의 사기와 응집력을 약화시키고 있는 셈이다.
군 인사는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그것은 한 장교의 경력과 명예, 나아가 가족의 삶까지 걸린 문제다. 장교들은 한 계급, 한 보직을 얻기 위해 수십 년간 전방과 후방을 오가며 경력을 쌓는다. 혹한의 GOP 철책에서, 한여름 사격장에서 흘린 땀방울이 곧 그들의 이력서다.
그런데 이번처럼 예고 없는 보직 변경이나 배제 조치가 이어지면 그 기반이 하루아침에 무너진다. 군인은 제복의 가치와 명예를 생명보다 소중히 여긴다. "그 자리에 있었단 이유만으로 청산 대상이 되었다"는 인식이 퍼지면, 누가 국가에 충성하고 명령에 복종하겠는가.
군의 응집력은 '예측 가능한 인사'에서 비롯된다. 상명하복의 원칙이 지켜지고 지휘 체계의 정당성에 대한 신뢰가 유지될 때 조직은 효율적으로 움직인다. 그러나 이번 인사 과정에선 이런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인사 기준이 불투명해지면 전우애보다 '눈치 보기', 충성보다 '자기 보신'이 앞서는 분위기가 생긴다. 명령 체계는 남아 있어도 신뢰 체계는 무너진다.
역사는 이런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준다. 1930년대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소련군 장성의 80% 이상이 교체되면서 지휘 체계가 붕괴했고, 독소전쟁 초기 소련군은 수백만 명의 희생을 치렀다. 2016년 터키 쿠데타 이후 에르도안 정부가 1만 명이 넘는 장교를 해임한 결과, 정치적 통제는 강화됐지만 국경 방어선이 무너지고 내부 혼란이 발생했다.
반대로 스페인은 프랑코 독재 이후 군 개혁을 추진하며 정치군인의 영향력을 철저히 차단하는 동시에, 장병들의 명예 회복을 위한 '역사 화해법'을 병행했다. 청산과 화해가 병존하는 제도적 과정이었기에 군은 빠르게 문민통제 체제에 적응할 수 있었다.
미국 역시 1986년 제정된 '골드워터-니콜스 법(Goldwater–Nichols Act)'을 통해 합참의장 중심의 통합 인사체계를 확립하고, 대통령 지휘권 아래에서도 인사의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 주요 장교 인사는 의회의 청문 절차를 거치도록 법적 기준이 명문화되어 있다.
이번 '내란 청산 인사'는 과거를 정리하겠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불신과 균열을 남기고 있다. 내란 연루 여부가 명확히 입증됐다면 법과 절차를 통해 엄정히 처리하는 게 맞다. 그러나 단지 특정 시기, 특정 보직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 불이익을 주는 건 정의가 아니라 보복이다. 정치적 상징으로 변질된 청산은 군의 명예를 짓밟고 사기를 떨어뜨린다. 단기적으론 명분을 세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군 전체의 전투력과 국가 안보를 약화시킬 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인사 방식이 문민통제의 기본 방향을 왜곡한다는 점이다. 문민통제의 본질은 '정치가 군을 합법적으로 통제하되, 군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에 있다. 그러나 이번 인사처럼 정권의 판단이 군 내부 기준과 절차를 압도한다면, 그것은 통제가 아니라 침해다.
지금 필요한 건 '정치적 잣대'가 아닌 '제도적 정당성'이다. 인사 원칙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불이익을 받은 장교들에게는 재심과 명예 회복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객관적 기준에 근거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한다면, '내란 청산'은 국가 안보의 기초를 갉아먹는 정치 이벤트로 전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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