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어머니의 왼쪽 무릎 인공관절 수술을 내가 직접 집도했다. 주변에서는 "가족 수술을 어떻게 하느냐", "손이 떨리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반대로 생각했다. 세상에서 가장 잘 해드리고 싶은 분의 수술이라면, 가장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해드리는 것이 맞다고. 그것이 아들이기 이전에 의사로서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무릎이 좋지 않으셨다. 자식 키우시느라 고생을 많이 하셔서 연골판 파열이 생겼고 이를 치료받지 못하고 지내셔서 연골이 거의 닳아 없어진 상태였는데도 "나는 괜찮다", "인공관절 수술은 나중에 또 해야 된다더라"며 주사치료로 버티셨고 수술은 한사코 미루셨다. 정형외과 의사 아들이 곁에 있어도 정작 어머니를 설득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통증이 심한 날이면 진통제로 버티시면서도 수술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셨다. 그러던 와중 뇌경색이 와서 왼쪽 다리가 약간은 힘이 없으시고 약을 계속 드시게 됐다. 이런 저런 이유로 통증을 참고 수술을 미루시던 그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 자식 걱정할 까봐 제대로 말씀도 못하시고 일부러 괜찮다고 말씀하시는 그 마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함께 밀려왔다.
어머니의 걱정은 많은 환자분들이 가지고 계신 오해와 정확히 같았다. 인공관절은 수명이 짧아 금방 다시 수술해야 한다는 것, 수술 후에는 해도 아프고 잘 걷지 못한다는 것. 기존 질환 때문에 수술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오해. 아들이기 전에 의사로서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최신 인공관절의 수명은 20~30년에 달하며, 수술 며칠 후부터 걷기 시작하고 몇 개월 적응기간을 가지면 충분히 건강한 관절을 가지실 수 있다는 것을. 수술의 목적이 다름 아닌 통증 없이 걷게 해드리는 것이라고. 그 설명을 몇 번씩 반복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마침내 고개를 끄덕이셨다.
수술실에 들어오신 어머니는 의외로 담담하셨다. "네가 하는 거니까 괜찮다, 잘 부탁한다"고 하시던 나의 어머니. 그 짧은 한마디가 수술이 끝날 때까지 마음 한켠에 내내 남아 있었다. 수십 년간 수많은 환자분들의 무릎을 수술해왔지만, 그날만큼은 손이 평소보다 더 천천히, 더 신중하게 움직였다. 수술은 다행히 잘 마무리됐다. 수술 이튿날, 어머니는 보행기를 잡고 복도를 천천히 걸으셨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수술을 평생 업으로 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퇴원 후 몇 주가 지나자 "무릎이 이렇게 안 아팠던 게 언제였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수술 전 그토록 무서워하셨던 분이 이제는 지인들을 만나면 먼저 "인공관절 겁내지 말라"고 하신다.
진료실에서 수술을 앞두고 두 손을 꼭 쥔 채 걱정 가득한 눈으로 앉아 계시는 분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내색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토록 무서워하시던 분이 수술 후 처음으로 통증 없이 걸으시던 날 지으셨던 그 표정을. 의학적 설명보다 그 이야기 하나가 때로는 더 많은 것을 전해주는 것 같다. 자식의 손을 잡고 수술대에 오르셨던 어머니, 그리고 그 어머니를 다시 걷게 해드릴 수 있었던 것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 중 하나다. 내가 만나는 모든 분이 나의 어머니이고 아버지이다. 오늘도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수술장으로 향한다.
대구 올곧은병원 우동화 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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