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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충격은 안으로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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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강우 시인

심강우 시인
심강우 시인

"그냥 가볍게 만졌는데 부러졌습니다." 나이 지긋한 안경사는 내가 건넨 안경테와 부러진 다리를 요모조모 살피더니 떨어뜨린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야, 정확히 세지는 않았지만 몇 번 있었죠. 그렇게 운을 뗀 뒤 "그때마다 멀쩡했습니다. 별다른 변화나 이상이 없었어요." 항변하듯 말했다. "장부를 보면 아시겠지만 구입한 지 4개월밖에 되지 않았어요." 조바심의 발동으로 그렇게 부언했다.

덤덤히 내 말을 듣던 안경사가 안경테에서 눈을 떼고 나를 봤다. 그리고 결론을 내리듯 말했다. "충격이 안으로 쌓인 겁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안경다리가 부러진 게 이쪽 책임이라는 걸 안 때문이 아니었다. 충격이 안으로 쌓였다는 것, 그 말이 내재한 의미가 내 의식의 허점을 망치처럼 타격했기 때문이다. "외견상 나타나지 않았지만 충격으로 인해 조금씩 균열이 간 거죠." 내 표정이 어정쩡해 보였던지 안경사도 한마디 부언했다.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 사전에 나오는 확증편향(確證偏向)의 뜻풀이다.

그날 아침 내가 보인 행태가 딱 그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무심코 만졌을 뿐인데 안경다리가 부러졌다. 따라서 내가 구입한 제품은 명백히 불량품이다. 머릿속엔 그 문장만이 새겨졌다.

관련 정보를 찾아보니 안경테의 소재는 고급형인 티타늄을 위시해 아세테이트, 스테인리스, TR-90 등 생각보다 훨씬 다양했다. 각기 장단점이 있으며 내구성 또한 소재에 따라 차이가 크다는 걸 알았다. 내가 선택한 안경의 소재는 가벼운 반면 충격에 약하다고 나와 있었다. 결국 안경다리가 부러진 건 오롯이 내 책임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순전히 내 입장에서 눈앞의 현상 혹은 결과를 재단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태도인지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는 건 아둔함을 넘어 뭔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이를테면 미혹(迷惑) 같은 것.

미혹이란 낱말이 떠오르자 조그마한 미혹은 방향이나 잃을 정도지만 커다란 미혹은 천성을 바꿔 놓는다고 한 장자의 말이 소환되면서 급기야 부박한 천성을 탓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날 아침 부러진 안경다리 하나가 끼친 파장은 쓰나미급이라 할 만하다.

어떤 조짐은 코끝을 스치는 눅눅한 바람 같은 것이어서 결과를 예단하는 건 한계 밖의 일일지도 모른다. 따지고 보면 안경을 수차례 떨어뜨린 것도 조짐이다. 습기를 감지한 뒤 빨래를 걷을지 내버려둘지는 본인에게 달렸다.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혹여 비를 맞더라도 하늘을 탓해선 안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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