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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김교영] 설탕은 유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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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영 논설위원
김교영 논설위원

어린 시절, 설탕은 귀했다. 친척집 방문이나 명절 때, 설탕을 선물하기도 했다. 넉넉한 집에선 설탕을 예사(例事)로 먹었다. 가난한 서민들은 그렇지 못했다. 설탕 대신 '삼성당'(사카린)으로 결핍을 보충했다. 부잣집 아이들은 토마토에 설탕을 넣어 먹고, 빈한한 집 아이들은 삼성당을 뿌려 먹었다.

설탕은 '만병통치약'이었다. 서민들은 몸이 아파도, 병원이나 약국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럴 땐, 설탕이 약이었다. 뜨거운 물에 설탕을 한 숟갈 풀어 마시면, 감기가 달아났고 복통이 사라졌다. 설탕물은 숙취(宿醉) 해소에도 도움이 됐다. 그 시절 사람들은 설탕의 '약발'을 몸으로 느꼈다.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 그런 건 배운 자, 가진 자들이나 하는 소리였다.

유럽에서도 18세기 이전까지 설탕이 약으로 쓰였다. 기침과 열이 날 때 설탕물을 마시게 했다. 위장병, 설사, 심지어 흑사병에도 설탕을 처방했다는 기록이 있다. 노인의 기력 회복, 정력 강화에도 설탕물, 설탕시럽 등이 권장됐다. 당(糖)은 에너지의 원천이다. 단백질 형성을 돕기도 한다. 쓰고 남은 당은 간에 글리코겐으로 저장됐다가, 필요할 때 에너지원으로 활용된다. 대표적인 당 공급원이 바로 설탕이다.

설탕은 야누스(Janus)를 닮았다. 설탕은 두 얼굴을 가진 신(神·야누스)처럼 사람에게 이로우면서 해롭기도 하다. 최근엔 설탕의 나쁜 점이 더 부각되고 있다. 설탕은 비만,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의 주적(主敵)이 됐다. 그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도 설탕세 도입 논의가 나오고 있다. 58.9%가 설탕세 부과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발표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6년 설탕세 도입을 권고(勸告)했다. 2023년 8월 기준으로 117개 국가가 설탕세를 부과하고 있다. 가공식품에 들어가는 설탕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일정량 이상 당류가 들어간 제품을 만드는 기업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이다. 설탕세를 반대하는 의견도 있다. 기업에 설탕세를 물리면, 소비자가 그 부담을 떠안고 물가가 오를 것이란 지적이다. 특정 영양소 섭취에 따른 건강 문제는 개인이 식습관으로 조절할 사안이지, 공급 억제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논쟁은 뜨겁고, 설탕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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