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깎아내린 '무속'은 본래 무(巫) 신앙
'K팝 데몬 헌터스'(KPop Demon Hunters·2025)는 세계의 이목을 다시 한번 한국문화에 집중시킨 콘텐츠이다. 줄여서 '케데헌'이라는 이 영화의 서사는 인간의 영혼을 먹으며 세상을 위협하는 악령을 걸그룹이 노래와 춤을 무기로 삼아 물리치는 이야기다. 아주 오래전부터 선택된 여성들에게 악령을 물리칠 힘이 부여되었고, 그 힘이 노래와 춤으로 후대에 선택된 이들에게 전승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다. 다시 말해 K팝의 뿌리가 무(巫)의 음악과 춤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우리 문화의 뿌리 중 하나인 무(巫)신앙은 일제가 미신으로 깎아내려 '무속'이라고 불렀으나 본래는 무(巫)라고 불렀다. 그 뿌리는 동이족 선조들이다.
◆무(巫) 신앙은 고고학적으로 서거진 5천년경에 시작
영화에서는 어느 시대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동이족의 선조들의 무신앙은 고고학적으로 서기전 5천년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내몽골자치고 파림좌기(巴林左旗)의 부하(富河) 고문(沟门)에서 발견된 부하문화(富河文化)가 그중 하나이다. 서기전 5천200년에서 서기전 5천년에 해당하는 신석기시대 중기 문화인데, 부하문화에서는 사슴의 어깨뼈로 만든 점복용 뼈(卜骨)가 출토되었는데, 지금까지 발굴된 복골 중 가장 이른 시기의 점복 유물이다. 부하문화는 내몽골자치가의 오한기(敖漢旗)에 있는 흥륭와문화(興隆窪文化 서기전 6천200년~서기전 5천200년)를 계승했는데, 고조선의 표지 유물 중 하나인 빗살무늬토기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부하문화는 홍산문화(紅山文化·서기전 4천500년~서기전 3천년)로 발전하였고, 홍산문화는 직접적인 고조선 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夏家店下層文化·서기전 2천년~서기전 1천500년)로 계승되었다.
◆점복 문화는 한반도와 중원으로 전파
부하문화의 복골은 불에 지진 흔적만 있을 뿐, 구멍을 뚫거나 무엇인가 새긴 흔적은 없다. 동이족은 일찍이 사슴·돼지·소·양 등의 어깨뼈에 구멍을 뚫고 불에 지져, 갈라지는 방향과 모양을 보고 신의 뜻을 확인했다. 공자가 높였던 삼대(三代), 즉 하·상·주(夏商周) 중 상(商)나라는 중국인들도 모두 인정하는 동이족 국가로서 한자(漢字)의 기원인 갑골문(甲骨文)으로 유명한데 그 뿌리가 바로 내몽골 동이족에서 출발한 복골문화인 것이다. 이는 내몽골 복골문화가 중원으로 계승되었음을 의미하는데, 중원뿐만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열도까지 계승되었다. 상나라의 갑골문은 거북의 등껍질에다 구멍을 뚫거나 글자를 새겨서 길흉(吉凶)을 점친 것이다. 상나라 왕실은 전쟁이나 국가적 대사를 앞두고 이러한 복골을 사용해 길한지 흉한지를 판단했으며, 이를 통해 신, 곧 하늘의 뜻을 헤아리고자 했다.
◆문헌에 보이는 점복 문화
복골문화는 고고학적으로 동이족의 문화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문헌에도 점복 문화의 전통이 전해지고 있다. '산해경'(山海經)이라는 책이 있다. 중원의 전국(戰國)에서 전한(前漢) 때까지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는데, '역경'(易經), '황제내경'(黃帝內經)과 함께 고대 3대 기서(奇書)로 불린다. '산해경'은 중국의 신화집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동이족의 인문·지리·신화집으로, '산경'(山經)과 '해경'(海經)으로 나뉜다. '산경'은 곡식이나 광물, 보물 등이 어느 산에 있는지를 기록하고, 그 경험적 현상을 분석하여 미래를 예측하거나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등 일종의 고대판 '자연재해 백서'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영초'(榮草)를 먹으면 중풍을 낫게 할 수 있다" 등과 같이 의서(醫書)의 기능도 지녔다. '해경'은 이국적인 것들을 소개하거나 영웅들의 행적과 신들의 계보 등을 말하고 있어서 '산경'에 비해 신화적 요소가 훨씬 풍부하다. '해경'에는 다음과 같이 무당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무함국이 여축의 북쪽에 있다. (무당들이) 오른손에는 푸른 뱀을, 왼손에는 붉은 뱀을 쥐고 등보산에 있는데, (이 산은) 여러 무당들이 (하늘로) 오르내리는 곳이다.'('산해경'(1985))
중국 신화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원가(袁珂)는 무함국을 무당들이 조직한 국가라고 설명하고 있다. 한국의 신화연구가 정재서는 등보산을 천계와 지상을 연결하는 곳이라고 해석했다. 무당은 왜 양 손에 뱀을 들고 있을까? 서양 기독교 세계관에서 뱀은 이브를 유혹에 빠뜨린 간교하고 사악한 동물, 즉 불신과 악의 존재로 상징으로 나타난다. 반면 의학에서는 치유와 생명의 순환을 상징하며. 매번 허물을 벗기 때문에 재생과 회복의 의미도 지닌다. 오늘날 우리가 뱀을 부정적인 동물로 인식하는 것은 기독교가 들어온 후 기독교 가치관으로 뱀을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이 들어오기 훨씬 이전에 동이족은 뱀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뱀을 귀에 걸고 있는 사람들
'산해경'의 '해경'에는 얼굴은 사람이지만 몸은 뱀이라거나, 뱀을 밟고 있거나 혹은 머리에 이고 있거나, 입에 물고 있거나. 귀에 걸고 있는 존재 등이 나온다. 뱀에 대한 기록은 새(鳥)에 관한 기사 다음으로 많아서 모두 38종이나 된다. 새를 숭배했던 동이족 소호의 후손이 세운 담이국 사람인 우강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인데 두 마리의 푸른 뱀을 귀에 걸고 두 마리의 붉은 뱀을 밟고 있다"라고 전하고 있다. 또 황제의 아들 우호도 "사람의 얼굴에 새의 몸이고 누런 뱀 두 마리를 귀에 걸고 누런 뱀 두 마리를 밟고 있다."('산해경'(1985)) 황제의 아들 소호가 동이족이니 황제 또한 동이족이다. '산해경'에는 오른손에는 푸른 뱀을 들고, 왼손에는 누런 뱀을 들고 해를 쫓아서 달렸던 과보(夸父)라는 인물도 나온다.
동이족 선조들에게 뱀은 기독교 세계관에서 보는 뱀과 이미지가 달랐다. '산해경'에는 발이 없는 촉룡(燭龍)도 나오는데, "사람의 얼굴에 뱀의 몸을 가지고 있는데, 그가 눈을 감으면 어두워지고 눈을 뜨면 밝아진다. 먹지도 잠자지도 쉬지도 않으며 비바람을 불러 올수 있다. 이것은 대지의 밑바닥을 비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촉룡은 자연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뱀은 자연 그 자체이거나 혹은 땅 속을 드나드는 동물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세상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은 땅 속까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래서 뱀을 귀에 걸거나 두 손에 들고 있거나 몸에 지니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는 '산해경'의 기사는 자연신의 뜻을 물어보는 무당의 모습이자 뱀을 숭상하는 표현이다. 동이족인 복희씨가 뱀의 형상을 하고, 황하의 신이 "네모진 얼굴에 황금색을 띤 작은 뱀"이라고 여긴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신과 인간의 매개자, 무당은 언제 생겼을까?
이처럼 동이족에게는 무당은 신과 인간 사이에서 신의 뜻을 전달하는 존재였다. 물론 동이족에게 처음부터 무당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옛날에는 신과 인간이 서로 어울려 지냈다. 소호(少昊)씨 때까지만 해도 하늘과 땅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이 마음만 먹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연결된 통로를 통해 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자유롭게 하늘로 올라가 신에게 직접 하소연하곤 했다. 신도 자유로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놀다 갔다. 그러나 어느 때인가부터 신과 인간이 분리된 삶이 시작되었다. 인간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중국의 고대신화'(2012)에 따르면 황제(黃帝)가 신의 세계를 다스리던 시절 치우(蚩尤)라는 신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사람들을 선동하고 반란을 꾀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은 묘족(苗族)에게 가혹한 형벌을 내려 결국은 묘족이 반란에 협조하게 되었다. 본래부터 천성이 흉포했던 묘족들은 더욱 난폭해졌다. 묘족이 치우를 도왔던 이유는 황제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묘족들은 선량한 사람들을 공격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다. 그 원혼들이 황제에게 하소연하자 황제가 천상의 군대를 보내 그들을 제압했다는 것이다. 이는 같은 동이족인 황제와 치우가 중원의 패권을 두고 탁록에서 싸운 것을 신화로 전승한 것이다. 신화에서는 치우와 묘족을 부정적으로 말하지만, 이는 승자인 황제의 시각에서 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묘족은 중국 귀주성(貴州省)과 호남성(湖南省) 서부에 많이 살고 있다. 묘족 여성들은 화려한 무늬가 수(繡)놓인 옷을 입는데, 그 무늬 하나하나에는 그들의 오랜 역사가 새겨져 있다. 특히 여성의 치마에 세 줄의 긴 수는 묘족이 중원의 탁록에서 패배한 후 건너온 세 개의 강, 혹은 두 개의 강과 한 개의 평원을 뜻한다.
황제(黃帝)의 뒤를 이은 전욱은 치우와 묘족이 일으킨 반란을 반면교사로 삼아 심사숙고 끝에 중(重)과 려(黎)를 시켜 하늘과 땅을 잇는 통로를 끊어 버렸다. 전욱은 중에게는 하늘을, 려에게는 땅을 다스리게 했다. 전욱 시대에는 하늘과 땅이 분리되었고, 인간 세계와 신의 세계가 단절되어 소수의 선택된 자만이 신의 뜻을 전달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들이 '산해경'에 나타나는 뱀을 귀에 걸거나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 존재들이다.
◆'신이 난다'는 '신이 드러나는 것'
동이족 특유의 영성(靈性)은 곧 신과 통하고자 하는 의지인데 이는 중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유별난 것이었다. 그래서 '삼국지'를 쓴 진(晉)나라 진수(陳壽·223~297)는 '동이열전 부여'조에서 "전쟁이 있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그 발굽을 관찰하여 길흉(吉凶)을 점친다"고 기록하고 있다. 왜인(倭人)도 동이족인데 '삼국지' '왜인열전'에도 "그들의 풍속은 어떤 일을 하거나 나설 때, 무엇을 하려하면 반드시 뼈를 불에 지져 점을 치며 그로써 길흉을 점치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말에 '신명'(神明)이라는 표현이 있다. 언제부터 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즐겁고 흥분된 상태를 '신이 난다'라고 표현한다. 신명은 신(神)자에 밝을 명(明) 자이니,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신이 밝아지는 것, 즉 신이 드러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동이족은 고대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신을 만나려고 노래하고 춤추었던 것이다.
◆문화에도 DNA가 있다
생물에 DNA가 있듯이 문화에도 DNA가 있다. 신을 만나려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던 동이족 선조들의 전통이 오랫동안 전승되었다. 고려 말·조선 초에 유교가 들어오면서 귀신의 이야기로 폄하되었고 대일항전기에 일제는 우리 민족의 문화와 정신을 말살하려고 무(巫)를 비과학적이고 미개한 미신으로 깎아내렸다. 하지만 '케데헌'이 보여주듯, 우리 문화의 기층에는 여전히 무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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