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역사에서 1849년은 거대한 분기점으로 파리의 하늘에 증기기관차의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인류는 '이동'이라는 새로운 자유에 눈을 뜨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격동의 시기에, 고야드(1853년)와 루이비통(1854년)보다 앞서, 럭셔리 트렁크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브랜드가 바로 모이나(MOYNAT)이다.
◆프랑스 최초의 여성 트렁크 장인, 모이나의 시작
모이나는 1849년 파리에서 탄생한 여행용 트렁크 브랜드이다. 당시 트렁크 제작은 거친 가죽과 무거운 나무를 다루는 남성들의 독점적인 영역이었으나 폴린 모이나(Pauline Moynat)는 이 견고한 금녀의 벽을 깬,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 말레티에였다. (말레티에: 트렁크 제작 장인 혹은 트렁크 메이커를 뜻하는 프랑스어.) 폴린 모이나의 비전은 당대 최고 가죽 공방이던 쿨랑비에(Coulembier) 가문을 만나며 완성됐다.
사부아 지방 출신의 이 장인 가문은 그녀의 섬세한 감각을 실제 제품으로 구현해낼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었다. 1849년,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파리 생토노레 거리에 첫 공방을 열었으며, 전문성과 기술이 결합된 순간이었다. 이 파트너십은 훗날 인도네시아산 식물성 수지인 '구타 페르카(Gutta-Percha)'를 이용해 캔버스 트렁크에 완벽한 방수 기능을 구현하며 특허 등 기술 개발의 토대를 이룬 최초의 혁신 중 하나였다.
1869년 폴린 모이나는 문화예술의 중심 지역인 파리 오페라 거리 1번지에 첫 번째 모이나 부티크를 열었으며 1907년에는 쿠아즈보 거리에 모이나 공장을 설립, 250명의 트렁크 제작자가 근무했다.
◆LVMH의 모이나 인수
LVMH 그룹은 2010년, 사실상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던 프랑스의 유서 깊은 트렁크 메종 모이나(Moynat)를 공식 인수했다. 당시 그룹은 루이 비통·셀린느·펜디 등 대형 성장 브랜드와는 별개로, 정교한 장인 기술과 희소성을 기반으로 한 유산 브랜드를 추가로 확보하려는 전략을 갖고 있었다.
모이나는 1849년 탄생한 프랑스 최초의 여성 트렁크 메종으로, 세계적인 곡선 트렁크 기술과 아르데코 미학, 산업화 이전의 장인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한 브랜드였다. 이러한 문화적, 기술적 가치 때문에 LVMH는 '복원할 가치가 있는 메종'으로 판단되어 모이나를 인수했다.
인수 이후, 흥미로운 점은 LVMH는 다른 하우스처럼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택하지 않고, 오히려 극도로 보수적이고 장인 중심의 운영 방식을 선택했다.대량생산 기반의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 루이 비통과 달리, 모이나는 소규모 장인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으며 '과시하지 않는 진짜 럭셔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오늘날 모이나는 LVMH가 가장 신중하게 보존하는 헤리티지 메종으로 평가된다.
◆모이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2020년 7월, 모이나는 영국 출신의 니콜라스 나이틀리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했다. 멀버리의 '베이스워터'를 탄생시키고 루이 비통의 가죽 라인을 구축한 거장인 그는, 모이나에 합류하며 하우스에 '부드러움'과 '관능미'라는 새로운 DNA를 불어넣었다.
나이틀리는 170년 된 트렁크 아카이브의 견고함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박물관의 유물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실용적 예술로 재해석했다. 특히 손끝에서 느껴지는 최고급 가죽의 촉각을 디자인의 핵심 가치로 삼고, 한 철의 유행을 넘어 세대까지 이어지는 타임리스한 품격을 추구했다. 그는 가장 현대적이고 우아한 방식으로 모이나가 지닌 명품의 본질을 다시 써 내려가고 있다.
◆모이나 & 케이싱 룽의 협업 컬렉션
모이나가 몬스터(The Monsters)의 제작자이자 아티스트 케이싱 룽(Kasing Lung)과 만나 유쾌하고 파격적인 컬렉션을 선보였다. 이 협업은 케이싱 룽의 대표 캐릭터인 악동 요정 '라부부(Labubu)'가 모이나의 고전적인 '캔버스 1920 M 모노그램' 위에 자유롭게 여행하는 스토리를 담았다. 엄숙할 수 있는 럭셔리 가방 위에 그려진 라부부의 익살스러운 표정과 키치한 감성은 브랜드에 젊고 생동감 넘치는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모이나는 로고를 드러내지 않는 '콰이어트 럭셔리'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지만, 라부부와의 협업은 하우스가 한층 젊고 위트 있는 키덜트 감성을 포용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블랙핑크 리사는 SNS에 라부부 협업 '미니 48H 백'을 착용한 모습을 공개하며, 그 자체로 가장 강력한 글로벌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케이싱 룽 협업 프로젝트는 전통적인 장인정신과 현대 팝아트의 경계를 허문 작업으로 평가되며, 전 세계 키덜트 아트·패션 컬렉터들로부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럭셔리를 유쾌한 예술 놀이로 확장한 모이나의 대담한 실험이자, 브랜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한 순간이었다. 이 캡슐 컬렉션은 2025년 말부터 2026년 초까지 전시가 열리는 각 도시의 모이나 매장에서만 독점 판매될 예정으로, 하우스의 전략적 상징 프로젝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카이브에서 피어난 대표 컬렉션
모이나의 대표 컬렉션은 시대를 관통한 헤리티지와 현대적 감각이 만나 탄생한 결과물이다.
▶벨 에포크의 뮤즈, 레잔 (Réjane)
'레잔'은 19세기 프랑스 여배우 가브리엘 레잔을 위해 제작된 역사상 최초의 '셀러브리티 백'으로, 여성스러운 곡선미와 특허 잠금장치가 파리지엔의 우아함을 상징한다.
▶곡선의 미학, 가브리엘 (Gabrielle)
'가브리엘'은 자동차 지붕 라인을 따라 설계된 리무진 트렁크의 곡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로, 가방 전면의 'M'자형 금속 잠금장치는 브랜드 이니셜을 구조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한 상징적 디테일이다. 전통 기술과 현대적 조형감이 만난 모이나 특유의 우아함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제품이다.
▶현대적 낭만, 플로리 (Flori)
'플로리'는 승마용 새들백에서 영감을 받아 둥글고 부드러운 실루엣이 특징이다. 크로스바디로 활용할 수 있는 실용성과 꽃잎처럼 열리는 잠금장치 디테일이 조화를 이루며, 젊은 세대에게 특히 사랑받는 모이나의 뉴 클래식으로 자리 잡았다.
▶손바닥 위의 예술, 미니 배니티 (Mini Vanity)
브랜드의 말레티에 정신을 가장 순도 높게 보여주는 '미니 배니티'는 작은 트렁크를 연상시키는 정육면체 디자인과 정교한 상감 기법이 돋보이는 공예적 작품이다.
▶아르데코의 유산, 캔버스 1920 모노그램(Canvas 1920)
앙리 라팽이 1920년대에 만든 아카이브 모노그램을 새롭게 표현한 것으로, 하우스의 전통적 유산과 현대적 혁신에 대한 지속적인 노력이 융합된 것이다. 캔버스 M은 10단계 이상의 공정을 거쳐 제작되며 독점적인 직조 기법부터 색감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3D 효과를 극대화하는 최종 코팅까지 모든 과정을 거친다. 가죽 제품이 부담스러운 이들을 위한 경량 라인으로, '오! 토트(OH! Tote)' 등에서 모이나의 헤리티지를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가장 캐주얼한 라인이다.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럭셔리, 펫 컬렉션
모이나의 펫 컬렉션은 단순한 '애견용 명품'이 아니다. 브랜드가 지닌 디자인 언어와 장인정신이 반려동물의 일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된 결과물로 반려견을 위한 선택이 일시적 유행을 넘어, 세대까지 이어질 품격 있는 가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라인이다.
◆'로고리스(Logo-less)'의 미학
최근 패션계는 화려한 로고나 패턴으로 부를 과시하는 스타일을 지양하고, 소재와 핏, 그리고 브랜드의 헤리티지만으로 승부하는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의 전형을 보여준다,(콰이어트 럭셔리란 로고나 과시 없이 소재·재단·실루엣의 절제된 완성도로 '조용하게 드러나는 진짜 고급스러움'을 말한다.)
로고를 숨기고 고급가죽의 질감과 장인정신만을 내세우는 모이나의 철학(은밀한 럭셔리)은 격조를 완성하는 최적의 아이템이다.화려함보다 절제된 품격을 지향하는 모이나는 한국에서는 서울신라호텔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서 만날 수 있다.
박연미 디자이너 명장,디모먼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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