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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4쌤의 리얼스쿨] 몰입, 나에게 주는 귀중한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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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몰두할 때의 뿌듯함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
우리 아이들에게 흠뻑 몰입하는 어른의 모습 보여줘야

몰입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몰입 관련 자료 이미지. 게티이미지뱅크

지하철에서 정신없이 책을 읽다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친 적이 있다. 나만의 생각에 빠져 갑자기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내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있다. 정신을 차리면 '아, 내가 잠깐 다른 세계로 들어갔다 왔구나' 생각하게 된다.

◆몰입이란 무엇인가

이럴 때 나는 어릴 적 즐겨보던 만화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그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마법의 지팡이로 땅이나 벽을 두드리고 그러면 번쩍이는 입구가 생겨 주인공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곤 했다. 어릴 적 나는 나도 저런 여행을 한번 떠나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때마다 가끔 그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늘 즐겁다. 달콤한 초코케이크를 먹을 때의 원초적 즐거움이 아닌 본질적이고 그윽한 즐거움이 오랫동안 내 몸을 감싼다.

수업 시간에도 그것을 경험할 때가 있다. 다소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하면 학생들은 "이걸 어떻게 1시간 동안 다 해요?"하며 푸념부터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교실은 사각사각 글자 적는 소리만 가득해진다. 그때부터 뿌듯한 고요함이 우리 모두를 감싼다. 그때 나는 직감한다. 모두들 어떤 세계로 진입한 것이라고. 종이 치면 그제야 하나같이 말한다.

"벌써 마쳤어요?"

나는 이 여행을 '몰입'이라고 생각한다.

◆몰입하지 않는 날들은 어떻게 흘러갈까

어느새 1년의 끝자락에 와 있다. 이 세상 모두에게 가장 공평한 것은 역시 시간이다. 시간 앞에 우리는 내가 보낸 시간이 강렬하지 않을수록 허무함을 느끼기 쉽다. 오롯이 무언가에 몰두할 때의 뿌듯함,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열정, 의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살아 있다고 느끼게 하는 힘이다.

'몰입의 즐거움'이라는 책에서는 몰입의 중요성을 알려주는 두 가지 사례가 제시된다. 맨체스터 대학의 심리학자 존 헤이워스는 직장을 못 구한 젊은이들이 실업 수당을 웬만큼 받아도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16개 국가를 대상으로 17만 명의 근로자를 조사한 결과 사무직 근로자의 83%, 생산직 근로자의 77%가 자기 인생에 만족한 반면 실업자는 61%만이 만족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어른에게는 일, 학생에게는 공부가 결코 돈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사례를 통해 목표 의식과 도전 의식이 없는 삶은 만족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두 번째 사례로 정신 분석학자 산도르 페렌치는 일요일에 환자들이 우울증과 히스테리 증상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 이를 '일요 신경증'이라 칭했다. 퇴직 후 우울증을 겪는 경우도 많은데 어떤 것이든 목표 의식과 자유 의지를 가지고 몰입하는 게 인생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지점이다.

◆몰입이 주는 선물

스스로 무엇을 하고 싶다는 내적 동기나, 무엇을 해야 한다는 외적 동기나 결국 특정 목표를 향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집중할 아무 목표도 없는 것보다는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사람이 일 또는 공부를 싫어하고 여가를 두 손 벌려 환영할 것 같지만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주어져도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지 못하면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없다. 오랜 기간 청소년들을 추적 조사한 로엘 헥트너는 청소년들이 일주일에 몇 번이나 몰입 경험을 하는지를 연구했으며 그 결과 몰입 경험의 빈도가 높은 학생이 집중력·자부심·희열·적극성 면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음을 확인했다. 이는 몰입이 정신적 에너지를 승화시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신분석학 전문의이자 '내가 만약 인생을 다시 산다면'의 저자 김혜남 작가는 하나에 미칠 줄 알면 다른 것에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열애에 빠진 사람에게 세상이 신비롭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처럼, 몰입한다는 것은 이 세상 그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평생 몰입에 대해 연구해 온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나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는 일인데 무언가에 뺘저서 몰입하는 시간이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찾아내도록 해준다고 말한다. 몰입 아카데미의 대표인 황농문 교수는 몰입을 하면 할수록 뇌의 시냅스가 활성화되고 도파민이 분비되면서 창조성과 의욕이 증가되며 각성과 쾌감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재미의 강도가 세지고 성과가 좋아진다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지금 당장 무언가에 빠져 몰입해 보는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몰입하는 것이 인생에서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는 것인지 알려주는 것, 그것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는 어른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몸소 보여주는 방법이자 내 인생을 위한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교실전달자(중학교 교사, 조운목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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