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순재가 70년 연기 인생의 막을 내렸다.
27일 오전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이순재의 영결식이 유족과 동료, 후배 배우들의 슬픔 속에 조용히 거행됐다. 고인의 오랜 연기 인생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이날 자리에는 수많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모여 고인을 마지막으로 떠나보냈다. 사회는 배우 정보석이 맡았으며, 약력 소개와 함께 고인과의 인연을 되짚었다. 정보석은 생전 이순재와 함께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추도사는 배우 김영철과 하지원이 낭독했다. 두 사람은 고인을 향한 깊은 애정과 존경을 담은 마지막 인사를 전하며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배우 김영철은 "어떤 하루를 없던 날로 할 수 있다면, 그날 그 새벽을 잘라내고 싶다. 오늘 이 아침도 지우고 싶다"며 "거짓말이었으면, 드라마 한 장면이라면 얼마나 좋겠나. '오케이 컷' 소리에 툭툭 털고 일어나셔서 '다들 수고했다. 오늘 정말 좋았다'고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결식장 안팎에 있던 조문객들 사이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어 "선생님은 우리에게 연기의 길을 보여주셨고,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신 분이다. 선생님 곁에 있으면 방향을 잃지 않았다. 작은 끄덕임 하나가 우리 후배들에게는 늘 잘하고 있다는 응원이었다"고 회상했다.
또 "선생님이 어느 날 저에게 '하루하루를 살아낸다는 게 결코 만만치가 않다. 항상 겸손하고, 늘 진심으로 살아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그 말의 울림을 이제야 알 것 같다"며 "수고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저와 많은 후배들은 선생님을 오래도록 기억하겠다. 감사했고, 존경한다. 그리고 정말 많이 그리울 거다. 영원히 잊지 않을 거고, 영원히 잊지 못할 거다"고 덧붙였다.
고인의 팬클럽 회장을 자처한 하지원은 고인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담아 추도사를 읽었다. 그는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순재 선생님. 오늘 이 자리에서 선생님을 보내드려야 한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지금도 어디선가 선생님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올 것만 같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 '더킹 투 하츠'로 처음 인연을 맺은 이후 고인과의 특별한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그는 "무대에 서실 때 찾아뵀던 연극 공연도 기억이 난다. 공연 후 함께 식사하며 연기에 대해 나눴던 담담한 대화 속에는 배우로 살아오신 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며 "작품 앞에서 제가 스스로 흔들렸던 시기에 선생님께 '선생님. 연기는 왜 할수록 어려운가요?'라고 조심스럽게 여쭤본 적이 있다. 그때 선생님께서는 특유의 담담한 목소리로 '인마. 지금 나도 어렵다'고 하셨다. 그 한마디는 제게 큰 위로이자 오랫동안 마음을 지킨 가르침이었다"고 전했다.
하지원은 "여전히 연기가 어렵다고 말할 수 있는 솔직함과 겸손함이 저에게는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이자 평생의 가르침이 됐다"며 "선생님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배우일 뿐만 아니라 연기 앞에서 끝까지 겸손함을 잃지 않고, 스스로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진정한 예술을 하셨다. 그리고 저에게는 배우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행동과 태도로 보여주신 가장 큰 스승이기도 하셨다. 선생님께 배운 마음과 자세를 앞으로 작품과 삶 속에서 꾸준히 실천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날 영결식에는 배우 최수종, 유동근, 정준호, 정태우, 정동환, 박상원, 유태웅, 이원종, 원기준, 이무생, 방송인 정준하, 장성규 등 평소 고인과 깊은 친분을 나눈 인사들이 참석했다. 또한 가천대학교 연기예술학교 재학생들도 고인을 배웅하기 위해 자리를 지켰다.
배우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으며, 후배 연기자들은 영결식장에 마련된 영상 속 고인의 생전 활약상을 바라보며 고인을 추억했다. 약 7분간 상영된 추모 영상에는 이순재가 출연한 다양한 작품과 무대 위 모습들이 담겼으며, 조문객들 사이에서는 흐느낌이 이어졌다.
영결식 말미에는 참석자들이 헌화를 하며 한 사람씩 고인의 영정 앞에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고인의 가족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았고, 일부 동료 배우들은 눈시울을 붉히며 자리를 지켰다.
이날 발인식은 영결식 직후 진행됐다. 고인의 관은 동료와 제자들의 배웅을 받으며 장례식장을 떠났다. 정준하, 하지원, 정일우 등 고인의 연기를 곁에서 지켜본 후배 배우들은 고개를 떨군 채 오열했고, 현장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이순재는 지난 25일 새벽 별세했다. 향년 91세. 1956년 연극 '지평선 너머'로 데뷔한 이후 드라마, 영화, 예능, 연극 등 장르를 넘나들며 활동했으며, 수많은 명연기와 명대사를 남기며 한국 연기계의 산 역사로 불려왔다. 2023년 가을 건강상의 이유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기다리며'에서 하차한 이후 휴식을 취해왔으며, 병세가 악화돼 끝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지난해 드라마 '개소리'를 통해 대중 앞에 섰고, '2024 KBS 연기대상'에서 최고령 대상 수상자로 기록됐다. 당시 무대에 올라 "오래 살다 보니까 이런 날도 다 있네요. 시청자 여러분, 평생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 감사하다"고 말하며 인사를 전했고, 이 장면은 고인의 마지막 공식석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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