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냉동고의 온도는 늘 –80℃를 가리킨다. 숫자 하나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들 만큼 차갑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것들은 죽지 않는다. 완전히 얼어붙었지만, 완전히 죽어있지도 않은 상태. 살지 않게 하면서도 죽지 않게 하는 온도. 연구자인 내가 다시 꺼내기 전까지 생명은 그 온도에서 기다림의 형태로 남는다.
미생물은 곧바로 얼리지 않는다. 먼저 글리세롤을 섞어 얼어붙는 순간 생긴 얼음 결정에 세포가 찢기지 않도록 아주 얇은 보호막을 입혀준다. 그 과정이 없다면 미생물은 깊은 잠에도 들지 못한 채 산산조각 나버린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보관은 결국, 시료가 상처받지 않게 얼리는 기술이라는 것을.
식물의 조직 또한 채취하자마자 액체질소에 넣는다. 단숨에 모든 반응을 멈추고, 이후의 변질을 허락하지 않는 냉기가 조직 안으로 깊게 스며든다. –80℃의 냉동고로 옮겨지면 식물은 계절과 무관하게, 시간의 흐름을 멈춘다. 미생물이나 식물의 DNA 역시 그 안에서 오래 버틴다. 보존 방법만 정확하다면 십 년이 지나도 변형 없이 남아 있는 것들. 나는 냉동고 문을 열 때마다 생각한다. 이 안에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얼어 있을까.
보존은 단순히 넣어두는 일이 아니다. 사실은 선택의 문제다. KEEP과 DISCARD. 보고서에는 단 두 단어만 적히지만,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온도가 숨어 있다. –80℃의 세계는 오래, 묵묵히 무언가를 붙잡아 둔다. 나는 그곳에서 기억의 구조를 배웠다. 버려지는 기억이 있고, 끝까지 보관되는 기억이 있다. 어떤 기억은 사라지지 않지만, 꺼낼 수도 없는 온도에서 오래 머문다.
그곳에 아직도 해동되지 못한 기억이 하나 있다. 2002년, 초등학교 5학년. 태풍 '루사'가 마을을 덮던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서둘러 마을 회관으로 대피했고, 나는 비 오는 날이 마냥 신나기만 했던 아이였다. 우비도 제대로 입지 않고 장화만 신은 채 웅덩이를 밟으며 뛰어다녔다. 그 모습을 본 회관 옆집 할머니는 "춥겠다"며 수건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셨다. 그리고 그 몇 초의 틈에 산사태가 일어났고 그 할머니는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사람들은 "네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안다. 그러나 내 안에서는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흙탕물 속으로 사라지는 뒷모습, 그리고 아무것도 모른 채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던 어린 나. 두 장면은 한 화면처럼 겹쳐져 지금도 마음 깊은 곳을 찌른다. 그 기억은 –80℃ 냉동고의 가장 아래 칸처럼 자리 잡고 있다. 가끔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호수를 담아내던 컵이 한 번에 넘쳐버리듯 와르르 쏟아질 때도 있다. 간절한 순간, 손이 닿지 못한 일은 한이 되어 오래 남는다.
기억을 보존하는 방식은 결국 온도로 결정된다. 너무 뜨거우면 타버리고, 너무 차가우면 손끝에 닿는 즉시 통증이 번진다. 그래서 사람은 기억을 –80℃라는 형태로 넣어둔다. 사라지지 않지만, 살려낼 수도 없는 온도. 잊힘이 아니라 '보류'의 상태로.
나는 이제 안다. 어떤 기억들은 누군가를 용서하거나, 누군가에게 용서받을 때에야 비로소 해동된다는 것을. 용서는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자신만의 냉동고에 기억을 넣는다. 살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차갑게 오래 보관되는 감정들을.
내 실험도 그렇다. "더 진행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래, 피곤하니까. 귀찮으니까. 이건 다음에 하자' 하고 냉동고에 넣어버릴 때가 있다. 분명 중요한 일이었는데도 그 순간에는 쉬운 선택을 한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는다. 정작 정말 필요한 것을 넣으려 할 때 이미 빈자리가 없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는다.
사람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우리는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 믿지만, 기억은 자연사하지 않는다. 용서받지 못해 보관된 감정은 썩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더 깊은 곳으로 얼어 내려간다. 아픈 기억은 영하의 온도에서도 살아남는다. 차갑게 보관된 감정은 오래 잔존한다. 다시 꺼내려하면 그날의 감정의 결까지 되살아난다.
실험을 하며 나는 서서히 알게 되었다. 시간이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온도에서 버티느냐가 문제라는 것을. –80℃는 잊힘의 온도가 아니다. 지금은 꺼낼 수 없지만 언젠가 꺼내야 할 것들, 아직 말할 수 없지만 언젠가 말해야 할 것들, 지금은 살릴 수 없지만 분명 살아 있는 것들이다.
나는 언젠가 이 기억들 중, 몇 가지를 다시 해동시킬 것이다. 얼리기 위한 액체질소가 아니라, 더 따뜻한 공기 속에 천천히 놓아두면서. 어떤 기억은 다시 살아나고, 어떤 기억은 사라지고, 어떤 기억은 형태를 잃겠지만, 그것 또한 삶이라는 것을 나는 조금씩 배우고 있다.
오늘도 나는 냉동고 문을 닫는다. 보존된다는 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고, 동시에 언젠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나는 그 온도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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