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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속으로] "모래는 도구일뿐…내가 그리는 것은 인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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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시립미술관 김창영 개인전
23세에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
일본으로 건너가 40여 년간 작업
실제와 허구 경계 흐릿한 모래 그림
"인간의 행위와 그 흔적 그리고자 해"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일본에 건너간 지 7년 만에 화단의 중심에 서게 한 89년 작품
일본에 건너간 지 7년 만에 화단의 중심에 서게 한 89년 작품 '샌드 플레이 897' 앞에 선 김창영 작가. 이연정 기자

대구 출신 김창영 작가의 개인전이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982년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해오다 40여 년 만에 금의환향한 그는 "일본에서 많은 전시를 열었지만, 이번 전시 개막식에는 전부 '우리'가 있어 너무 반가웠다"며 "이제 마지막까지 한국에서 작업하고 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20대부터 뛰어난 실력 인정 받아

한국에서 오랜 기간 활동을 중단했음에도 미술계에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주목 받는다.

1979년, 작가는 모래의 흔적을 모래에 그려낸 '발자국 806' 작품으로 22세의 이른 나이에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수상한다. 당시 대상 수상자가 없어 사실상 가장 높은 상을 받은 셈. 작가는 당시를 회상하며 "자격 요건이 만 30세 이상이라는 걸 작품 제출 전에 알게 됐다"며 "대구에서 서울까지 작품 들고 올라간 게 아까워서 나이 앞자리를 살짝 3자로 고쳐서 응모했다"고 말했다.

수상자 발표 전날, 미술대전 주최사인 중앙일보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을 때 그는 솔직하게 나이를 고백하고 사과했다. 졸업도 하지 않은 대학생의 용감한 도전, 그리고 인정 받은 실력. 그게 오히려 이슈가 되며 그의 이름은 전국에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작가는 이듬해 나이 제한을 없앤 중앙미술대전에 또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었다.

"어느 날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님이 저를 집무실로 부르셔서, 그림을 얼마 주면 되겠냐고 물으시곤 사셨어요. 제 그림을 처음 구매한 분이셨죠. 20대 초반, 유명세와 돈을 한꺼번에 얻게 된 제게 '저런 애는 얼마 못 간다'는 질투와 시기가 쏟아졌습니다. 새로운 곳에서 실력을 증명해보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렇게 8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가져간 돈은 금방 떨어졌고, 생계 유지를 위한 일과 작업을 병행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이렇게 살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 어느 날, 마이니치신문 주최 현대미술전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당시 사이토 요시시게라는 작가와 나카라 유스케라는 평론가가 일본에서 가장 유명했는데, 이들을 만나기 위한 계기가 꼭 필요했다"며 "이들이 현대미술전의 심사위원장과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는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려 출품했고, 2등에 뽑혔다"고 말했다.

수상을 계기로 그는 나카라 유스케가 기획한 전시에 참여하고, 일본 모노하(물체 본연의 성질과 존재에 주목하는 예술운동)의 스승으로 여겨지는 사이토 요시시게의 아틀리에에서 작업할 기회까지 얻게 됐다.

이름이 알려지자 유학 비자가 예술가 비자로 바뀌고, 여러 전시와 매체 출연 등으로 일본에 계속 머물게 됐다. 하지만 이방인으로서의 삶은 늘 긴장의 나날이었고, 도무지 적응이 어려웠다. 40여 년 만에 그가 다시 한국을 찾은 이유다.

작가는 지난해 대구미술관 기획전 '대구포럼 IV-대구미술 1980-1989: 형상의 소환'에 참여한 이후, 대구에 작업실을 다시 마련하고 한국에서의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젊을 때는 카우보이 정신으로 새로운 곳을 개척해보겠다는 마음이 있었던거죠. 이제는 나를 증명하기보다 고향에 마음을 정착하고 살고 싶은 마음이 커졌어요. 이제는 '우리'가 있는 세상에 살며 작업하고 싶습니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마치 모래가 강력한 철판을 뚫고나간 듯한 그의 작품. 가까이에서 보면 철판은 실상이고 모래의 흔적은 그림, 즉 허상이다. 실상을 뚫어버린 허상. 그의 작품은 실체와 허상을 한 화면에 동시에 나타내는 매체적 실험이자, 존재의 증명에 대해 얘기하는 회화다. 이연정 기자
마치 모래가 강력한 철판을 뚫고나간 듯한 그의 작품. 가까이에서 보면 철판은 실상이고 모래의 흔적은 그림, 즉 허상이다. 실상을 뚫어버린 허상. 그의 작품은 실체와 허상을 한 화면에 동시에 나타내는 매체적 실험이자, 존재의 증명에 대해 얘기하는 회화다.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김창영 개인전 전경. 이연정 기자

◆행위의 흔적 그리는 '포스트 하이퍼리얼리즘'

그는 모래 위에 모래를 그리지만, 모래를 얘기하진 않는다. "나는 모래 작가가 아니다. 모래는 도구다. 어떤 흔적을 잘 보여주기에 택한 도구"라는 게 그의 말이다.

모래와의 여정은 꽤 오랜 기간 이어져왔다. 78년 부산 해운대 인근에서 작업하던 그의 눈에 해변에 남겨진 발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이튿날 다시 가면 바람에 날려 없어지거나 파도에 덮여 사라지던 발자국들은 그가 살던 아파트 뒤의 공동묘지의 모습과 묘하게 겹쳐졌다. 저 멀리 우주에서 보면 하루의 흔적이나 한 평생의 흔적이나, 인간의 삶은 다 찰나의 순간이 아닐까.

그렇게 그는 79년 중앙미술대전 장려상을 수상한 작품 '무한(Infinity)'을 시작으로 그는 모래 위의 흔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서연 포항시립미술관 큐레이터는 "그에게 흔적은 인간과 그들의 행위를 증명하는 존재의 형상"이라며 "작가는 인간 없는 풍경을 통해 인간을 깊이 사유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모래와 접착제를 섞어 캔버스나 판넬에 바른 뒤, 그 위에 물감으로 발자국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일부 작품은 표면의 모래를 걷어내고, 걷어낸 흔적을 그림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어디까지가 실제 모래이고, 어디부터 모래 그림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실상과 허상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일본의 미술 평론가 지바 시게오는 그의 작품에 대해 "그려진 것이라 생각한 그림이 반은 실물이었다"며 "존재라는 것은 실제로 허와 실의 직물이다"고 평한 바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삶과 철학을 볼 수 있는 작품 40여 점을 볼 수 있다. '어디에서 어디로(From where to where)' 섹션에서는 하늘과 땅의 경계가 흐릿한, 무한한 아득함이 느껴지는 작품들이 전시돼있다.

특히 가로 10m 길이의 대형 작품 '샌드 플레이-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감탄을 자아낸다. 작가는 "하루 꼬박 15시간씩을 매달린 고행과 같은 작업이었다"며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듯 그냥 무심하게 계속 하는, 무의 경지에서 그린 그림"이라고 말했다.

일본에 건너간 지 7년 만에 그를 화단의 중심에 서게 한 89년작 '샌드 플레이 897'도 전시됐다. 높이 3.5m의 작품은 당시 작가가 열심히 오르고자 허우적거리는 듯한 흔적을 담고 있다.

그가 처음 선보인 설치작품도 눈길을 끈다. 포항의 모래와 바닷물을 섞어 사람의 형태를 30여 개 제작해 전시장 바닥에 놓았다. 작가는 "시간이 지날수록 모래 형태가 쓰러진다. 그 소멸하는 흔적도 발자국과 같은 모습"이라며 "전시가 끝나면, 마치 장례가 끝나고 재를 뿌리듯 바다에 다시 모래를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한 '초헌 장두건관' 전시실에는 90년대 일본에서 방영한 '김창영 특집 다큐멘터리'와 최근의 작업 모습을 담은 영상이 함께 상영된다.

"하이퍼리얼리즘이 정지된 사물을 그림으로 옮기는 것이라면, 저는 인간의 행위와 그 흔적을 그리는, 사실적인 것 너머의 '포스트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봐주셨으면 합니다. 생에 첫 터닝포인트가 중앙미술대전 대상이었고 일본에서의 수상이 두번째 터닝포인트였다면, 이번 포항 전시가 세번째 터닝포인트가 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전시는 5월 17일까지 이어지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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