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였다. 길소정(61·가명) 씨는 아침부터 단말마 같은 비명을 내질렀다. 숨을 헐떡이며 방바닥을 굴렀다. "칼로 머리를 쑤시는 것" 같은 통증이 한순간에 덮쳤다. 그가 할 수 있는 저항은 이를 악물고 바닥을 긁는 것뿐이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었으면 좋겠어요."
소정 씨가 만성 편두통을 앓은 지도 벌써 30년째다. 고통은 한 번도 익숙해진 적이 없다. 이날은 특히 더 심했다.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에 항암치료를 받았기 때문이다. 기진맥진한 육신 위로 통증은 춤을 추듯 날뛰었다.
◆ 도박중독자 남편 이혼…하나뿐인 딸에게 우울증 대물림
지긋지긋한 편두통은 전 남편에게 지급한 '위자료'였다. 전 남편은 도박중독자였다. 틈만 나면 강원랜드에 가서 돈을 탕진하고 돌아왔다. 거짓말도 잦았다. 출장이 있다느니, 사업 때문에 급전이 필요하다느니 하는 변명을 늘어놨다. 끝까지 돈을 주지 않으면 폭력이 뒤따랐다.
스트레스가 쌓인 탓일까. 구토를 동반한 심각한 편두통이 찾아왔다. 한 번 시작되면 최소 한나절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우울증도 겹쳤다.
"우울증은요, 등 뒤에 빨판이 생기는 병이에요. 등이 바닥에 딱 달라붙거든요."
몇 날 며칠을 방에 누워 지냈다. 그렇게 누워 있다 보면 세상이 뱅글뱅글 돌았다. 소정 씨는 딸을 위해서라도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2003년 이혼 이후, 일곱 살 딸 미진(가명)이를 혼자 키웠다. 우울은 대물림됐다. 미진이는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소아 우울증 진단을 받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면서도 공부는 놓지 않았다. 딸은 지역거점국립대 심리학과를 졸업했다. 어릴 시절 트라우마 때문인지, 미진이는 사람의 마음에 관심이 많았다.
올해로 스물아홉이 된 미진이는 여전히 병원을 다닌다. 우울이 깊어질수록 엄마를 향한 원망도 커졌다. "엄마는 왜 인생을 이렇게 살았냐"는 말이 가장 아팠다. 소정 씨는 그 질문 앞에서 늘 침묵했다. 그래도 딸은 떠나지 않았다. 타지로 취업한 미진이는 일주일에 한 번은 본가로 돌아와 엄마를 간호한다.
◆고질적 편두통, 혈액암까지
지난달에는 혈액암 확진 판정을 받았다. 사실 몸은 예전부터 조금씩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숨이 차고 얼굴은 백지장처럼 질렸다. 멍도 자주 들었다. 참고 또 참다가 정밀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들었을 때는 앞이 막막했다. 의사는 "치료를 받지 않으면 길어도 6개월"이라고 했다.
삶의 끈을 놓아버릴까도 고민했던 소정 씨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결국 이달부터 항암치료를 시작했다. 내년 3월에는 조혈모세포 이식 수술을 앞두고 있다. 혈액암은 백혈구 수치를 떨어뜨린다. 감염 위험이 커진다. 주치의는 위생 관리가 생명이라고 소정 씨에게 말했다.
그러나 소정씨는 수성못 인근 월세 25만원짜리 노후주택에 살고 있다. 환기가 어렵고, 습기와 먼지가 쉽게 쌓인다. 더 나은 집을 구하고 싶지만 매달 100만원이 채 안 되는 수급비로는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세와 공과금, 약값을 내고 나면 손에 남는 돈은 10만원 남짓. 최근에는 생활비가 모자라 300만원을 아는 언니에게 빌렸다.
편두통 약을 오래 복용한 탓에 부작용도 쌓였다. 심정지 위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약을 끊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진통제를 배에 주사기로 맞는다. 비급여 항목이다.
"주사 한 번에 30만원씩 내요." 그는 돈 때문에 이 주사를 맞는 것을 3년이나 미뤘다.
인생 최악의 크리스마스라도 붙들고 살 추억 한 조각은 있다. 20년 전쯤, 딸이 우울증에 걸리기 전의 12월 25일이다. 애어른 같던 미진이는 크리스마스만큼은 좋아했다.
"크리스마스가 이게 뭐야? 눈도 안 오는데." 툴툴대면서도 엄마와 단칸방에서 케이크 초를 불었다. 그날 밤은 유독 따뜻했다. 딸의 생일은 12월 29일이었다. 크리스마스와 생일을 함께 축하하던 해도 있었다.
좁은 창문을 타고 크리스마스 캐럴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온 세상이 아기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의 밤이었다. 잇몸이 녹아 발음이 흐려진 소정 씨는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죽어도 돼요. 제일 무서운 건요, 딸애한테 점점 더 아픈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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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아들·시동생 부양 김현실 할머니에 2,592만원 전달
단칸방에 살며 폐지를 주워 장애가 있는 시동생과 아들을 부양하는 조선족 김현실 할머니(매일신문 12월 16일 10면 보도)에게 2천592만2천889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대구 상서중학교 45만9천938원 ▷조득환 40만원 ▷김경익 20만원 ▷신지연 5만원 ▷이상준 5만원 ▷김점숙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배정준 2만원 ▷신종욱 2만원 ▷김순희 1만원 ▷배상영 1만원 ▷이장윤 4천원 ▷김명숙 3천원 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안동 산불 피해 88세 김 씨 부부에 2,222만원 성금
지난 3월 경북 북부권 대형 산불로 삶의 터전을 모두 잃고 걷기도 힘든 몸으로 병마와 싸우고 있는 88세 김모 씨 부부(매일신문 12월 23일 11면 보도)에게 43개 단체, 133명의 독자가 2천222만7천468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굿모닝이엔씨사우회 100만원 ▷㈜일지테크 100만원 ▷㈜태원전기 100만원 ▷한성철강㈜ 10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제일안과병원(이규원)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이일우) 45만원 ▷세움종합건설㈜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삼이시스템 2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국민법무사(김태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 10만원 ▷유성에스에이치(이석현) 1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프렌즈(손순영)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김용근(국제정밀)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류시장)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동위(이석우) 3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경성모터스(이진수) 2만원 ▷통영굴국밥국수(허정) 2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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