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에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항공우주기업 KAI(한국항공우주산업㈜)가 있다. 사천 시민들은 흔히 "KAI 이전과 이후의 사천은 전혀 다른 도시"라고 말한다. 조선·농공업 중심의 중소도시에 불과했던 사천은 KAI가 자리 잡으면서 도시의 위상과 산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KAI는 단순한 기업 하나가 아니라, 사천이라는 도시의 미래를 견인해 온 명실상부한 '앵커(anchor)기업'이다.
반면 대구에는 아직 KAI와 같은 밸류체인의 최정점에 있는 기업이 없다. 이는 단순히 대기업이 부족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산업을 대표하고 미래 기술의 방향을 제시하며, 기업과 인재, 자본을 끌어당기는 중심축이 부재하다는 뜻이다.
대구에도 KAI보다 매출이 크거나 비슷한 기업들은 존재한다. 그러나 상당수는 완제품이나 플랫폼을 주도하기보다는 대기업 협력업체이거나 특정 공정에 특화된 역할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 대구에는 사천의 KAI와 같은, 밸류체인의 정점에 선 기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해답은 로봇산업에서 찾아야 한다.
대구는 이미 '국가 로봇 허브 도시'를 향한 기반을 차근차근 쌓아왔다. 산업통상부 산하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이 대구에 자리 잡고 있고, 로봇 관련 대·중소기업과 부품·자동화·서비스 로봇 분야 기업들도 꾸준히 성장해 왔다. 현재 대구에는 비수도권 최대 규모인 250여 개 로봇 기업과 240여 개의 소프트웨어 기업이 집적돼 있다.
그럼에도 마지막 퍼즐은 여전히 비어 있다. 바로 밸류체인의 최정점 기업이다. 대구 로봇 기업 다수는 부품과 공정, 개별 설루션에서는 경쟁력을 갖췄지만, 완제품과 플랫폼을 주도하는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 산업 전체를 대표하고 세계 시장에서 '대구 로봇'을 각인시킬 상징적 기업이 부재한 이유다.
더욱이 로봇산업의 중심은 이제 산업용을 넘어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단순한 신산업이 아니라 군사·안보와 직결된 국가 전략자산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실질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한 국가는 미국과 중국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역시 일부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을 중심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만, 산발적인 시도만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항공우주산업이 그랬다. 과거에는 미국과 프랑스가 독보적인 강국이었고, 우리나라는 일부 대기업 사업부 차원의 연구에 머물렀다. 정부는 이 한계를 인식하고 항공우주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규정해 주도적으로 KAI를 설립했고, 10년 이상 장기적이고 집중적인 육성에 나섰다. 이는 민간의 자발적 투자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성과였으며, 국가의 결단과 전략적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휴머노이드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 성숙도와 시장 불확실성 탓에 민간 대기업이 단독으로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국민연금과 정책금융, 대기업이 참여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로봇판 KAI', 즉 로봇 앵커기업 설립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이제 남은 것은 결단이다. KAI가 사천의 미래를 바꿨듯, 로봇 앵커기업은 대구의 산업 지형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국가로봇테스트필드와 AI 로봇 혁신특구를 갖춘 지금이 바로 그 기회다. 'AI 로봇 수도 대구'가 구호로 남을지, 현실이 될지는 지금의 선택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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