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오거리 인근 골목 벽에는 발걸음을 붙잡는 시 구절들이 가득하다. 이곳 일대에 살던 문학인들이 고뇌한 끝에 적어내린 문장들이다. 문장을 낳은 예술인들의 흔적은 대구 중구 근대문화골목길에 고스란히 남겨져 있다.
◆이상화 생가? 고택? 모두 이곳에
계산오거리 옆 '이상화 고택' 안내판을 따라가면 하늘 높이 치솟은 현대 건물과 어울리지 않는 한옥이 있다. 1939년부터 생애를 마치던 1942년까지 이상화가 잠시 머문 곳이다. 이상화가 앉아 시를 썼을 마루는 반질하게 닳아 있고, 기와에는 소복하니 먼지와 때가 내려앉아 있다.
저항정신이 담긴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대구의 향토사를 담은 '대구행진곡'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그는 1901년 대구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프랑스어와 문학을 공부한 뒤 대구로 돌아왔다. 그 10여년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구에 머물렀다.
태어났을 때부터 30년 이상 이상화 시인이 머문 생가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생가는 북성로 돼지국밥 골목과 가깝다. 생가는 시인 생전 '담교장'이라 불렸고, 그는 저항 정신을 공유하는 친구들을 초대해 시간을 보냈다.
아쉽게도 지금은 생가를 또렷하게 보기가 어렵다. 대부분이 허물어지고, 그나마 남은 안채는 한때 한옥 카페로 운영되다가 문을 닫았다. 다행히 이상화와 동거동락한 라일락 나무는 닫힌 문 너머에 여전히 살아 숨쉬고 있다. 이상화의 탄생과 고뇌를 모두 지켜봤을 관찰자다.
대구를 배경으로 했을 그의 작품이 상당수 소실된 데는 뒷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그를 귀감으로 여긴 시인 임화가 이상화의 시집을 출판하겠다고 원고를 가져간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다. 임화가 북한에서 숙청되면서, 원고를 찾을 길은 영영 사라졌다. 절친 박종화와 나눈 것으로 알려진 편지나 시도 한국전쟁 당시 모두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다.
◆꼬불꼬불 골목 속 마당 깊은 집
고택에서 벗어나 계산성당을 끼고 돌면 낡은 옷을 입은 남자아이의 동상을 만나볼 수 있다. 품안에 신문을 끌어안은 아이가 보고 있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은 '마당 깊은 집' 전시관을 만나볼 수 있다. 소설의 실제 배경은 아니지만, 소설과 가장 닮아있는 장소를 골라 리모델링해 전시관을 꾸몄다.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은 전후 대구를 무대로 한다. 어린 소년의 눈에 비친 전후 도시의 설움, 분단의 아픔을 잘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8년 단행본으로 발간된 뒤 드라마로 제작됐고, 인기에 힘입어 ▷일본 ▷페루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미국에 번역본이 출간됐다.
김원일의 유년시설은 약령시 일대를 누빈 추억으로 가득하다. 한 달에 한 번씩 동생들의 손을 잡고 '종로목욕탕'을 찾았고, 진골목에 있는 '정소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전시관에 기록된 그의 추억을 따라 근대문화골목을 걸어보길 추천한다. 소설의 무대가 된 곳을 본 뒤, 마당 깊은 집을 다시 읽으면 감회가 달라질 지 모른다.
◆대구사람 이육사
계산오거리에서 도보 10분 거리, 한 아파트 단지 출입구와 접해 있는 이 곳은 이육사 기념관이다. 이육사가 1920년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사온 뒤, 17년간 살았던 고택이 있던 자리다. 아쉽게도 재개발이 되면서 기존의 형태를 잃었지만, 대신 이육사 생애 전반을 볼 수 있는 기념관을 새로 지었다.
이육사는 안동에서 태어나 16세에 대구로 이사한 뒤 중구 일대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처가에 머물거나,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등 여러 차례 집을 떠나곤 했지만 가장 오래 살았던 집은 대구였다. 이육사 스스로도 자신을 '대구사람'이라고 공언했다.
독립운동을 시작한 곳도 대구였다. 그는 달성공원 앞 조양회관을 오가며 민족운동을 펼쳤고, 그 대가로 대구형무소에서 형을 살았다. 중외일보 대구지국, 조선일보 대구지국 등 기자로 활동한 무대도 이 곳이다. 그의 생애 전반은 기념관에서 살펴볼 수 있다.
중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신기한 연이 이어졌다. 진골목에 거주하며 후학양성에 힘썼던 석재 서병오 선생과의 만남이다. 그는 서화가로 해외에도 이름을 떨친 서 선생의 제자가 돼 그림을 배우기도 했다. 시집 간행을 준비하면서, 서 선생에게 배운 솜씨를 뽐내 직접 책 표지 제목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계산오거리를 둘러볼 때는 길을 잘못 들어도 괜찮다. 문인이 앉아 있었을 마루와 소설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구옥은 대개 그런 골목 끝에 있다. 대구가 겪은 저항과 상처, 그리고 회복의 기록을 더듬어보며 헤매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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